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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비나 Nov 25. 2023

공부 잘 하게 해주는 약이라고요?

ADHD 약 오/남용의 피해자는 바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17~2021년 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장애 치료제 처방은 서울 25개구 안에서 송파구(8.8%), 강남구(8.7%), 노원구(6.4%), 서초구(6.0%) 차례로 많았다. 교육열이 높은 강남 3구와 강북에서 학원가가 밀집한 노원구를 합치면 서울 전체에서 30% 가까운 처방이 이뤄진 것이다. 가장 적게 처방 받은 곳은 금천구(24위·1.5%)와 중구(25위·1.1%)로 상위권 자치구와 격차가 컸다."

<왜 ‘집중력 높여주는 음료’ 택했나…강남3구 ‘ADHD’ 약물처방 많아>2023. 4. 8. 한겨레 신문, 심우삼, 윤연 기자


대표적인 학군지 강남3구에서 있었던 일이다. 집중 잘 되게 해주는 약이라며 학생들에게 “ADHD 치료- 집중력 높이는 약”이라고 속여 마약을 줬던 사건. 범인의 의도는 아이들에게 마약을 중독시키기 해서 계속 구매하게 만들고자 한 심보였다.


사람들은 모두 그 기사를 보고, 학생들에게 '마약'을 줬다는 것에 매우 충격을 받았다. 물론 학생들에게 '마약'을 줘서 중독시키게 하려는 악마같은 이들의 의도에 나 역시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화가 치밀어올랐다.

'강남 마약' 사건의 '메가 ADHD' 상표의 음료. 사진 서울 강남경찰서

하지만 나는 '마약'이라는 두 글자보다 'ADHD'라는 네 글자에 한번 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ADHD 치료제라고 속였다고?'

8살짜리 아이에게 정신과 약을 먹이는 부모로서, 저 약병에 붙여진 'ADHD'라는 네 글자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얘들아, 이거 먹어봐. 엄청 달콤하고 맛있는 사탕이야."라며 속이듯, "집중력이 좋아지고 공부를 잘 하게 해주는 드링크야. 한번 먹어봐."라고 말했다고?! 충격이었다.


이 사건 이후로, 뉴스에서는 'ADHD 치료제'에 대해 떠들어댔다. 국회의원들은 정신과에서 ADHD 약물을 어떻게, 얼마나 많이 처방하고 있는지 조사까지 했다. 그런 기사들에서 눈에 단연 띄었던 내용은 "강남 3구"에서 가장 처방을 많이 받는다는 기사들이었다.


사실 ADHD라는 것이 '주의 집중력'이 낮고 '과잉 행동'이 문제가 되는 것인데 이러한 특성은 당연히 '공부'에 제일 영향을 많이 줄 수 밖에 없다. 학구열이 높은 지역은 대부분의 아이들이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학습을 많이 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더 ADHD를 조기에 발견하기 쉬운 게 맞지 않을까? 일찍부터 학원을 접하는 문화라면 가만히 앉아서 집중하기 어려운 ADHD 아이들은 단연 띄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운 통계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래 기사에서 민양기 교수(한림대 강남성심병원 신경과)의 인터뷰를 보고,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https://tbs.seoul.kr/news/newsView.do?typ_800=2&idx_800=3491608&seq_800=20484314)

"(ADHD 치료제를 먹으면) 각성이 되기 때문에 잠이 안 와요. 수능이 11월 초니까 9월부터 처방이 늡니다. 11월 (후반이) 되면 처방이 다시 줄어들어요. ADHD가 11월에 늘 이유가 하나도 없거든요. 1년 내내 똑같아야지."

세모처럼 ADHD 진단을 받았다면 ADHD 치료제는 어릴 때부터 '매일' 복용해야 약이다. 집중력을 높이고 싶을 때만 살짝 몇달 먹였다가 멈췄다가 하는 약이 절대 아니다. 학구열이 가장 높은 강남 3구에서 ADHD 처방이 수능 철인 11월에 잠깐 늘었다가 줄어드는 현상은 약물 복용 의도가 나와 세모의 경우와는 분명히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뿐만이 아니다. ADHD 치료제를 '기억력 개선'을 해주는 약이라면서 암암리에 온라인에서 파는 사람도 적발되었다고 한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55549#home)


저 음료수의 'ADHD'라는 글자를 보고 강남의 아이들이 '집중력을 높여준다고?' '마셔볼까?' 했다는 것에 놀랐다. 게다가 '온라인 상에서 'ADHD 치료제'를 굳이 거래해서 먹인다니?'


'ADHD 약을 먹어서라도 성적을 올리고 싶은 건가?'

'ADHD 아이들이 저 약을 먹어서 공부를 잘 한다고 생각하나?'

'약의 부작용은 알고 사는 걸까?'

'ADHD이고 싶은 걸까?'



아마 이 이야기를 들은 ADHD인들과 ADHD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기가 막혔을 것이다. ADHD가 당당한 표창도 아닌데, 우리가 아이의 손을 잡고 정신과에 갔을 땐 수많은 고뇌의 밤을 보낸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ADHD는 약물 치료가 가장 중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선뜻 아이에게 건네지 못했던 이유는 그만큼 부작용도 있기 때문이었다. 나의 결정이 아이의 미래에 미칠 영향이 어떨지 모르기에, 우리도 보통의 인간이기에 아이에게 약물 치료를 하지 못하고 1년 동안 한의원과 심리 치료 등 '돌아가는 길'을 택하기도 했다.


내가 아이에게 ADHD 약을 먹이는 이유가
단지 '공부' 하나만이었다면
절대 먹이지 않았을 것이다.

ADHD 약물 치료를 겪어내는 아이들이 '감당'해야 하는 부작용들을 보면, 마치 비타민D와 마그네슘 정도를 먹이는 영양제와는 차원이 다르다.


세모가 첫 ADHD 약물을 먹었던 한 달.

"엄마, 어지러워."

"엄마, 토할 것 같고 배가 아파."

"엄마, 머리가 너무 아파."

"엄마, 급식이 맛이 없어. 고무맛이 나."

"엄마, 잠이 안 와.

식욕 부진과 수면 장애, 어지럼증, 구역감, 두통 등 알고 있던 온갖 부작용들이 '이제 내가 나올 차례야'라며 경쟁하듯 번갈아가며 나타났다. ADHD 치료에 들어선 부모의 입장에선 '우리 아이가 이 약을 먹고 공부를 더 잘 하게 됐나?' 따위를 걱정한다는 건 사치다.


이 부작용이 언제 없어질까. 언제쯤 밥을 잘 먹을 수 있을까. 이제 학교에서 전화는 안 올까.' 그 생각 뿐.


세모는 3개월 후, 각종 부작용들은 서서히 사라졌고 약효만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공부를 잘 하게 됐냐고?"

공부를 더 잘 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ADHD는 지능과 관련이 없기에 원래 학습이 뒤처지는 아이는 아니었다. 다만, 친구의 말에 귀기울이고 선생님의 지시를 잘 이해하고 빠르게 처리하는 능력이 향상되었다. 수업 시간에 갑자기 노래를 한다든지, 과잉행동과 충동성으로 위험한 행동을 하는 모습들이 많이 사라졌다.


약을 먹이면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

'아이의 이름이 자주 불리지 않는 것'

'실패의 경험보다 성취의 경험이 쌓이도록 해주는 것'

이것들이 우리가 ADHD 아이에게 약을 먹게 하는 이유다. 공부를 잘 하게 하는 것보다 '보통의 아이'만큼 학교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은 절실한 마음이다.


ADHD가 아닌 사람이 ADHD 약을 먹는다면 어떨까?

두근거림, 두통, 극심한 불안, 롤러코스터 타듯 조절할 수 없는 기분 등 부작용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떠한 일에 성과를 내기 위해, 비ADHD인들이 약을 자꾸 찾게 되진 않을까? 그렇다면 그건 치료가 아니고 '중독'으로 부를 수밖에 없다.


누군가에겐 절실한 치료제,
부적절한 오용과 남용은
동굴 속에서 홀로 이겨내는
ADHD 아이들의 부모들을
더 움츠러들게 만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이에게 ADHD 약을 먹이는 부모들에게
'공부 잘하려고 먹이는 거 아니야?'라는
짙은 편견의 짐까지
감당하게 해서는 안 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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