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아비투스를 어떻게 활용하는가?
너무 오랜만에 돌아왔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하고 있는 일이 바빴다는 것은
흔한 변명이기에 차치해 두더라도
정말 소중히 잘 다뤄보고 싶었다.
이번 글감을.
특히, 우리가 인식하든 인식하고 있지 않든
살아 숨 쉬는 한, 문명화된 인간의 일거수일투족을 쫓아다니는 녀석이기에
글로 녹여내기까지 지속적인 고찰이 필요했다.
이렇게 작가의 사설이 긴 오늘의 주제는
아비투스(Habitus)
이다.
아마 사회학이나 교육학 전공자에게는 익숙한 개념일 것이다.
이는 프랑스의 사회철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가 제시한 개념으로,
'세상을 사는 방식과 태도'를 의미한다.
현재 내가 지니고 있는 행동양식, 말투, 취향, 선호하는 사람, 옷 입는 방식, 갈등 시 대처방법,
직업에 대한 가치관, 취미, 연애관, 생활방식 등이
이쯤 되면 당신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래 알겠어. 근데 그게 네가 대기업 때려치운 거랑 무슨 상관인데?"
이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나오니 조금만 시간을 주셔라.
이 아비투스에서 결정적으로 말하는 바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사회적 계층별로 취향과 생활(언어, 경제, 예술, 신체... 등) 양식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무슨 계급론을 운운하냐고 할 수 있겠다마는,
우리는 안다.
현대 사회만큼 아주 교묘하게 짜인 계급사회는 없었다는 걸.
그런 의미에서, 눈치채신 분들도 있겠지만 글의 배경 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
작가 본인은 유년기부터 현재까지 대한민국 부의 중심인 강남구에서 거주하고 있다.
읽고 있는데 갑자기 자랑질 같아서 맥이 빠지는가?
물론, 그건 작가가 최상류 층에 속할 때의 이야기이다.
만일 내가 최상류 층 혹은 상류층 가정에서 자랐다면 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개인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대한민국 평균 소득을 놓고 보았을 때
필자는 지극히 평범한 중간 계층의 가정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일반적인 월급쟁이 직장인이며, 어머니는 주부셨다.
그렇기에 부모님도 나에게 '모험'보다는 '안정'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셨고,
새로운 도전을 격려하기보다는 지금 하는 일을 '성실하게', '꾸준히'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또, 예체능보다는 남들이 많이 하는 국/영/수 위주의 학원을 다녔으며,
외식을 할 때든 선물을 할 때 맛이나 분위기, 멋보다는 '가성비'를 더 많이 고려하였다.
해외는 큰맘 먹고 여행을 갈 때에나 가능한 것이었고, 해외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유학, 워홀, 교환학생 등)은
불안정함이 가득한 도박이라고 생각하셨다.
물론, 나는 이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비투스는 선악 또는 가치의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내 계층의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차별점이 있다.
그리고 이 차별점이 지금의 내가 살아가는 데 큰 필살기가 되어주는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첫 번째로, 주변 인간관계 중 상류층 인프라를 확보했다.
이렇게 말하면 굉장히 계산적인 사람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나는 사람을 딱히 가려 사귀는 타입은 아니다.
내가 감히 그럴 주제가 못 되기도 하고, 그런 관계는 오래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각자의 분야에서 '피 터지게 열심히'사는 사람들 또는 각 분야에서 '성공'반열에 오른 사람들과
특히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물론, 여기서 '피 터지게'와 '성공'은 주관적인 기준일 수도 있겠지만, 내 기준에 그러한 사람들과 자주 교류를 하는 것이다.
운이 좋게도, 내가 성장한 동네의 어른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경제적 자유에 이른 사람들이 많았으며, 이는 매일 아침 동네 도서관에 가면 빽빽하게 앉아 독서를 하며 티타임을 갖거나, 양재천에서 조깅을 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어린 시절부터 이와 같은 성인들이 생활하는 곳에서 자라다 보니 어른이란 으레 이래야 한다는 가치관이
'자기 관리를 잘하는 사람'으로 형성되었다.
두 번째로, 취향을 고급화시켰다.
우리 집의 평범한 재정사정과는 관계없이, 나는 어린 시절부터 예술에 관심이 많았다.
물론, 이는 예술을 전공한 집안 어른의 영향으로 어느 정도의 미적 감각은 있으나,
예술을 전공할 정도의 실력도, 재정 상황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비평가들이 높게 평가하는 그림과 음악을 의식적으로 접했다.
그리고, 그걸 내 취향으로 재구성하였다.
더불어, 주변에 악기나 미술을 전공하는 친구들의 전시나 공연에 종종 가서 감을 익혔고,
쉬는 날에는 홀로 미술관에 가서 도슨트에게 이것저것 질문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이러한 감각이 쌓이다 보니 예술 애호가들과 언제 어디서 만나더라도 자유롭게 내 생각을 표현하고,
감상을 공유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운동의 경우, 원래는 정말 흥미가 없던 사람이었지만 주변의 어른들이 수영, 골프, 승마 등을 하는 것을 보며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건강관리가 중요함을 깨달았다.
그래서 현재는 수영과 자전거 타기, 런닝 등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1시간씩은 꼭 운동을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언어와 행동을 정제하였다.
물론, 학력과 경제 수준이 언어 수준과 비례한 건 아니지만
내가 관찰한 바로는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었다.
따라서, 나는 평소에 사람들이 기분 좋을 때 하는 행동이나 말을 살피기보다,
갈등 상황 시, 당황했을 때, 슬플 때, 화가 났을 때 등 인생에서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높은 학력 및 경제 수준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말을 하는지를 주의 깊게 살폈다.
(물론 예외는 항상 있다)
대체적으로 그들은 흥분하더라도 목소리 톤이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고, 말의 속도가 빠르지 않았으며,
상대방이 이야기할 기회를 더 많이 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더불어, 오히려 답답한 상황일수록 말을 아끼고, 스스로 감정을 빠르게 다듬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또, 늘 책을 가까이하면서 대화할 때 육하원칙을 지켜 간결하고 논리적으로 핵심만 말하는 습관이 있었다.
이를 통해 나는 언성을 높이거나 행동/몸짓이 클수록 사회적 우위를 선점하기는 어려우며, 말의 힘이 있기 위해서는 횡설수설이 아닌, 질서 정연한 담백함이 필요함을 배웠다.
결론적으로, 이 세 가지 차별점이 지금의 내가 대기업을 퇴사할 때에도 가장 결정적으로 용기를 준 마인드라고 생각한다.
비록 나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나의 꿈에 한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해 왔고 어느 분야든 '내가 하면 아무리 못해도 중간 이상은 가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을 겁내지 않으며,
사실은 오히려 퇴사한 지금, 새로운 직무에 적응해 가면서 하루하루가 기대감으로 가득 채워진 느낌이다.
물론, 여기서 핵심은 나는 절대 내 수준에 맞지 않게 겉무늬만 상류층을 따라가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수준 내에서 그들의 영향을 받았고, 주머니 사정에 맞게 노력했다.
따라서 필자는 이것이 허영심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형성된 아비투스는 내 삶 전반에 새로운 시각을 선사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쯤 되니 자기 계발서처럼 느껴지는 말들을 나열한 느낌이 드는데
필자는 세계적인 대기업의 CEO가 아닌 (물론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저 평범한 20대 직장인이며,
엄청난 재능을 물려받은 천재 예술인도 아니기에 (천재는 어렵지만, 그래도 비평이 가능한 수준까지는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누구든 더 나은 '버전(Version)'의 내가 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아비투스는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더 나은 삶에 대한 의지와 아비투스가 결합된다면
p.s.
저는 능력주의(meritocracy)에 회의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이기에 사실 이런 내용의 글이 조심스럽습니다만,
저의 포인트는 계층 간 이동에 대한 내용이라기보다, 현재 저처럼 진로고민이나 방황하는 청춘들에게 조금은 다른 시각을 제시하고자 작성한 글이므로 선택적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