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日. 목욕의 미학

일상이 잠시 아득해지는 기쁨

by 구 벨

[ 하아아 - ]


깊은 밤,

길거리 만두 찜기 연기에 대적하는 희뿌연 입김을 모아 내뿜으며 줄이은 포장마차 골목을 지나던 구 씨는, 생각한다.


[ 스크럽이 얼마나 남았지 ]


지난밤 목욕을 마치고 눅진해진 기분에 취해 그만 바디스크럽 뚜껑을 열어두고 나온 것이 생각의 불씨가 되어 점점 타오르는 것이다.


구 씨의 머릿속에서 바디스크럽이 마지막 한 줌까지 스러질 때즈음

[ 삐-이 ] 하며 집 도착을 알리는 버스 하차벨이 울리고, 달갑지 않은 찬 바람에 머릿속 영상도 황급히 꺼진다.

내가 겨울 너에게 질쏘냐 서둘러 안전기지로 복귀한 구 씨는, 외투와 가방을 던져두고 가장 먼저 욕실로 향한다.


[ 아, 다행이다 ]


주홍색 불빛이 켜지자마자 확인한 바디스크럽은 우려했던 것과는 다르게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으므로, 구 씨의 입꼬리도 슬며시 올라간다.

이내 구 씨는 욕조 배수구를 막은 후, 수도꼭지 머리를 경쾌하게 치켜세워 왼쪽 끝으로 밀어둔다.

[ 목욕이라는 건 대체 누가 시작한 걸까 ]


닫힌 변기뚜껑 위에 앉아 한쪽 다리를 꼰 채, 휴대폰으로 ‘크리스마스 재즈 피아노’를 검색하며 구 씨는 생각한다.


느슨한 재즈 선율에 흥얼거리던 것도 잠시, 변기뚜껑 위에 휴대폰을 두고 구 씨는 하루종일 온몸으로 함께해 준 아군들을 훌렁 벗어던진다.


번갈아가며 발끝에 닿는 차가운 타일의 존재감에 머리칼이 쭈뼛 서다가, 마침내 욕조에 다다른 구 씨의 발은 찰랑거리는 작열감과 마주한다.


곧이어, 그 작열감도 푸근함으로 변하고, 턱 밑까지 온몸을 욕조에 밀어 넣은 덕에

[ 트-하 ]

하고 해방감이 터져 나온다.

이것은 마치 사람에게 비늘이 있다면

그 비늘들이 일제히 반대 방향으로 까뒤집는 감각일 것이라고 구 씨는 생각한다.


욕조에서 물놀이를 하던 어릴 때가 생각나 괜히 암팡지게 발장구를 치다가


[ 아 이럴 때가 아니지 ]

하고

무슨 급한 일이 생긴 것 마냥 수도꼭지 머리를 내리치고는 물속에서 벌컥 솟는다.


[ 내가 이 순간만을 기다렸지 ]


구 씨는 능숙하게 한 손으로 바디스크럽 뚜껑을 돌리고, 스그극 하는 소리와 함께 열리자마자 은은하게 풍기는 장미향에 오늘 하루가 눈 깜빡임보다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두 손가락으로 스크럽을 담뿍 덜어 온몸에 바르다 보면 까슬까슬한 알갱이와의 첫 만남이 꽤나 사납게 느껴지는데, 이럴 땐 따뜻한 물을 틀어 알갱이를 녹이는 식으로 달래주면 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물에 녹아 오일로 변한 스크럽이 욕실 전체 분위기를 축축지근하게 바꿔놓는다.

구 씨는 마치 은근히 달궈진 프라이팬 위에서 녹아내리는 버터를 상상하며

여리게 찰랑이는 수면 아래로 기분 좋은 침잠을 한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주변이, 공기가, 조명이,

봄날 아지랑이 마냥 하늘거리는 춤을 춘다.

구 씨는 한 손을 꺼내 거품 섞인 물을 한 움큼 잡아 들어 올린다.


손가락 틈새로

쪼르륵

경쾌한 소리와 함께 죄 새어나가지만

상관없다.

다시 조르륵

반대손도 주르륵


찰박찰박거리던 손가락의 인상이 짙어질 때즈음

얼굴은 차갑지만 귀 뒤까지는 화끈거리는 대조적인 상황에서

구 씨는 이 시간과 공간을 포착하여 가장 힘든 순간에 인화하고 싶다는 상상을 하다가

옅게 웃으며 말한다.


[ 그게 지금이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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