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층층이 쌓인 마음을 아는 사람들에게

by KeepWhatMovesMe

의 플레이리스트///

8월 이후, AI나 구글 검색창에서 가장 자주 검색한 이름은 아마도 '브람스' 였을 것이다.

작년 말부터 들은 브람스의 음악은 '교향곡' 그리고 '피아노 소품' 그리고 '(독일) 레퀴엠'을 거치다가 8월 어느 오후, <피아노 협주곡 1번>에 이르게 됐는데 뒤늦게 이 곡에 도달했지만 이 곡의 감흥은 아주 재빠르게 내게 왔다. 그 음악은 오랜 기간의 내 사랑이었던 쇼팽의 'Rondo a la krakowiak'과 엘가의 'The Snow'를 한순간에 밀어내고 왕좌에 올랐다. 그토록 확고했던 No.1 자리를, 브람스가 점령해버린 것이다.



게다가 며칠 전, 우연히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역시나 최애 영화 중 하나인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요약본을 다시 보다가 발견한 작은 단서 하나도 역시 브람스로 가는 다리가 되어 주었다. 그것은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여주인공 '조제'의 이름이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에서 왔다는 사실이었다. (관련 블로그)


그래서 이렇게 결론이 났다.


브람스 + 프랑수아즈 사강 =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읽어야겠다.


그리고 나는 알고 싶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이 문장에 숨겨진 진짜 의미를.


브람스, 힘겹게 그 꼭대기에 오른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속삭임

브람스


사실 브람스의 음악은 쇼팽과 베토벤보다는 확실히 진입장벽이 있다. 비유하자면 브람스를 이해하는 건 건축물을 해석하는 일과 같다. 쇼팽은 첫 음부터 마음을 적시고, 베토벤은 단 몇 마디 안에 그 격정과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지지만 브람스는 달랐다. 그의 음악은 즉석에서 자신을 내어주지 않았다. 마치 오래된 성채처럼, 층층이 쌓아 올린 구조를 하나씩 탐험해야 했다.


첫 번째 층을 지나고, 두 번째 계단을 오르고, 세 번째 문을 열어야 비로소 그 안에 숨겨진 비밀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교하게 짜인 논리와 형식 뒤로, 말할 수 없이 내밀한 정서가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 감정은 터지지 않고, 고요히 침잠해 있었다. 꾹꾹 눌러 담은 말, 꺼내지 못한 편지처럼. 힘겹게 그 꼭대기에 오른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속삭임. 그것이 바로 브람스였다.


브람스를 언급할 때 절대 빠지지 않는 이름, 슈만과 클라라.


출처: 한겨례

왼쪾부터 클라라, 브람스, 슈만

겹겹이 쌓인 구조물로 가리고 있지만 결국은 드러나고야 마는 브람스의 내밀함과 서정을 설명할 때, 절대 빠뜨릴 수 없는 이름이 있다. 바로 존경하는 스승 슈만의 아내이기도 한 클라라다. 브람스 음악의 모든 것이 클라라에 대한 연정만은 아니겠지만, 평생을 결혼하지 않고 클라라만을 사랑한 그의 개인사를 빼고 브람스를 설명하기란 어려울 것 같다.


브람스는 평생 클라라를 사랑했지만, 아마 '사랑한다'고 뜨겁게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평생 존경하던 스승의 아내였던 그녀에게 쉽게 마음을 드러낼 수도,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었던 그에게 그 마음을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매개체가 음악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이토록 단정해 보이면서도 이토록 아픈 것일까. 겉으로는 완벽하게 절제되어 있지만, 그 단단한 껍질 속에서는 말하지 못한 사랑이 가득하다. 브람스의 음악은 사랑을 숨기는 방법이었고, 동시에 사랑을 영원히 간직하는 방법이었을까 싶기도 하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속 폴의 마음도 그와 같았다.


폴(여주인공)은 로제(여주인공 폴이 사랑하는 연상의 남성)가 자신을 '그다지'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로제는 필요할 때만 폴을 찾을 뿐이다. 그는 감정은 있되 책임은 없다. 그는 감정은 있되 의지도 없다. 로제에게는 그저 순간의 감정만 있을 뿐이다. 로제는 이기적이고, 폴의 시간을 소비품처럼 여긴다.

사실 폴은 시몽이라는 젊은 남자로부터 헌신적이고 열정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시몽은 폴을 진심으로 원한다. 뜨겁고 성실한 사랑을 바친다. 하지만 폴은 그 사랑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한번 결혼을 했다는 것, 또는 남자보다 훨씬 많은 그녀의 나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시몽의 사랑은 밝고 건강하다. 그래서 오히려 천진난만한 느낌까지 준다. 이미 상처로 얼룩진 폴에게 그 빛은 따뜻함이 아니라 어쩌면 낯선 위협이었을지도 모른다.


소설의 결말에서 폴은 결국 다시 로제에게 돌아간다. 왜일까? 상처받을 걸 알면서도, 그 익숙한 고통이 시몽이 주려 했던 낯선 행복보다 더 진실하게 느껴졌기 때문일까? 폴에게는 그게 사랑이었다. — 자신을 무너뜨리는 줄 알면서도 놓을 수 없는 사랑. 사랑은 때로, 가능성보다 익숙한 감정에 더 깊이 끌리게 만들기도 하니까.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해도, 그 감정이 내게는 전부일 수 있음을 우리는 모두 다 알고 있지 않나.


폴의 사랑은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겉으로 보기엔 이해할 수 없는 선택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복잡하게 얽히고 켜켜이 쌓인 감정들이 있었다. 그 깊이와 밀도는 폴 자신만이 온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 사랑은 마치 브람스의 음악과도 닮아 있다. 처음 들어서는 쉽사리 다가오지 않지만, 여러 겹의 구조를 지나 마침내 도달하는 그 내밀한 서정. 브람스의 음악 속에 조용히 숨어 있는 상처처럼, 폴의 사랑도 그렇게, 말없이 자신을 태우고 있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소설 속에서 시몽이 폴에게 건네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이 질문은 단순한 음악 취향을 묻는 게 아니었다. 그것은 감정의 깊이와 고독에 익숙한 정도를 묻는 상징적인 말이었다.


- 당신은 격정보다는 절제를, 감각보다는 깊이를 좋아하나요?

- 층층이 쌓인 마음의 결을 이해할 수 있나요?

- 즉석의 감동보다는 오래 곱씹을 여운을, 서둘러 말하지 않고도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아시나요?


나에게 '브람스를 좋아한다'는 것은 복잡한 마음을 견딜 줄 아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겉으로는 이해할 수 없어 보이는 선택 뒤의 사연을, 설명 없이도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 폴의 사랑을 찬성할 수는 없지만 이해는 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


세상에는 한눈에 읽히는 감정도 있고 천천히 층을 벗겨가야 드러나는 감정도 있다. 브람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후자를 아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를 알아본다. 말하지 않아도, 음악 한 곡만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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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플레이리스트///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

이 곡을 연주한 훌륭한 피아니스트의 연주가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닐 트리포노프의 연주가 가장 좋았다.^^

https://youtu.be/UmU7L-s9ZhI?si=ooQTRemf4CU4mt8u

연주: 다닐 트리포노프(Daniil Trifonov)

지휘: 클라우스 메켈레(Klaus Mäkelä)

언제: 2022 Verbier Festival(매년 열리는 스위스의 음악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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