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씨만이 할 수 있는 경험
"Almost Paradise ~
아침보다 더 눈부신~"
밤 10시, 무거워진 눈꺼풀을 힘주어 끔뻑거리며 TV 속으로 기어들어 갈 듯 가까이 앉아
야광별 내복차림으로 안방 침대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구 씨(氏), 13세다.
다음날 학교에 가든 말든 눈앞에서 방영되고 있는 '꽃보다 남자' F4 오빠들의 수려한 용안에 그저 입을 떡 벌리며 특히, 초코소라빵 머리 구준표 오빠(이민호 배우)에게는 거의 자아를 의탁한 수준이다.
13살 구 씨는 생각한다.
'어른들이 나한테 물어보는 그게 진짜면 좋겠다....'
여기서 말하는 '그거'란, 우리나라의 대기업 LG와의 연관성이다.
그 이유인즉슨, LG 회장님께서 구 씨이기 때문이다.
2024년을 살아가는 현재의 구 씨는 이제 우리나라에 구 씨(氏)가 꽤 많아졌으며,
주변이나 드라마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성씨임을 알지만,
2009년의 구 씨는 그렇지 않았다.
늘 학교에서 튀는 이름이었고,
여자 이름으로는 흔치 않게 항렬을 나타내기 위한 돌림자(字)도 들어간 이름이어서
누군가에게 이름을 처음 말하면 한 번에 못 알아듣는 건 말할 것도 없거니와,
개구쟁이 같은 반 남자아이들에게 놀림당하기 부지기수였다.
이러던 상황에 나타난 드라마 속 구준표 오빠가 13살의 구 씨에게는 구세주였던 것이다.
그래서 어른들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묻던
'얘, 너 LG가(家)랑 무슨 관련이 있니?'
라는 말마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물론, 안타깝게도 구 씨는 해당 기업과 아무런 연관이 없었고,
부모님께도 여러 차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쭤봤지만,
뒤통수를 얼얼하게 하는 기분 좋은 반전은 없었으므로
그저 소 띠(丑生) 답게 우직함과 성실함을 무기로 2024년 현재까지 살아온 것이다.
희귀 성씨들은 공감하겠지만, 같은 언행을 하더라도
특히 사람들의 뇌리에 더 각인되는 효과가 있으므로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그만큼 선한 일을 하면 타인에게 2~3배로 기억되고, 영향력이 지속되는 순기능도 있기에
지금은 남들과 다른 차별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셀프 브랜딩(Self-Branding)의 일환으로 생각한다.
더불어, 비교적 최근에 방영했던 22년도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주인공이었던 구 씨(손석구 배우)와
도 내적 친밀감을 느끼며 즐겁게 시청하였고, 지인들에게 신기함과 부러움 아닌 부러움을 샀었으며,
최근까지도 계속되는 '실례지만 혹시... 그 기업과...?'라는 질문에
구 씨는 커다란 목소리로 호탕하게 웃으며
"제가 그럼 여기 안 있죠~"
라는 식으로 능글맞게 답해버리는 여유까지 생긴 것이다.
이쯤 되자 구 씨는 생각한다.
'아 프롤로그가 너무 길었구나.'
그리고 머리 위로 기지개를 한번 켜고 의자에서 일어나
뭉친 어깨 근육을 신명 나게 돌리면서
욕실 불을 켠다.
미끄러지지 않게 욕실화를 발에 알맞게 끼운 뒤
어기적 어기적 걸어가
욕조 가장자리에 놓여있는 바디스크럽을 보고는 싱긋 웃는다.
"으아 이제 씻어볼까"
안녕하세요,
첫 번째 책 연재로 인사드리게 된 브런치 작가 인드라망입니다.
제 첫 책은 작가 본인의 실제 이름 성(姓)인 '구 씨'가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일상 속에서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편하게 공유하는 형식의 에세이입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인 박태원 작가(1909-1986)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오마주 하였습니다.
내주(來週)에는 '목욕의 미학'이라는 주제로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이미지 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