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타주Grattage 기법으로 쓰다.
(얇고 날카롭게 일곱 번 긁으면서)
1st
새벽, 열심히 원두를 갈고 아이스 라떼를 만든다. 사두고 잘 꺼내 먹지도 않은 버터리한 마가린 같은 것과 바닥을 보이는 마지막 딸기잼을 냉장고에서 꺼낸다. 오래 되어 말라 비틀어진 곡물 식빵 조각을 대접에 담아 퍼먹을 스푼을 꽂아 넣는다. 냉장실에 녹은 냉동 딸기도 꺼내어 머그에 가득 담고, 조금 남은 우유를 탈탈 털어 넣는다.
책상에서 글을 쓸 준비를 하고, 쓰던 스타벅스 빨대로 찬 라떼를 한 모금 삼켜본다.
아, 좋다. 잠깐 행복하다는 느낌이 느껴진다. 마침내, 마침내. 진공의 시간이다.
잠깐이라도 성경 말씀을 봐야지 생각한다.
전도서 7:2-7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하는 것이 마음에 유익하기 때문이니라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한 자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느니라
지혜로운 사람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
우매한 자들의 웃음 소리는 솥 밑에서 가시나무가 타는 소리 같으니 이것도 헛되니라
탐욕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하고 뇌물이 사람의 명철을 망하게 하느니라
2nd
‘아르노 강에서 2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넓
고 깔끔한 분위기의 식당. 유쾌하고 젊은
주인이 경영하는 곳으로 주인을 닮은 듯한
즐겁고 상쾌한 공기가 식당을 가득 채우고
있다.‘
아르노 강은 어디이고,
유쾌하고 젊은 주인은 누구일까.
그를 닮은 듯한 즐겁고 상쾌한 공기란, 어떤 공기일까.
이탈리아 데이.
듣기만 해도 설레는 제목이었다. 어느날 무심코, 기어코 샀다. 설렘도 잠시. 다시 이내 오랫동안 아늑한 내 방 안의 책 탑에 대충 쑤셔넣어진다. 그리고는 며칠 전에 이르러야 함께 포개져 있던 두 권의 책과 함께 책상 위로 승진을 한다. 책상 위에 눕혀져 다시 며칠을 보낸다.
여행 책은 그때 내게 유용한 것이 아니었다. 이 책과 함께 집어든 젊은 작가상 작품집 여러 권도 무용해 보이기는 매한가지였지만. 이태리 여행 책이야말로 내가 있는 곳과 너무 멀리 있는 책이었다.
긴 긴 잠을 자다가 마침내 깨어난 주말 새벽, 마침내 내 손은 그를 더듬어 펼쳐 든다. 아무 페이지나 편다. 어떤 넓음과 달콤함을 찾아 무심코 한 곳에 눈길이 머무른다. 무심하게 따라 읽어 내려가 본다. ‘아르노 강에서 2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넓고 깔끔한 분위기의…‘
3rd
자는 자리 옆에 놓여 있던 작고 낮은 책 탑에 있던 ‘잃어버린 영혼(올가 토카르추크)’도 펼쳐 보았다. 읽어 보려고 높은 책 탑에서 빼 들어 놓고, 다시 잠자리 옆에 몇 권의 책들과 함께 둔 지 족히 한 달 여만의 일인 것 같다.
< 잃어버린 영혼 > 중에서
엊그제 늦은 밤, 오랜만에 맥주를 사들고 자전거로 지인 집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인지 나의 생각인지 아직 확실히 알 수 없는, 중요한 생각이 마음 속에서 떠올랐다. 하지만 얼른 가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서 그 즉시 그것을 써두지 않고, 연신 자전거의 패달을 굴렀다. 뒤늦게 그 생각이 나서 쓰려고 했지만 당시에 떠오른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다. 어떤 생각이었는지는 떠올랐는데, 그때 마음에 아로새겨졌던 정확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고. 함께 하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집중하지 못했다. 집중을 못하고 있으니, 음식도 맛있게 먹지 못했고, 대화도 재밌게 하지 못했다. 시종일관 몸에서 아주 중요한 나사 하나가 떨어져 나간 로보트처럼 굴었다. 너무 정신 없는 모습을 보여서 미안했다. 나 자신도 고통스러웠다.
그렇게 깊은 새벽에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 와 보니 자전거를 타고 오는 동안, 굳이(당근 나눔을 해주신 분이 자전거로 가져가는 동안 모양이 망가지지 않게 어련히 꼼꼼하게 작은 쇼핑백에 싸주신 상태였는데. 미련하게, 굳이 덜렁거리면서.) 넓다란 쇼핑백에 대충 담아 온 화분에서 이리저리 부데끼는 사이 흙이 부서져 내려 심겨져 있던 대부분의 크고 작은 선인장 조각들이 흙에서 뽑혀 있었다. 이내 장갑을 끼지 않은 채(약간의 술기운이 남아, 다소 흥분되고 미련 맞은 상태였다.) 맨 손으로 선인장들을 집어 심어 보려 수십 분간 애쓰고 애썼다. 어거지로나마 그렇게 대부분의 선인장 조각들을 심기는 했다. 대충 얼추 심어 놓고는 화장실로 들어가 한참을 뜨거운 물로 손을 씻어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씻어낸 후에도 손 이곳저곳이 따끔거렸다. 가시가 박혀있다 빠진 자리가 따가운 거겠지.
다음날 잠에서 깨어나서도 손이 얼얼했다. 밤 사이 약간 부은 듯 했다. 휴대폰 플래시를 비추자 1-2 밀리미터 정도의 작고 얇은 가시들이 여전히 손 옆이나 손등, 손가락 사이 같은 곳에 박혀 있는 것이 보였다. 후회와 자책감이 들었다. 잠에서 깨어나 이제 다음날이 되었지만 여전히 혼란스웠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작은 가시와, 작은 가시처럼 괴로운 채로 여전히 내 앞에 남아 있는 나의 날들을.
‘뭐가 그렇게 급했다고.
잠시 숨을 고르고 천천히, 옥상에서 내려가 주방에 가서 요리용 고무 장갑이나 큰 설겆이용 고무 장갑이라도 끼고 다시 옥상으로 올라와서 했으면 이렇지 않았을 텐데. 누가 쫓아 온다고.’
4th
‘심호흡. 5초간 마시고.. 스읍, 15초간 내쉬세요. 푸후…………..’
머리가 살짝 지끈거렸다. 맥주를 많이 마시지도 않았는데. 머릿속이 정갈하지 못한 상태에서 알코올을 마셔서 이런 것일 것이다. 불쑥 아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따끔거리는 퉁퉁 불은 손에 폰 플래시를 비추어 미세한 가시들을 한 개씩 빼내 방바닥에 털어 놓으면서 혼잣말처럼 이런저런 말을 했다. 어제 그 단어가 생각이 도무지 안 나서…. 그게 여기까지 온 것 같아. 작은 선인장 가시가 큰 인생 전체에서 작은 일이 아닌 거야. 이렇게 작고 작은 일들이 나를 얼마나 얼마나 괴롭히는 일일 수 있는지... 미장원에 앉아서 반나절, 한나절을 보내시는 권사님들처럼 수다스럽게 의식이 흘러가는 대로 말을 해댔다.
다음 날.
그 다음 날도.
하루종일 자고, 또 잤다. 그렇게 자도 개운하지도 않았다. 머리도 몸도 아직 뻐근거리고, 피로감에 찌든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가만히 생각했다. 어떻게 이렇게 많이 잘 수가 있지. 몸이 스스로 전원을 차단하고 방어기제를 사용한 걸까. 이게 다 뭐지. 여기는 어디지. 나는 도대체 뭘하고 있는 거지. 혼란스러운 정신 상태에서 내가 나를 꼭 그렇게 몰아붙일 필요가 있었을까. 나는 왜 그래야만 했을까. 어떤 상황이든지, 마음의 여유를 좀 갖을 수는 없었던 거야? 아무리 중요한 단어였어도 그렇지. 생각이 안 나면 잊어버리고 넘어가야지. 마땅히 그럴 수 있었야지. 왜 그렇게 집착하고 괴로워해야만 했을까. 그런 것쯤 하나님께 맡길 수도 있는 거잖아. 나는 무엇에 그렇게 쫓기고 있었을까.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으리란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다 나의 문제였다. 무언가 작게, 작지만 크게, 아니면 애초부터 아주 한참 잘못되어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나가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걸까. 복잡한 문제들을 돌파하며 헤쳐나가기 위해 나는 모든 순간 절실하게 무언가를 붙들어야만 했던 걸까. 자신의 힘을 믿었을까. 나에게 하나님은, 내내 그동안 무엇이었을까. 그는 누구였을까. 나에게 누구일 수 있었을까.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들 다 만나고 오겠네.’ 앞으로, 앞으로, 자꾸 걸어나가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어쩌면 꽤 걸어 나갔지만, 그런 줄 믿고 있었지만. 나는 그 자리에 있었다. 아니 오히려 뒤로, 뒤로 후퇴해 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앞으로 가려 할수록 뒤로 갔다.
5th
나는 아직도 나를 모르는 것 같았다. 프로이트 심리학 이론처럼 자신의 10 퍼센트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가고, 밖으로 넓게, 멀리 나가는 것보다 나를 이해해야 할 것 같았다. 내 안으로 들어가서, 천천히 내 마음속 구석구석을 살피며 여유롭게 이해해 나가며 좀 여유로워질 수 있으면,사람이 이전과 달라 보일 수도 있게 될 것 같았다. 나를 이해해야 해.
나를 이해하기 위해 무엇보다 하나님의 거울로 나를 비춰봐야 해. 종교를 가진 사람으로서 나는 자신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로서 비춰지는 자신을 조명해 나가며 이해해 가는 것이 나를 아는 최선의 방법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장 자신다운 자신이 되기 위해서도 그랬다. 하나님의 거울로 자신을 비춰보며, 전능자의 존재의 품에 의해 반영되는 내가 되는 것이 더욱 내가 되는 일일 것이라고, 자신다운 모습으로 돌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리라고 생각했다.
잠잠히 생각하며 그려 본다. 결핍과 채워지지 않는 욕망, 자신도 채 알지 못하는 얕은 위로로 봉합된 상처로 온몸에 두드러기가 난 내 존재가 깨끗이 낫고 웃을 수 있는 그림을. 신약 속 앉은뱅이가 몸을 담그고 나은 실로암 우물과 같은 이야기를 가만히 바라본다.
6th
‘넓게’, 멀리‘가 곧 내 안으로. ‘내 안 구석구석으로’가 곧 멀리, 넓게, 높이.
이탈리아 여행책을 집어들어 커다란 플라스틱 바구니에 넣으며, 나는 ‘꿈’을 꾸던 것이었다. 누운 채 요 바닥에 얼얼한 손을 내려 놓고, 낮은 한숨을 내쉬며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고, 우회하는 길이, 여유로운 시간이 필요하겠다고, 나를 이해해 나가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내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이탈리아와 필리핀과 인도로 여행을 가고 있는 것이었다. 멀리는 내 안으로, 내 안으로는 멀리-였다.
7th
여생에서 한번쯤, 일곱 살 때처럼 그냥 마구 까불며 놀고 싶다. 중요한 생각들 다 집어 던지고. 소설도 마음껏 읽고. 저녁마다 푸짐한 저녁상을 차려놓고 사람들과 수다 떨고 사랑하고 가여워 하고, 나와 너, 우리를 애통해 하며 엉엉 울다, 울고 불다, 그러다 웃으며 잠들고 싶다.
필사적으로 끝을, 죽음을 생각해야 한다. 깊은 어둠 속에서 평화를 찾아야 한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하는 것이 마음에 유익하기 때문이니라
(…)
우매한 자들의 웃음 소리는 솥 밑에서 가시나무가 타는 소리 같으니 이것도 헛되니라“
——————
* 새까만 크레파스나 물감 칠을 이쑤시개로 긁어내며 그리는 미술 기법. 내 속의 새까만 어둠을 긁어내며 써나갔다. 밑바탕에는 어떤 총천연색의 크레파스 칠이 있을지.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
(아, 이따금 마시던 약간의 술도 완전히 다 끊어야겠다고 결심한다. 조금 더, 끝까지… 마음껏 한번 놀아보고 싶었는데… 이제, 다 그만두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