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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비나 Oct 04. 2023

키즈카페에서 들린 말, "넌 MBTI가 뭐야?"

초딩이 초딩에게  물었다.

길고 긴 연휴였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겐 출근이 간절해지는 때다.

아이가 없었다면 넷플릭스를 뒤적이며

10시간도 누워있을 수 있을 텐데,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겐 절대 허락되지 않는다.

세모와 네모를 데리고 근처 놀이공원에 가려고

아침 일찍 부랴부랴 짐을 챙겨 나섰다.


아침부터 "옷 입어라. 밥 먹어라. 양치해라."

10번 말해야 했다.

ADHD 아이를 키운다면, 내 말이 얼마나 효력이 없는지 매일 확인하는 데 익숙해져야 한다.

그렇게 10번, 100번 지시어를 쓰다 보면,

대체 놀이공원은 내가 가고 싶은 건지,

너를 위해 가는 건지 점점 그 목적이 흐릿해진다.


겨우 차에 태워 길을 나섰는데,

누가 저출생 시대라고 했나?

주차장 가는 줄인 줄도 모르고 지나쳤다.

T맵에 실시간 목적지 1위, 2위가 놀이공원이었다.


눈치게임 대실패다.



바로 아이들을 데리고 근처에 키즈카페에

아쉬운 대로 목적지를 변경했다.

둘째 네모는 아직 키카에 풀어놓을 수 없어서 쫓아다녀야 한다. 세 돌이 겨우 지난 네모는 본인이 얼마나 초딩 언니, 오빠들 사이에서 유약했는지 모르나 보다.

정신없이 뛰어다닌다.


트램펄린에서 푸드덕 거리는 네모를 보다

초딩들의 대화를 가만히 듣게 되곤 한다.


"야, 넌 몇 살이야?"

"나 10살."


이제 만 나이로 말하면 나이가 중요하지 않을 텐데,

초딩들은 여전히 만 나이를 말하지 않는다.

최근에 알게 된 놀라운 사실.

그들은 만 나이로 어려지는 게 싫다고 한다.

난 악착같이 만 나이로 말하는데.

귀여운 녀석들.


나이를 물으면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 걸기.

우리나라 문화다.

형이라고 해야 하나,

이름을 불러야 하나, 누나라고 해야 하나...

호칭부터 정해야 놀 수 있기 때문이다.



"MBTI는 뭐야?"

"나? ENFP."


MBTI를 묻다니, '라테'는 혈액형이었는데 새롭다.

A형은 소심하고, B형은 다혈질이고, O형은 둥글둥글한 성격이고, AB형은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모든 사람이 다르게 태어나는데

4가지 성격으로 나눈다니, 지금 생각하면 신박하다.


미국에서 친구들에게 Blood Type이 뭐냐고 물었을 때, 자신의 혈액형은 '모른다'던 미국인들에게 깜짝 놀랐다. 모른다는 미국 친구에게 내가 임상병리사도 아니면서 '넌 B형일 것 같아.'라고 말했다.

역시 나도 한국인이었다.


요즘은 MBTI다.

16개의 성격 유형.


초딩들은 MBTI를 왜 물었을까?

16개의 유형 중, 자신과 같은 MBTI인 또래라면

더 친해지고 싶었던 걸까?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MBTI를 갖고 있다면

더 이상 알고 싶지 않았을까?


적어도 어떤 사람에게 말을 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건 그 사람을 알고 싶다는 마음이다.

그 사람이 '나'와 말하는 지금 이 순간,

어떤 마음으로 어떤 생각으로 내 앞에 서 있는지...

어떤 존재인지 알아가는 '탐색'의 과정이

바로 관계 맺기의 시작이다.


누군가가 내가 어떤 사람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알아가기도 전에

16개의 성격 유형에 날 규정해서,

빠르게 자신의 호기심을 해결했다면

조금은 서운할 것 같다.



얘들아, MBTI는 왜 물어보는 거니?
100명의 사람을 만난다면,
100개의 성격 유형을 만나게 되는 거야.
그러니 너무 조급하게
너희의 호기심을 해결하지 말기를.

다정하게 물어봐.
"넌 어떤 걸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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