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길을 묻다 _ 냐짱
그곳이 어디든
여행을 떠나기 위한 준비 과정에서 느끼는 설렘은
이미 여행의 일부분이다.
적당한 기대와 걱정의 감정들은
두꺼운 겨울 외투 속에 숨겨두고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섰다.
제주에서 김포로 다시 인천에서 냐짱으로
두 번의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 긴 여정이다.
연착으로 늦어진 비행과 끝없는 도미노처럼 늘어선
사람들의 입국 심사대를 거쳐
통틀 무렵의 새벽이 되어서야 호텔에 짐을 풀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눈이 내리던 곳에 있었다는 것이
거짓말인 양
냐짱에서 맞이하는 첫날에 아침은
봄날처럼 따뜻했다.
겨울은 추워야 제맛이라며
항상 겨울여행은 더 추운 곳으로 가곤 했던
기억밖에 없다.
나이가 들어도 본능이 반응하는 경험은
행복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여행의 시작은
가벼운 셔츠와 반바지 차림으로
낯선 도시의 군중 속에 스며들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가득 찬
모래시계를 엎어놓고
직관적인 시간의 여유를 누리다 보면
냐짱의 하루하루는
어느새 가느다란 유리 속 튜브를
미끄럼틀 삼아 떨어진
모래 알갱이들로 조그만 성을 쌓기 시작한다.
다른 여행자들 틈에 섞여
이미 유명한 관광지를 방문하거나
생소한 모습의 사람과 집들
그리고 거리의 풍경을 그림을 그리듯
카메라에 담았다.
" 오빠! 저기 낚시하는 사람들이 있네 "
제주에 살면서 사진과 낚시는
늘 나에 관심의 대상이란 걸 아는 아내가
구석진 방파제를 가리키며 말했다.
" 어디? "
나는 혼잣말처럼 말하고
아내의 시선이 이끄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것은
동질의 감정을 나누는 동지처럼 반갑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낚시하는 사람들의 장비를 본다.
낚싯대와 릴 그리고 매어진 채비와 미끼까지
빠르게 훑어 내렸다.
모든 장비들이 투박하고 무겁다는 건
이곳에서 낚이는 물고기의 크기가 크다는 것을
가늠하게 한다.
그러고 보니 아내는 세월에 주름진 나를
평생 오빠로 기억하고 불러주는 유일한 사람이다.
빈원더스의 방문은 어린 시절 추억을
되돌아보게 했다.
서울의 남산 케이블카와
지금은 사라져 버린 부산의 금강동물원이
내가 기억하는 첫 경험의 장소들이다.
바다 위를 가로지른 케이블카와 유럽풍의 건물들
그리고 관람차와 사파리의 동물들이
또 다른 나의 첫 경험의 장소로
각인되는 날이었다.
기억되고 기억해야 하는 날에
달라진 게 있다면
그날에 나는 고인이 되신 아버지의 손을 잡고 걸었고
지금 나는 아내의 손을 잡고 걷고 있다는 것이다.
도착한 첫날부터 떠나는 마지막 날까지
인파로 붐비는 도시의 비좁은 길을 지나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냐짱비치를 찾았다.
야자수와 비치파라솔이 늘어선 풍경과
바람소리와 파도소리의 울림을 느끼며
해변을 따라 걷는 즐거움은
유난히 바다를 좋아하는 아내와 나에게
낯섦과 익숙함이 공존하는 장소였다.
연애시절 아내에게 사랑은
파도와 같은 것이라고 말했었다.
때로는 거칠거나
때로는 잔잔하거나 멈춰 보이더라도
끊임없이 파도는 치고 있다 걸
의심하지 않는 믿음이길 바랐었다.
냐짱의 머무는 날들은
지나온 날들에 대한 기억들이
물 위에 반짝이는 윤슬처럼 빛나는 날들이었다.
여행의 최종 목적지가 다낭이었기에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는 길을 따라
이동하기로 했다.
다음 여정지인 무이네가
올라가는 길목에 위치한 지역이라 생각했는데
지금의 위치보다 더 남쪽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걸
하루 전에 알았다.
급하게 냐짱과 다낭의 중간정도 지역인
꾸이년으로 행선지를 변경하고
예정에 없던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