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럴 땐 뛰쳐나와 '시나브로' 감상법 -
미술과 친해지고 싶으나 미술관과는 아직 어색한 사이인 당신을 위해
오늘은 조금 색다른 제안을 하겠다.
"지금 당장 저와 함께 미술관 밖으로 나갑시다."
미술과 친해지는 법을 알려준다던 네가 웬일이냐는 표정으로 애먼 눈꺼풀만 연신 끔뻑거리는 당신.
나의 손에 붙들려 헐레벌떡 나온 당신의 뒤로 보이는 미술관은 벌써 소실점이 되어간다.
'날도 더워 죽겠는데 또 어디를 가자는 거야'하고 당신이 생각하던 차에 얼굴 바로 옆에서 들리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다.
환영합니다 고객님
화려한 조명, 눈부신 하얀 대리석 위로 보이는 브랜드 진열장들, 깍듯이 인사하는 직원들.
그렇다, 내가 당신을 데리고 온 곳은 '백화점'이다.
이곳이 바로 '시나브로' 감상법을 실천하기에 알맞은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유를 설명하기에 앞서, 먼저 시나브로 감상법이 무엇인지부터 소개하겠다.
이는 내가 이해를 돕기 위하여 만든 용어로,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일상 속에서 감상의 감각을 깨우는 것을 의미한다. 미술관처럼 작정하고 작품을 감상하기 위한 공간이 아직은 부담스러운 사람들을 위해 고안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백화점은 고도로 계산된 일상 속 미술의 집약체라고 할 수 있다.
백화점은 상업성을 지니고 있기에 고객들의 첫인상을 한 번에 사로잡는 '미(美)'에 비중을 두는 경우가 많다.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의 위치를 찾기 어려운 것은 물론, 화장실은 항상 구석에 숨겨져 있고, 동선은 왜 이리 복잡한지 몇 번을 뱅글뱅글, 지그재그로 돌아도 출구를 못 찾겠는 경우가 다반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답다.
걸어 다니기 불편하게 미끄러운 대리석 바닥은 왜 이렇게 우아해 보이는지,
뱀처럼 구불구불한 모양으로 된 층들은 맨 위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얼마나 황홀한 공간감을 느끼게 해 주는지, 느리게 움직이는 엘리베이터 속 변화하는 조명색이 주는 신비로움은 어떠한지.
공간뿐만 아니라 사물 하나하나에도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1층의 화장품 코너, 원하는 립스틱 품명을 찾기는 어렵지만 배열 방식과 진열대의 색감은 고급스러운 인상을 남긴다. 또, 5층에서 본 접시들은 하나하나 꺼내어 살펴보기는 힘들지만, 레이스 달린 식탁보와의 조합이 사랑스럽다. 3층에 내려와 잠시 앉은 의자는 등받이도 없고 딱딱하지만, 곡선의 수려함을 보여준다.
물론, 꼭 백화점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시나브로, 즉, 일상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감상의 감각을 키우는 데에는 다양한 장소가 있기 때문이다. 먼저, 여러분이 선호하는 장소를 택하라.
그리고 다양한 미술적 요소(선, 색, 모양, 질감, 공간 등)를 찾아보자.
조금 감상의 깊이를 더하고 싶다면 미술관 시리즈의 첫 글에서 내가 말했던 것처럼 '직관'과 '감정', '느낌'을 동원하여 감상해 보자.
일상에서 이 과정을 자동화하면 당신은 시공간의 제약 없이 미술에 스며들 수 있다.
자, 이제 당신의 손을 놓겠다.
일상이 미술관으로 변하는 순간에 첫발을 내디딘 것을 환영한다.
p.s. 현재 제 서재는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양한 글감을 바탕으로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소개하는 미술 주제 이외에 저에 대해 알고 싶거나 궁금한 사항이 있으시다면 댓글 부탁드리며,
내주(來週)부터는 또 새로운 소재로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