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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의 떡볶이

by jungsin



떡볶이는 영혼을 갖고 있다.



고급 레스토랑의 정식이나 스파게티, 올리브유 샐러드, 회와 같은 대부분의 음식들을 나는 거칠게 대하는 편이다. 아는 사람이 없는 먼 지인의 결혼식 피로연에서 혼자 에어콘 앞 구석자리에 앉아 전혀 안 예쁘게 쌓아올린 한 접시를 허겁지겁 해치우듯 대하곤 한다. 음식이란 허기를 채우고 미각을 만족시키는 수단일 뿐이다. 하지만 떡볶이는 다르다. 그것을 대할 때는 경건해진다.

나는 왜 떡볶이에게 경건한 태도를 가지게 되었는가. 인생은 대체로 불행하고, 불행이 지속되는 평생 우리는 다 어떤 행복한 시절을 추억하며 사는 것이라던가.

나에게 가슴속에서 빛나는 시절은 몇 번으로 나뉜다. 떡볶이는 그러한 몇 번의 시절 중, 첫번째 시절과 관련이 있다. 가끔 소울푸드가 무어냐 물어올 때 별생각 없이 떡볶이라고 대답하게 되는 이유는 그 시절의 기억 때문이다.



열한 살에서 열두 살이었던 시절. 나는 보이스카웃이었고 축구부였고 방송반이었으며 주산학원을 다녔다. 깨끗한 옷을 입었고 친구들을 웃기는 일을 무엇보다 즐거워 했다. 자습시간에 선생님 자리 옆에 앉아서 엄지 손가락과 새끼 손가락에 모나미 볼펜을 걸고 암산으로 반 친구들의 성적표 계산을 할 때나, 명상의 시간에 아무개는 방송반으로 속히 달려오라는 안내 방송이 나와 혼자 아무도 없는 복도를 걸을 때면 벌써 내가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인 것 같아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나의 생은 가을 부사처럼 풍성하고 달콤하기만 했다.



어렴풋한 기억이 맞다면 운동장에서 친구들하고 축구를 하다 코치님의 눈에 띄어 축구부에 들어가게 되었다. 열두 살이란 늦은 나이에 입단하게 되어서, 이미 일이 년 이상씩 축구를 한 아이들에 비해 발 재주가 좋지는 않았다. 운이 좋게도 단지 달리기가 빠르다는 이유로 마침 포지션이 비어있던 라이트윙 공격수를 맡았다.

훈련은 매일 방과후에 모여서 책가방을 대충 던져놓고, 구령을 외치며 운동장을 열 바퀴 정도씩 뛰는 것으로 시작했다. 당시 초등학교 축구부는 현대식 훈련 같은 게 전무했다. 간단한 스트레칭 후에 날이 어스름해질 때까지 무자비하게 혹사시키는 방식으로 반복 훈련을 했다. 하루하루가 체력적으로 버거울 만큼 고되었다.

더구나 윙 자리는 체력 소모가 큰 자리였다. 대회를 앞두고는 치고 달리기로 파고들어서 반대로 센터링하는 연습을 반복적으로 해야 했는데. 거의 탈진 상태에 이르기까지 모래바닥 먼지를 마시며 운동장을 뛰고 또 뛰면, 훈련이 끝날 즈음에는 목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운동장 모래 먼지를 하루에 한 숟가락씩 퍼마시며 뛰는 느낌이었다. 날이 저물 즈음에야 겨우 훈련이 끝나고 검은색의 투박한 낫소Nasso 축구화를 벗으면 두꺼운 녹색 스타킹을 신은 발바닥에서 후끈한 김이 피어오를 정도로 발바닥이 뜨거웠다



힘이 다 빠진 팔 힘으로 느릿느릿 편한 운동화로 갈아신을 즈음이면 누군가 큰 은행나무 앞에 진녹색의 플라스틱 우유 박스를 턱, 내려놓았다. 그 안에는 이백 밀리 서울우유와 봉지 빵이.담겨 있었다. 막히는 목에 우유 하나와 빵 하나를 꿀꺽꿀꺽 삼켜도 아직 속에서 올라오는 쇠 냄새와 허기는 가시지 않았다. 이내 야외 수돗가로 달려가 머리를 파뭍고 온몸의 땀과 모래를 씻어내며 수돗물을 벌컥벌컥 마시고는, 축 처진 몸을 이끌고 교문을 나섰다.


교문부터 수백 미터가 행복감이 절정에 달하는 구간이었다. 고생과 희망이 교차하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았다. 그렇게 오 분쯤 걸어가다 보면 집으로 꺾어 들어가는 사거리에 있는 포장마차 떡볶이집 안에서는 언제나 환하게 빛이 세어나왔다.

손으로 천을 살짝 열어제치고 몸을 집어넣으면 거의 자리가 없거나 한두 자리 정도 겨우 남아있었다. 뭐줄까? 할머니가 말씀하시면, 떡볶이 백 원어치랑 깻잎말이 하나, 계란 튀김 하나 주세요.

늘 꼬마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어 떡볶이도 튀김도 거의 그때그때 방금 만든 것들이었다. 떡볶이 국물은 딱 맛있게 맵고 달고 감칠맛도 좋았고, 대파가 그렇게 신선하고 아삭해서 씹는 맛이 일품일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집 깻잎말이는 정말… 한 입 베어물면 김이 솔솔 올라오는데. 깻잎의 고소하고 향긋한 맛과 함께 적당히 기름이 베어든 윤기나는 당면과 함께 물어먹는 맛에, 땀을 흘리면서도 플라스틱 컵에 담긴 물 한 컵과 함께 정말 열심히도 먹었더랬다.

길을 가다 옛날 떡볶이집이 보이면 홀린 사람처럼 들어가보곤 하지만, 무수한 시도에도 그날들의 영혼은 없다. 그렇게 또 실망하며 할머니 포장마차집 떡볶이 국물에 잠긴 깻잎말이처럼 촉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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