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달빛
-원종도
서호가 가장 아름다운 시기는 봄, 그중에서도 달이 밝은 날이다. 아침 안개가 끼거나, 저녁 남기가 자욱할 때가 하루 중에서는 절정이다. 올해는 봄눈이 많이 와서, 추위에 밀린 매화가 살구 복숭아꽃과 차례대로 피어 더욱 경치가 기이하였다.
석궤가 거듭 내게 말하였다. "부금오 정원의 매화가 장공보 집에 있던 것인데 빨리 가보세나!" 하지만 나는 복사꽃에 매료되어 차마 떨치고 떠나지 못하였다.
호수는 단교에서 소제까지 20리에 걸쳐 길게 푸른 연기, 붉은 안개로 가득 차 있었다. 사람들의 노랫소리가 바람이 되어 불고, 분 냄새나는 땀이 비처럼 내리고, 비단옷은 호숫가 풀보다 무성했다. 그지없이 아름다웠다.
그러나 항주 사람들이 호수를 유람하는 것은 오시, 미시, 신시 세 시간뿐이다. 사실 호수가 비췻빛으로 고묘히 물들고, 색이 묘한 색을 띠는 것은, 아침해가 솟아오르거나 석양이 아직 여운을 남길 때다. 호수의 짙은 매력은 이때 드러난다.
달빛 아래의 경치는 더 말할 나위 없다. 달빛 아래 드러나는 꽃의 모습, 버드나무의 서정, 산의 자태, 물의 정감. 이런 것이 서호의 또 다른 아취요 멋이다. 그러나 이러한 즐거운 광경은 산승이나 유객에게 남겨 주어 즐기게 할 것이니, 어찌 속세 선비들에게 말할 수 있으랴?
명륜동 봄밤
-사브다
명륜동이 가장 아름다운 시기는 봄, 그중에서도 비오기 전날 밤이다. 별무리 달무리 뿌연히 끼면 짙은 하늘에 하얀 안개가 자욱이 핀 듯하다. 올해는 봄비가 많아 그윽한 감성의 별무리 달무리가 자주 나타나 더욱 경치가 기이하다.
봄밤이 차가워 집안으로 자꾸만 들어오라고 하지만 나는 수증기 가득한 봄밤의 하늘에 매료되어 차마 떨치고 들어가지 못한다.
비오기 전날 봄밤 하늘에는 희뿌연 별무리, 달무리가 군집을 이루듯 이어지고, 그 사이사이로, 위로 오르는 땅의 빛들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인공조명 빛들이, 삶의 소리들이, 삶의 공간을 샅샅이 흩어 흐르는 바람들이 교우하며 봄밤 하늘을 가득 채운다. 그지없이 아름답다.
일을 끝내고 스튜디오에서 집까지 가는 그 길, 그 길 위의 명륜동 밤하늘은 오늘 하루의 모든 일들을 고요히 덮어주고, 물기 가득한 수증기는 거칠어진 마음속까지 스며들어 부유하고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짙은 남빛- 포근한 봄밤의 색을 입혀주고 더 이상 다치지 않는 새 마음을 준다.
물기 먹은 명륜동 봄밤 하늘 아래의 경치는 더 말할 나위 없다. 수증기 가득한 대기 속 상점들의 다양한 빛, 그 조명의 뿌연 빛을 흡수하고 반사하면서도 고묘히 자신들의 고유한 빛을 품어내는 봄꽃들, 각양각색 집들의 자태, 하루 일과를 끝내고 집으로 가는 사람들의 느릿한 자취들... 살아가는 이러하고 저러한 모양들이 드러나면 새로워진 마음은 좀 더 풍성해진다. 내일이면 또다시 할 수 있을 거라는 작은 의지가 생긴다. 수증기 가득한 명륜동 봄밤 하늘의 짙은 매력은 이때 나타난다.
이런 것이 명륜동에서의 삶의 또 다른 아취요 멋이다. 그러나 이러한 즐거운 광경은 소소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남겨 주어 즐기게 할 것이니, 어찌 높으신 마음의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