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日. 새로운 해를 맞이한다는 것은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의 재해석

by 구 벨

"새해 계획(또는 목표)이 어떻게 되세요?"



최근 구 씨는 연말이 다가옴에 따라 이런 질문을 받으면 밀려오는 지루함에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은 충동을 이겨내는데 평소 싸이클로 단련된 허벅지 근육을 다 쓰는 중이다.


상대방이 열과 성을 다해 자신의 새해 계획을 브리핑하는 동안,

구 씨는 경청한다는 듯 "으응-"하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컵에 남은 음료를 더 작은 사이즈로 시킬걸 하고 후회한다.


물론, 구 씨도 처음부터 이 질문을 권태로워했던 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질문하는 쪽에 더 가까웠다.

그도 그럴 것이 구 씨는 성장에 강박을 지닌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늘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 0.1%라도 성장하지 않으면 대충 인생의 시간을 때우는 느낌이었다.

또, *일신우일신 같은 사자성어나 Stay hungry, Stay foolish 같은 명언을 휴대폰 배경화면으로 해두고 실천하며 삶이 해이해지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매년 새해 계획이나 목표를 세우고 실행하는 것에 그 누구보다 열정 있었고,

다른 사람의 목표를 들으며 자극받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목표의 정점에서 구 씨의 목에서 터져 나온 건 환호성이 아닌 날카로운 비명소리였다.

어느 순간부터 이유 없이 눈물이 줄줄 흘렀고, 두 손이 벌벌 떨리는 일이 잦아졌으며 길거리의 불특정 다수와눈을 맞추는 것이 어려워 고개를 숙이게 되었고,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이 버겁게 느껴졌다.

그렇게 구 씨 스스로를 괴물이라 여기면서 시한부 같던 삶을 질질 끌어가던 어느 봄날,

바닷속 산호초처럼 일렁이는 벚나무가 봄바람과의 조우에 꽃잎들 손을 놓아줄 때,

구 씨도 그들과 함께 낙하했다.

떨어지며 살갗으로 맞이하는 봄바람은 지나치게 푸근했다.

온 세상이 분홍빛으로 물들어가는 황홀경에 두 눈을 감은 구 씨는 생각했다.


다시 살자

그동안의 구 씨는 목표를 세우고 실천하는 것과는 별개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구 씨가 왜 OO을 하는지, 하고 싶은 것인지 해야 하는 것인지, 하고 싶다면 왜 하고 싶은지, 그것을 할 때 즐거운 지, 슬픈지, 화가 나는지, 행복한 지 등을 제대로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이제 구 씨는 이전과 정반대의 삶을 산다.

삶의 계획은 무슨, 목표도 전혀 세우지 않는다.

그러니 새해 목표 관련된 질문이 귀찮을 수밖에.


그래서 구 씨는 일신우일신의 의미를 재해석하였다.

매일 발전하고 새로워야 한다는 '새로울 신(新)'을 버리고 순우리말 **'신나다'의 신으로 교체하는 것이다.

해석하면 '날마다 신나고 또 날마다 신나 진다'는 의미가 된다.


여기서 구 씨가 생각하는 신나는 삶은

매일같이 놀고, 진탕 마시고, 춤추는 아무 근심 걱정 없는 신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일시적인 쾌락일 뿐 오히려 삶의 끝에서 인간을 더 피폐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구 씨는 눈앞에 놓여있는 탁상 거울과 눈이 마주친다.

거울 속 스스로를 무미건조하게 응시하다가

곧 치아와 잇몸이 드러날 정도로 활짝 웃는다.

그렇다.

구 씨에게 신남은 웃음이다.

구 씨가 현재 하고 있는 일이,

만나는 사람들이,

틈틈이 하게 되는 생각이,

즐기는 취미가,

먹는 음식이

등등.......................................


일상에서 마주하는 모든 순간들에 단 5분이라도 웃음 짓게 된다면 일신우일신 성공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전에 구 씨가 목숨 걸고 수행하던 목표 달성보다 더 잦은 꽉 찬 행복을 준다.

그렇기에 구 씨는 더 이상 새해 목표나 계획을 세우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이제는 많이 튼튼해진 몸과 마음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용기도 생겼다.



될 대로 되라지



*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날마다 새로워지고 또 날마다 뜻으로, 나날이 발전해야 함을 이르는 말

** 신나다: 어떤 일에 흥미나 열성이 생겨 기분이 매우 좋아지다.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작가의 말>

2024년 처음으로 제 첫 책을 연재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작은 걸음이지만, 어쩌다 보니 끝 해와 새로운 해의 사이에 걸쳐진 작품을 만들 수 있어

영광입니다.

제 글에 관심을 갖고 방문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온 마음을 다해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을사년(乙巳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 2024.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 분들, 그리고 유가족 분들께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이미지 출처: Pinter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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