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사비나 Nov 18. 2023

ADHD, 교실에 갇힌 수렵 채집인

사냥꾼의 자손들

우리 뇌는 아직도 수렵 채집인이다."

스웨덴의 정신과 전문의 안데르스 한센의 <인스타 브레인>의 1장의 제목이다.


이 책의 1장에는 우리 인간은 왜 단 것을 탐하고, 왜 현대 사회에서 계속 불안한 것인지 설명하고 있다. 작가는 그 이유를 뇌 발달이 환경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서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왜 불안할까?

수렵 채집인의 입장에서 '불안'이라는 감정은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감정이었을 것이다.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원시 시대에 산다고 생각해 보면, 인간은 불안해야 민첩하게 생존을 위협하는 사고와 재해를 감지할 수 있고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불안'이 높은 사람은 더 생존 확률이 높았을 것이고 그런 위험을 즉시 해결함으로써 얻는 '보상'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를 생각해 보자. 불안이 과하게 높은 사람은 오히려 얻을 것이 없다. 끊임없이 불안하고 대비만 하는데 보상은 없이 스트레스만 쌓인다. 불안이 너무 높아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은 정신과에서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약을 먹기도 한다. 불안이 높을수록 보상은 없으니 실패감만 겪게 되는 것이다.



ADHD도 마찬가지다.

ADHD의 특성들을 살펴보면 과잉 행동과 주의 산만은 수렵 채집인에게 생존 확률을 높여주는 특성들일 수밖에 없다.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해, 사냥을 나가려면 일단 움직여야 한다. 인류가 오래전 살던 황야의 무법자에선 가만히 몸만 가면 받을 수 있는 급식실은 없으니까 말이다.


또한, 자신을 온갖 동물과 재난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선 주위를 끊임없이 살펴야 한다. 하나의 과업에 몇 시간을 집중한다고? 지나가는 동물에게 잡아먹히기 십상이다. 그러므로 당시엔 맘껏 뛰어다니며 가족을 위해 사냥을 나가고, 부스럭 대는 소리에도 산만하게 주위를 살피며 먹을 것을 수렵, 채집해 오던 사냥꾼 DNA는 환영받는 유전인자였을 것이다.


어느 순간, 우리는 교육이란 걸 받기 시작했고 학교에 가게 되었다. 이 사냥꾼 DNA를 가진 사람들은 책상에 앉아 가만히, 조용히 '규칙'에 순응하도록 교육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의 뇌는 아직 수렵 채집인이었던 시간이 99%였다는 것. 교사는 아이들을 통제하기 위해 돌아다니지 말고, 앉아서 지식을 전달할 테니 잘 받아먹으라고 던져주기 시작했다.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 열심히 돌아다니고 안전을 위해 주위를 민감하게 때론 산만하게 살피던 특성은 오히려 지식을 축적하는 데 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 수렵 채집인의 행동을 현대 사회의 요구에 맞게 조절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사회에서 좋은 직업을 갖고 평탄한 삶을 영위할 확률이 점점 낮아졌다. 생존력의 위기다. 그러니 '장애(Disorder)'로 이름 지어 '과잉행동 주의력결핍'이 있는 아이들을 ‘도와주게’ 된 것이다.



교실에 갇힌 수렵 채집인.

ADHD라고 부르게 된 우리 아이들.

이 아이들이 교실에 있지 않고,  사바나 평야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자신이 가진 특성을 인정받고 존중받지 않았을까.


우리 인류의 역사에서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방법은 계속 변화해 왔다. ADHD 특성은 분명 수렵 채집 생활에선 유리했을 것이다. 산업화된 사회에선 인간의 노동력이, 지식 정보화 사회에선 지식을 잘 활용할 똑똑한 사람들이 유리한 것처럼 말이다.


ADHD 아이들도 성취하고 싶다. 그들에게 굉장히 낯선 현대 사회, 교실이라는 환경에서 ADHD 아이들도 분명 잘하고 싶다. 단지, 그들의 뇌가 환경에 맞춰가지 못했을 뿐이다.


나는 ADHD 아이들이 교실에서 문제 행동을 보일 때, 이곳이 사바나 평야라고 상상해보곤 한다.


ADHD 아이들이 엉덩이를 들썩이며 일어난다. '당연히 일어나야지.' 가만히 있으면 먹을 것을 구할 수 없다.

ADHD 아이들이 시끄럽게 소리를 지른다. '당연히 목소리는 커야지.' 위험을 알리고, 먹이가 어딨는지 알려야 하는데 소통은 큰 목소리로 해야 하는 법이다.

ADHD 아이들이 작은 소리에도 집중이 흐트러진다. '당연히 귀를 쫑긋하고 모든 소리에 민감해야지.' 어디서 위험이 닥칠지 모르니 말이다.

ADHD 아이들이 충동적으로 높은 데 올라가고, 뛰어내린다. 생각하지 않고 행동한다. '당연히 충동적이어야지. 벌집에 꿀이 있는데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 그 벌집에 누가 손을 넣고 꿀을 얻어오겠어?' 생각하지 않고 행동해야 생존할 수 있다.


ADHD 아이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수렵 채집인의 뇌를 갖고 있다. 단지, 현대 사회의 요구에 맞출 준비가 되었는지, 그 정도가 다를 뿐. ADHD 아이들은 그 속도가 많이 느리다. 그래서 중간이라도 그 속도를 맞춰보기 위해 약을 먹고 치료를 받는 것이다.  


ADHD가 몹쓸 병이라고, ADHD를 가진 사람들은 어딘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ADHD가 잘못된 육아 방식,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ADHD는 아직 사냥꾼의 DNA가 현대 사회에 맞춰 발달하지 못했을 뿐, 손가락질받아 마땅한 사람들이 아니다.


ADHD 아이를 키우는 부모와 아이는
그리고 성인 ADHD인들은
여전히 잘하고 싶고 성취하고 싶다.
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으며
심리 상담센터를 다니며,
누구보다 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러니 당신이 쓴 그 색안경을
이젠 벗어주기를.
이 찬란하고 영롱한 다양한 색을
'있는 그대로' 봐주길.




이전 03화 "엄마, 5분만! 이것만 하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