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 말고도 피하고 싶은 게 많아서
야, 너네 엄마 선글라스 아줌마잖아.
찝찌름하고 따가운 여름 햇볕에 눈을 반쯤 감은 채 땀에 젖어 축축해진 책가방 띠를 단단히 쥐어 매며 친구와 교문 밖을 나서는 구 씨.
하교 시간에 맞춰 데리러 온다고 했던 엄마를 찾기 위해 두리번두리번거리다 친구의 말을 듣고 고개를 돌린다.
오래지 않아 차창 밖으로 얼굴을 쭉 빼고 만화 같은 햇빛 반사 효과를 번쩍번쩍 뽐내고 있는 선글라스 아줌마와 눈이 마주친다.
"엄마!"
구 씨의 엄마로 말할 것 같으면, 말 그대로 선글라스 아줌마다.
그 이유인즉슨, 비가 오거나 눈이 올 때, 그리고 캄캄한밤을 제외하고는 사시사철 항상 콧대 위에 묵직한 햇빛 가리개를 얹고 다니기 때문이다.
그게 뭐가 문제냐고?
문제라는 건 아니다. 다만, 정말 눈이 마주칠 때마다 선글라스를 쓰고 있다는 것이 대단할 뿐.
구 씨 엄마의 이 못 말리는 선글라스 사랑의 역사는 아마 구 씨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되기 전부터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며, 이로 인해 구 씨는 어렸을 적 모든 엄마들이 다 선글라스를 써야만 하는 법이라도 있는 줄 알았다.
'눈이 답답하지 않나?'
둥근 쉐입, 각진 쉐입, 파츠가 박혀있는 타입, 심플한 타입, 반투명 렌즈, 컬러 렌즈 등으로 늘 선글라스가 알록달록한 엄마를 보며 했던 생각이다.
그리고 솔직히, 때때로는 조금 오버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매번 선글라스를 쓰고 다니는 엄마가 당당하고 멋져 보이기도 했다.
모전여전(母傳女傳)이랬나,
20년 정도 흘러 성인이 된 지금, 구 씨가 드르륵 서랍을 연다.
'오늘은 어떤 걸 써볼까'
웬만한 안경점 진열대 뺨치게 정렬되어 있는 선글라스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반려견과 산책을 나가는 잠깐의 순간을 위해서도 구 씨는 심사숙고하며 선글라스를 고르는 것이다.
'그래, 오늘은 이거다!'
코 위에 닿는 이물감이 지나치게 아래로 내려오지 않도록 콧대 부분을 쓱 올려 가운데를 한번 꾹 누른 후, 집 밖을 나선다.
처음으로 마주한 야외의 색감은 모노톤(monotone)이지만 구 씨는 이 차단감이 싫지 않다.
모노톤 세상을 걷던 구 씨는 문득 스스로가 왜, 언제부터 선글라스를 쓰게 되었는지 떠올린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구 씨도 직장을 출근할 때와 눈비가 올 때를 제외하고는 늘 코에 묵직함을 지니고 다닌다.
물론, 가끔은 직장에서든 밤이든 쓰고 싶을 때가 있지만 사회적으로 이상한 시선을 받는 것은 희망하는 바가 아니라 자제하고 있다.
세상에, 사람에, 삶에 지쳤을 때였다.
그럴 때는 더 선글라스에 의지하게 되는 것이다.
선글라스를 쓰면 구 씨의 마음에 가상의 경계가 지어진다.
구 씨는 그 경계 안에서 잠시 쉴 수 있다.
감정, 눈빛, 표정으로부터 자유가 된다.
이는 외부 세계로부터 보호받는 느낌을 주며 안정감을 제공한다.
또, 이 햇빛 가리개는 적당한 사회적 거리감도 만들어준다.
보통, 영화에서 비밀 요원들은 선글라스를 쓰고 등장한다.
그 이유는 멋도 있지만 신비감과 카리스마, 강인하고 권위 있는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구 씨는 적당한 거리감을 갖고자 하는 상대와 만날 때 꼭 선글라스를 착용한다.
마지막으로, 익명성을 지니고 싶을 때 선글라스를 끼면 구 씨는 스스로가 먼지처럼 작아지는 느낌을 받는다. 특히,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장소나 혼잡한 상황에 있을 때 선글라스를 착용함으로써 주목받지 않게 되며, 사회적인 압박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이 모든 이유들에 비해 따로 노력하지 않아도 간단히 멋을 낼 수 있다는 점은 오히려 덤으로 얻어걸린 장점 같다.
반려견과 동네를 산책하다 보니 어느새 코 아래로 슬쩍 내려가 있는 선글라스를 다시 추켜올리며 구 씨는 엄마를 떠올린다.
구 씨의 엄마도 어쩌면, 20년 전의 그때부터 세상이, 사람이, 삶이 버거웠던 것일지도 모른다고.
선글라스 너머에서 엄마가 진짜 지었을 표정과 눈빛, 느꼈을 감정이 새삼 궁금해졌다.
눈이 시끄러울 때 두 눈을 닫아버리는 대신 그 검은 물체를 택한 건 아닐까 싶어서 마음 한편이 아려온다.
왈!
다른 개와 마주쳐 짖는 자신의 반려견 소리에 구 씨는 놀라 생각을 다급히 끈다.
구 씨는 반려견을 번쩍 들어 안아 진정시키고는 집으로 향한다.
"다녀왔습니다."
구 씨는 들어오자마자 엄마와 마음을 연결 지어준 고마운 존재이자 험한 세상을 살아가게 해주는 든든한 구원자를 기특하게 생각하며 렌즈를 깨끗이 닦아 책상 위에 놓아둔다.
그리고는 그것을 빤히 쳐다보다가 생각한다.
'내일은 또 어떤 걸 써볼까?'
* 작가의 말
오늘 저의 글은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시간선에 걸쳐 삶이 버거우신 분들께 바칩니다.
실제로 작가 본인도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또는 이 세상에서 잠시 사라지고 싶을 때 큰 도움을 받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이기에 현재 말 못 할 어려움을 겪고 계시다면, 우스운 말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선글라스 하나 장만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매일까진 아니더라도 독자분들의 삶에 행복이 종종 드나들길 기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미지 출처: 작가 본인,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