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모순된 감정을 다룬 노래에 끌리고 말지
확실한 게 좋다고 말하면서 정작 가장 끌리는 건 애매한 것들이다. 단순한 사랑 노래보다 복잡하고 모순된 감정을 다룬 곡들에 더 빠져들고, 명쾌한 답보다 질문투성이인 관계에 더 마음이 간다. 이상하지 않나?
2022년에 방영된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이.제.서.야. 뒤늦게 보고 있다. 그저 남녀간의 본능적 이끌림이 아니라, 나를 더 나아지게 만드는 어떤 존재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서로의 삶에 대한 위로와 응원으로 시작되는 나희도와 백이진의 사랑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푹 빠져서 보고 있다.
9화 에피소드는 특히 인상적이었다. 나희도(김태리 역)는 백이진에게 이렇게 고백한다.
https://youtu.be/rZI6AhiyiHI?si=IBPrdYIJw77y-Bub
나 너 질투해
아니 나 너 좋아해
근데 너한테 열등감도 느껴
넌 이게 무슨 소리 같애?
모르겠지.
나도 하나도 모르겠어.
근데 그 와중에 고백이라고 한 게
너를 가져야겠다니...
나는 확실한게 좋은데
모든게 불투명해 너만 생각하면....
그저 '좋아해'나 '사랑해'라는 단순한 말이 아니라, 질투하고 열등감을 느끼고 모르겠다고 토로하는 이 복합적인 고백이 너무나 날것 같으면서도 진실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양가감정'이 바로 이런 것일까. 한 대상에 대해 마음속에서 서로 모순되는 감정들이 충돌할 때 느끼는 그 불편하면서도 강렬한 끌림 말이다.
나 역시 이런 복잡하고 모순적인 감정이 들면 그 대상을 명확하게 정의내릴 수 없어서 오히려 더 깊이 빠져드는 것 같다. 사람도 그렇고 음악도 마찬가지다. 특히 음악에는 이런 모순적 감정을 완벽하게 담아낸 곡들이 있다. 슬픈 가사에 밝은 멜로디를 얹거나, 떠나간 것에 대한 그리움과 새로운 것에 기대감이 동시에 흐르는 노래들.
이런 곡들은 우리 내면의 복잡함과 정확히 맞아떨어져서 한 번 들으면 헤어나올 수 없게 된다.
https://youtu.be/W8r-tXRLazs?si=uc--S-4ZaU379Of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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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were the first one
당신이 처음이었고
You were the last one
당신이 마지막이었어요
Video killed the radio star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어요
Video killed the radio star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어요
In my mind and in my car
내 마음에서도, 내 차 안에서도
We can't rewind we've gone too far
너무 멀리 와버려서 되돌릴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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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MTV 시대의 도래를 뜻하는 상징적인 노래, 라는 해석에 갇혀 있지만, 나는 이 노래야말로 양가적인 감정의 복합체라는 생각이 든다. 한때 나는 이 노래에 깊이 빠져서 하루종일 무한반복하며 듣다가 이 밝고 경쾌한 리듬의 노래로부터 묘한 슬픔을 느꼈다. 왜일까?
이 노래는 이제는 Video 시대로 인해 자리를 내 주어야 할 과거의 Radio Star에 대해 "당신이 내겐 처음이었고 마지막이었다"고 찬사를 보낸다. 내 마음에서도, 내 차 안에서도 당신이 가득 채웠던 찬란한 순간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한 노래가 이 노래의 핵심이기도 하다. 하지만,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이 노래는 그 새로운 기술(비디오)을 직접 활용해서 만들어지기도 했다. 아울러 신시사이저와 전자음향을 적극 활용하면서도, 멜로디는 어딘가 과거에 대한 향수와 복고적 정서가 가득한 노래이기도 하다. 마치 미래를 향한 기대와 과거에 대한 향수가 동시에 존재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Radio Star가 내게 유일한 스타 거라고 말하지만, 결국은 새롭게 다가오는 시대에 대한 묘한 흥분과 기대 역시 가득하다.
누군가 비약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나는 이 노래가 어쩌면 떠나보낸 과거의 연인에 대한 충분한 감사와 고마움을 전하면서도, 새롭게 다가오는 시대와 새로운 사랑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숨어있는 노래라고 생각한다. 그런 양가적인 감정이 이 노래의 가장 큰 매력이다.
https://youtu.be/0xjD7KbxgGQ?si=Hxby6bnembdJGT1F
이 노래는 런던 출신의 밴드 Wolf Alice의 노래 The Beach이다. 점점 멀어지는 관계 속에서 느끼는 소외감, 피로, 그리고 회피의 욕망을 담고 있다. 겉으로는 ‘친구’라는 외피를 유지하지만, 감정은 마주치지 않고 점점 깊은 내면의 바닥으로 가라앉고 있는 모습이 이 노래에 잘 표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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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 me off, let me in
날 그만 내려줘, 아니면 좀 들여보내주던지
(이 관계에서 완전히 떠나게 해주든지, 제대로 나를 받아줘)
Let others battle / We don't need to battle
남들 싸우게 내버려 둬 / 우린 싸울 필요 없잖아
And we're both shouting
그런데도 우린 둘 다 계속 (충돌하며) 소리치고 있어
When will we meet eye to eye
우린 도대체 언제쯤 (진심으로) 눈을 마주할까
We clink the glass / But we look at the floor
잔은 부딪히지만, 우리는 그저 바닥만 보고 있는 걸
Are we still friends / If all I feel is afraid?
내가 느끼는 건 두려움뿐인데, 우리 아직 친구인거야?
You're not a bitch / But just a bit when you're bored
너 못된 사람은 아니야, 근데 심심할 땐 좀 나를 함부로 대해
Let me off, let me in...
(제발) 날 그만 내려줘, 아니면 좀 들여보내주던지
Lost in my mind / Was a stone from the beach
내 머릿속엔 해변에서 주운 조약돌 하나
The perfect circle, gave a moment of peace
그 완벽한 원형이 내게 잠깐의 평화를 줬어
Now I'm lying on the floor / With our love off the shore
난 이제 (해변의) 바닥에 누워 있어. 우리의 사랑은 해변 밖에 떠내려갔지.
I close my eyes and imagine / I'm not there
눈을 감고 상상해, 내가 거기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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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 me off, let me in"이라는 반복되는 외침이 이 노래의 핵심이다. 이 관계를 완전히 떠나고 싶은 마음과, 이 관계에서 진짜 받아들여지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걸 보여준다. 떠날 수도 없고, 머물 수도 없는 그 애매한 지점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는가.
결국 "Let me off, let me in"이라는 외침은 관계의 명확함을 갈구하는 절규다.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공중에 떠 있기보다는, 차라리 완전한 이별이든 완전한 화해든 뭔가 확실한 것을 원하는 마음. 하지만 현실의 많은 관계들이 그렇듯, 우리는 대부분 이런 애매함 속에서 살아간다.
가사 마지막에 나오는 해변의 조약돌처럼,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파도에 밀려왔다가 밀려가기를 반복하며 조금씩 모서리가 둥글어져 가는 것 정도를 바랄 뿐이다.
https://youtu.be/CLXroGPSNds?si=OShjYmaUn0QsHEvo
난 화장실에 앉아 있어요
지금 당신은 뭘 하고 계실까
부서져버린 내 마음의 주인은 이미 산산조각 나버렸어요
그래요 난 어쩔 줄 모르고 또 하루를 살았겠지만 이미 올라와야 할 내 마음의 악기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데요
나를 미워하세요?
나를 싫어하세요?
나를 미워하세요?
나를 싫어하세요?
나를 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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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미선이의 'Sam'을 처음 들었을 때, "난 화장실에 앉아 있어요"라는 첫 문장부터 너무나 날것이어서 당황스러웠다. 가장 사적이고 무력한 공간에서 토해내는 고백이라 가장 연약하지만 가장 강렬했다.
"나를 미워하세요? 나를 싫어하세요?"라고 반복해서 묻는 목소리는 특히 그러하다. 정말 알고 싶지만 차마 직접 물어볼 용기는 없어서, 그저 화장실이라는 혼자만의 공간에서 속삭이듯 중얼거리는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 "나를 좋아하세요"라는 말에서는 간절함과 동시에 체념이 느껴진다. 사랑에서 가장 괴로운 건 미움받는 것도, 사랑받지 못하는 것도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Sam'은 그 불확실성 속에서 혼자 떨고 있는 한 사람의 작고 여린 목소리다.
연옥이 고통인 건, 연옥 자체가 가장 고통스러워서가 아니라, 그 고통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확실성에서 온다는 글을 읽었던 적이 있다. 사랑도 그런 걸까.
나는 확실한 게 좋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가장 끌리는 건 이런 애매하고 모순된 감정들을 다룬 노래들이다. 1979년부터 2021년까지, 시대가 지나도 인간의 복잡한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명확함을 갈구하면서도 불확실성에 매혹당하고, 단순함을 원하면서도 복잡함에 빠져든다.
결국 이게 우리의 진짜 모습인지도 모른다. 모순을 품고 살아가면서도 그 모순에 끌리는 것.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이런 양가적인 감정을 다룬 노래에 그저 매혹당하며 그 속에서 위로받는 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