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맥락의 콜 포비아

by jungsin


그제는 하루종일 집에 있었고, 한 통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 최근에 봉사했던 교회의 목사님께 전화가 왔지만 받지 않았다. 가깝게 지내는 교회 어머님께 전화가 왔지만 받지 않았다. 교회 자매에게 온 전화도, 모르는 번호로 온 전화들도 다 받지 않았다.


왜인지 전화기에 사람 이름이 뜨는 것을 보면 화가 났다. 아는 사람인데도, 그러할 뿐 아니라 아주 가깝고 편한 사람들인데도 그랬다. 이렇게 오랜만에 연락하는데, 사람 놀라게 왜 불쑥 전화를 걸지. 내가 어떤 중요한 시간 속에 있을 줄 알고. 괜히 전화 못 받는 사람만 미안해지잖아. 카톡으로 하면 되는데. 왜 이렇게 배려심이 없어, 사람들이.


알고 보면, 실은 누구보다 자기가 그러면서 말이다. 정작 자신이 불쑥 전화 걸기를 즐기는 사람이어왔으면서, 남들에게 전화가 오면 반감이 앞서는 이 모순을 이해할 수도 없고, 누구에게 명쾌하게 설명할 수도 없을 것 같았다.


답은 시간의 간격을 두고 오직 카톡으로만 했다. 각 사람과의 관계적 거리감에 맞는 방식으로 간드러지고 친절하게, 정성껏 답을 해주었다. 콜 포비아일까. 주인이 오면 마룻바닥에 오줌을 지리는 치와와처럼 사람을 좋아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처럼 사람을 만나 은밀한 비밀을 나누기를 즐기던 내가, 설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조금은 콜 포비아 증상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복잡다단한 경험의 맥락이 있었으리란 걸 더듬어 알 수 있었다. 언제부턴가 힘든 일이 엄마손파이처럼 켜켜이 쌓여갔다. 일이나 관계가 꼬이고 억울해지고 피곤해지는 일이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꿀타래처럼 연이어 생겼다. 손대는 일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경이로울 만큼 말이다.


뭇사람들이 가만히 있는 나를 불러내 자꾸만 하소연을 하고 짜증을 부리고 화를 냈다. 나라는 사람은 다 받아줄 것 같아서였는지, 자꾸만 그런 일이 일어났다. 인상 좋으시단 말 많이 들으시죠. 기운이 너무 좋으셔서… 시간이 다급한 상황에서, 더욱이 초행길에서 헤매고 있는데. 미간을 찌푸리며 마을 버스 정거장의 작디 작은 버스 노선표를 찾아보고 있는 사람의 귓전에 대고 쉴 새 없이 떠들어 댔다. 잠깐 시간을 내달라고. 시간은 생명인데. 어떻게 저렇게 쉽게, 시간을 좀 달라는 말을. 염치도 없이.


언제쯤부터였을까. 시간을 내달라는 말이 이따금 내 하얀 팔뚝에 카터 칼로 작은 상처를 내도 괜찮겠느냐고 묻는 것처럼 들린 것은. 오후치 만큼만, 삼일치만, 일주일치 상처 만큼만 좀 베면 안 되겠느냐고 정중히 물어오는 것 같았다.


이런 기현상은, 그러니까 나의 세계에서는 적어도 이런 상상을 자아냈다. 나는 착하게 얌전히 있는데, 빼곡하고 단단한 정육면체의 벽이 일정하게 나를 향해 조여 온다. 누군가를 끌어안으려 할수록 발로 찬다. 아직 언어도 없이 물소리만 나는 진공의 공간에서 머리를 내밀어 안간힘을 쓰며 번영과 행복의 세계로 나아가려 하는데, 그럴수록 보이지 않는 간수가 기를 쓰고 밀어넣는다. 나는 캄캄한 자궁 같은 곳에서 또 다시 침묵해야만 한다.


시간이 필요했다. 시간의 미로 속에 갇힌, 실종된 자기를 찾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야만 해.-라고 생각하면 해야 하는 사람. 싫어도 좋아도(대게는 싫었지만) 당위만 부여되면, 결국 용기 내 움직이는 선비형 무관. 오랜만에 찾아 뵌 친구 어머니는 다정하게 안부를 물으시며 인사말처럼, 너는 어쩌면 항상 그렇게 좋은 일만 하고 다니니-라고 하셨다. ‘좋은 일’에, 의무감에 허덕이고 쫓기는 사이 시간은 풀리는 것이 아니라 엉킨 실타래처럼 더 복잡하게 꼬여가는 것만 같았다.


그럴 때마다 엉킨 실을 하나하나 풀어가며, 끙끙거리며 골몰해 보곤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복기는 무모한 일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나의 미로는 도무지 탈출구를 찾기 어려울 만큼 난이도가 높았다. 애초에 엑시트란 없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나뿐인 출입문은 진작에 벌써, 내 등 뒤로 굳게 잠겼고. 들어가는 순간 이제는 천장만 뚫린 필멸의 미로의 세계로 나도 모르는 새 깊숙이 들어와 있던 것인지도 몰랐다. 나는 무언가 내 안에서 잃어버린 것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새로, 무게의 중심을 잡을 필요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