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휴약을 위해 준비할 것
"선생님, 세모가 초2인데 키도 안 크고, 너무 말라서 걱정입니다. 주말에라도 잠을 푹 자고 밥을 좀 먹였으면 하는데요. 아직도 매일 약을 먹어야 할까요?"
"약 먹은 지 1년이 지났네요. 주말에는 약을 쉬어봅시다."
의사 선생님께서 그렇게 세모의 주말 휴약을 허하셨다.
세모는 1학년 때는 메디키넷, 2학년 때는 콘서타를 복용해 왔다. 두 약의 공통적인 부작용이 있다. 바로 '수면장애'와 '식욕부진'이다. 약을 복용하는 날에는 아무리 낮에 활동을 많이 하더라도 밤 11시, 12시에 잠이 든다. 각성제다 보니 약효가 떨어지는 시간이 오후 6시쯤이어도 잔상이 남아있어서인지 밤새 뒤척인다.
그렇게 늦게 잠들고도 다음 날 학교를 지각하지 않기 위해, 또 오전 약을 먹이기 위해 일찍 일어나야 하는 세모. 부모로서 한창 클 나이에 9시에 잠들지 못하는 세모에게 항상 미안할 뿐이다. 이 부작용이 무서워서 7살 때에는 약 복용을 망설였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 부작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약을 먹이고 있다. 세모의 편안한 학교 생활을 위해서다.
월화수목금요일에 약을 먹고 학교 생활과 학원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나면, 토요일, 일요일에는 이제 약을 먹지 않는 세모.
일단, 평소에 ADHD 약이 과연 효과가 있는 걸까 고민했던 나를 반성했다. 주말에 약을 먹지 않은 세모는 우리가 잠시 잊었던 엄청난 에너지를 온몸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쉴 새 없이 말하는 세모와 대화 친구를 해줘야 했고, 본인이 왜 이렇게 정신없이 움직이는지 모른 채 모터를 달고 소파에서 뛰어다니다가 집에서 계속 공을 던지다가 동생이랑 싸우다가... 우리의 주말을 홀랑 다 앗아갔다. 주말에도 해야 하는 학습은 하라고 하라고 하라고 X 100번 말해도 책상에 앉아 연필을 잡기 힘들어했다. 그러다 시작하면 또 끝을 내기 어려워했다.
역시 ADHD는 뭐든 시작하는 것도 어렵고, 끝내기도 어렵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아이와 함께 주말 나들이를 가는 것이었다. 공공장소에 가서도 세모는 계속 아빠에게 지적을 당하고 혼나야 했다. 규칙을 여러 번 말해줘도 공공장소에서 가만히 있는 것을 어려워했다. 목소리도 크고, 관련 없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했다.
그럼에도 주말 휴약은 아이에게 반가운 일이었다. 그동안 약 부작용으로 낮에는 먹지 못했었는데 주말 휴약 때는 끊임없이 음식을 찾았다. 사실 식욕도 충동성이라는 것을... 이번에 제대로 알게 되었다. 2시간마다 찾는 음식, 마땅한 간식을 준비하지 못해서 미안했다. 오랜만에 삐쩍 마른 세모가 배가 볼록 나온 모습을 봤다.
'아 오늘 세모 마음껏 먹었네. 기분 좋다.'
잘 먹고, 9시면 뻗어서 잠드는 세모.
그리고 일요일 아침에도 푹 자고 일어나는 보통의 초등학생의 모습. 주말 휴약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세모와 우리 가족의 주말이 아름답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었다.
바로 우리가 "다시 만난 세계"에
다시 적응해야 한다는 것.
세모의 아빠와 나는 ADHD가 다소 사라진, 약효가 있는 세모의 모습에 어느새 익숙해져 있었다. 그렇다 보니 규칙을 어기고, 정신 사납게 뛰어다니고, 입에 모터를 달고 말하는 세모에게 계속 잔소리를 하게 되었다.
"세모야, 대체 왜 그래? 너무 시끄럽잖아."
"세모, 이리 와 봐. 생각이 있는 거야?
여기서 그렇게 행동하면 어떡해?"
다시 적응해야 했다.
주말 휴약에 익숙해지기 위해, 세모에게 잔소리하지 않을 수 있는 자연으로, 숲으로 나들이를 갔다. 학습은 부모가 옆에서 바짝 붙어서 집중을 유지하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
세모의 ADHD를 이해해 주는 것이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알려줘도,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시작하라고 말해도
한 번에 시작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우리가 마음에 새겼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라는 걸.
바꿀 수 있는 건, 세모가 아닌 우리라는 것을.
다시 만난 세계.
조금은 반갑지 않았지만
너의 애쓰던 마음이
쉬어가는 시간이 되기를
진심을 다해 도울게, 세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