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리밍앱+캘린더앱+AI+노션으로 일상화하기
2008년에 네이버 블로그에 이런 글을 썼었다. 내가 클래식 음악을 들으려고 시작한 것은 아마도 이 때부터였던 것 같다. 벌써 17년 전이다.
세상에 특정 음악 장르가 더 위대하고 덜 위대하고 이런 건 없다고 생각해.
그런데 클래식 음악 특유의 '계급화된 위치'가 싫어서 이상하게 나는 그 음악을 멀리했던 것 같아.
그러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어.
바흐와 헨델과 모짜르트와 베토벤이 그 옛날에,
몇 백년후의 나라는 사람에게 딱 위로가 될 엄청난 음악을 만들어놓았을 수도 있는데,
그저 '클래식 음악은 너무 계급을 공고히 하는 음악이야' 라는 이상한 거부감에 사로잡혀
그 세계를 탐방하지 않는다면 너무 손해이지 않을까?
그리고 내가 그 음악을 접하기 위해서 몇십만원짜리 공연티켓이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닌데 말야.
내가 클래식 음악을 접하기 위해 필요한 건 그저
- 음악 사이트에서의 검색어 입력에 드는 수고로움
- 클래식 입문을 위한 책 1권
- 그리고 편견없은 아이같은 호기심
만 있으면 되는데 말이야.
그리고 내겐 그 모든 것이 다 있는데 말이야.
게다가 초등학교 때부터 이어온, 나의 팝/락음악에 대한 엄청난 사랑의 역사가 있다면,
나는 분명히 클래식 음악도 사랑할 수 있을만큼의 자양분을 같고 있음에 틀림이 없어.
그래, 이제부터 클래식과 나는 친구가 될거야. 노력할거야.
이 때부터 결심했다고 17년간 줄기차게 클래식 음악을 들었을 리가 없다. 저 때 결심을 한 이후로 정말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와 '나랑 클래식 음악은 안 맞네' 류의 포기가 서너번 있었던 것 같고^^.
하지만, 여하튼 시행착오는 거듭하되 포기는 하지 않은 덕태에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클래식이 정.말.로 내 친구가 되었다고.
그래서 오늘은 내가 찾은 클래식이 정말로 내 일상의 루틴이 되는 방법을 소개해보려 한다.
다만, 파워 INTJ라서 다분히 상당히 TJ스러운 방법론이 될 수도 있겠다.
클래식 음악을 접하는 방법은 책도 있고, 라디오나 유튜브 등도 있을진대, 자연스럽게 좋은 음악을 접하는 방법으로는 '라디오'가 가장 좋은 것 같다. 우리나라 유일의 클래식 FM 전문 라디오가 KBS Classic FM인데 '콩'이라는 앱을 통해서 무료로 청취가 가능하다.
내 경우에는 출근 시간에 듣는 KBS Classic FM의 <출발 FM과 함께>로부터 음악을 가장 많이 접하긴 하지만, 나머지 시간대의 아래 프로그램들도 역시나 좋은 채널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리고 선곡표를 웹브라우저에 저장해두면, 좋았던 음악의 곡목을 쉽게 확인할 수있다.
▼ 클래식 FM의 대표적인 프로그램과 선곡표
(아침 7시) ㅣ출발 FM과 함께 ㅣ 선곡표
(아침 9시) ㅣ신윤주의 가정음악 ㅣ 선곡표
(낮 12시) ㅣ생생클래식 ㅣ 선곡표
(저녁 8시) ㅣFM 실황음악 ㅣ 선곡표
(저녁 10시)ㅣ당신의 밤과 음악 ㅣ 선곡표
듣다가 좋은 음악이 나오면, 선곡표를 통해 작곡가와 제목, 연주자 등을 확인하고 바로 스트리밍 앱에 저장한다. 클래식 음악은 대중음악과 달리 곡의 길이도 길고 형식도 상대적으로 복잡하므로 여러 번 반복 청취가 필수다. 저장해놓고 자주 반복해서 듣는 것이 꼭 필요하다.
(여러개의 악장을 다 듣는 것이 부담된다면, 처음에는 좋았던 악장만 저장해도 된다)
▼스트리밍 앱에서 작품을 정리할 때 필요한 몇가지 규칙
- 기본적으로 클래식 음악을 저장할 때는 [작곡가, 작품형식, 작품명] 등으로 나름의 규칙을 만들어 정리하면 된다. 가나다순으로 정렬되니 향후에 듣고 싶을 때 쉽게 찾을 수 있다.
- 다만, <다 들은 작품의 경우>와, <아직 듣지 않은 작품의 경우>를 구별되도록 하는 것이 좋다. 아직 듣지 않은 작품은 아직 듣지 않았음을 명확히 구별하는 표식을 달아준다. 나는 가나다순으로 정렬했을 때 무조건 플레이리스트 최상단에 보이도록 일부러 '가'라는 표식을 달아뒀다. 이렇게 해서 플레이리스트에 접근할 때마다 항상 아직 듣지 않은 음악이 보이도록 해서 지속적으로 리마인드되도록 했다.
▼(Tips) 스트리밍 앱에서 명연주(명앨범)만 골라서 저장하고 싶다면, AI의 도움을 받기
선곡표에 나온 바로 그 연주자의 앨범을 찾아 들어도 되지만, 여러 연주자의 연주를 비교해서 듣는 것이 묘미다. 나는 동일한 작품이라도 3개 정도의 연주자를 비교해서 들을 수 있도록 하나의 플레이리스트에 여러 연주자의 음악을 저장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이때 연주자 추천은 AI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나는 Perplexity나 ChatGPT를 모두 사용한다). 프롬프트는 '이 곡에 대해서 가장 명반으로 알려진 연주앨범을 3개 이상 추천해주고, Spotify에서 찾을 수 있도록 명확한 검색어를 알려줘' 식으로 하면 된다.
클래식 음악 듣기를 생활화하고 싶다면, 루틴이 필요하다. 그 루틴의 단위로는 주 단위가 가장 적절했다. 적어도 1주일에 1개의 클래식 음악은 반드시 듣겠다는 결심과 노력이 필요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캘린더 앱'을 잘 활용하면 된다.
▼캘린더 앱 활용해서 금주에 들을 음악 항상 기억하고 리마인드하기
나는 캘린더 앱에 다음 주에 듣기로 한 음악을 미리 표시해두고, 캘린더 앱에 들어갈 때마다 이것이 눈에 띄도록 해뒀다.
작년에는 한 주에 한 작품은 꼭 듣는 식이었는데, 지금은 소화력이 올라가서 한 주에 5~7개 정도의 작품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해당 영역을 누르면 금주에 듣기로 한 곡목이 보이도록 해뒀다.
클래식 음악은 각 곡마다 시대적 배경, 곡의 형식, 각 악장별 특징, 역사적 맥락 같은 정보를 알고 들으면 훨씬 풍성하게 느껴진다. 좀 더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싶다면 아래 방법을 추천한다.
▼ (Tips) AI에게 시켜서 클래식 음악에 관한 정보를 항상 원하는 포맷대로 받기
나의 경우에는 AI에게 내가 어떤 곡목에 관한 정보를 물어보더라도, 아래의 형식과 순서로 답하도록 시켜두었다.
즉, 이렇게 포맷화해두었다.
▼ (예시) AI에게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에 대해서 알려달라고 했을 때의 답변
▼(Notion 등의 앱에) 클래식 음악과 관련된 정보를 기록해두는 체계를 만들어둔다.
① 클래식 음악과 관련된 노션 내의 다양한 페이지들
② 작품별 정보가 정리된 페이지 중에서 'ㅂ'으로 시작되는 작곡가들의 작품이 모여진 페이지_상단 목차 영역
: 그래서 그 음악에 관한 정보를 다시 보고 싶을 때 보다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해 두었다.
③ 개별 작품을 누르면, 해당 작품에 관한 정보가 보여진다.
(즉, 위의 4번에서 찾은 정보를 여기에 발췌해서 정리해두면 된다)
너무 TJ스러운 정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클래식 음악에 관한 방대한 정보는 어느 정도의 체계화와 공부, 반복적인 열람이 필수다. 나는 이렇게 체계를 만들어뒀는데, 꽤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쌓여가는 곡목의 정보들이 나의 지식이 되고 나의 청취 역사가 되어 더 풍성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싶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이 방법이 내가 클래식 음악에 대한 진입장벽을 해소하는 데 기여했다고 생각해서, 이 루틴 시스템을 지속해서 발전시켜볼 생각이다.
2008년 그 네이버 블로그 글을 쓸 때만 해도, 나에게 필요한 건 단지 "음악 사이트에서의 검색어 입력, 클래식 입문서 한 권, 그리고 편견 없는 아이 같은 호기심"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15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니, 정작 중요한 건 그 호기심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작은 루틴들이었다.
스트리밍 앱에 곡을 저장하고, 캘린더에 다음 주 들을 음악을 적어두고, AI에게 물어보고, 노션에 정리하는 일. 이 모든 게 엄청난 수고로움이 들 것 같지만, 오히려 클래식을 '특별한 순간'에서 '일상'으로 끌어내리는 소소한 장치들이었다.
아주 오래 전, 바흐와 헨델과 모짜르트와 베토벤이 어쩌면, 몇 백 년 후의 나라는 사람에게 딱 위로가 될 엄청난 음악을 만들었을 수도 있다는 그 기대는 역시나 틀리지 않았다. 클래식 음악 속에는 정말 몇 백 년을 뛰어넘어 나에게 위로가 되는 무언가가 있었다. 하지만 그 위로에 닿기 위해서는 단순히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듣고 이해할 수 있는 나만의 시스템이 필요했다.
혹시 클래식에 관심은 있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분들이 있다면, 이 방법들이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 결국 중요한 건 시작하는 것이고, 무엇보다 그 시작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나만의 루틴을 만드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