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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비나 Dec 02. 2023

ADHD 아이의 엄마로 산다는 것

ADHD는 외로운 거였어

친구들 사이에서 1등으로 결혼했다. 그것이 왠지 철없던 그땐 자랑같고 뿌듯했다. '결혼'을 떠올리면 고작 26살의 어린 신부에겐 '웨딩드레스'가 전부였다. 엄마 곁을 떠나 청소, 빨래, 요리까지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26살의 어린 처자는 결혼하고 엄마가 보고 싶어서 운 적도 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그렇게 철없던 나는 아기를 낳았다. '아기'를 떠올리면 배시시 웃어주고 짝짜꿍, 도리도리 하며 재롱을 피우는 모습만 생각했다.


아기가 자라는 동안 나는 점점 우울의 그림자에 나의 반짝이는 모든 것들을 잃어갔다. 아끼던 옷들, 예능 보며 끓여먹던 라면, 친구들과 만나 새벽까지 나누던 수다, '카톡!' 친구의 카톡에 후다닥 집을 나서던 시간들. 아이가 생기고 '엄마'라는 정체성을 얻는다는 것이 좋아하던 친구들을 반 강제로 만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오로지 나의 모습으로만 선택했던 내 관계들이 멀어지는 것을 의식하기 어려울 만큼, 내 세상엔 아이만이 가득했다.


그리고 이미 외로울 대로 외로운 엄마인 나에게 또 다른 정체성이 생기던 순간.

"세모는 ADHD로 진단할 수 있겠습니다."


교사로 살며 수많은 부모를 만났다. 그들은 모두 같은 엄마였지만, 각자의 정체성이 있었다. '전교 1등 엄마' '전교 꼴지 엄마' '춤 잘 추는 애 엄마' 등. 차라리 그런 정체성이 갖고 싶었다. "활발한 아이 엄마"에서 "ADHD 엄마"가 되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하지만 좌절할 시간도 없었다. 그저 "활발한 아이 엄마"로 살아갈 수도 있었지만 "ADHD 엄마"가 되기로 결심했을 땐, 모두 아이를 위한 것이었기에.


ADHD 아이의 엄마라는 정체성이 덧붙여진 후, 나는 철저히 더 외로워졌다.

누구를 만나도 아이의 ADHD를 말할 수 없었다. 내 것을 하나 보여주고, 상대의 것을 알아가는 재미로 관계를 맺어온 나로서는 항상 비밀을 안고 누군가를 대하는 느낌이었다. 호주머니 안 쪽에 ADHD를 숨겨놓고 누군가 보기라도 할까봐 전전긍긍하며 상대를 대해야 했다.


"세모 엄마, 우리 유치원 다녔던 동글이 기억나? 걔 아무래도 ADHD같아. 수업 중에 너무 돌아다닌다고 하더라고."


동네 엄마들과 이야기를 하다 요즘 핫한 이슈인 듯 ADHD라는 단어를 꺼내며 남에 자식 이름을 갖다 붙일 때면 등골이 오싹해졌다. '세모 이름도 어디선가 이렇게 누군가의 입에 오르고 있을까?' ADHD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버거운지 모르는 이들이 묘사하는 ADHD는 수업을 방해하고, 폭력적인 아이들이었다. 물론, 감정조절이 안 되어 폭력성이 강하고 과잉 행동으로 엉덩이가 들썩이는 아이들도 있다.


그러나 내가 만난 ADHD들은 훨씬 더 다양했다.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못해 멍하니 하루를 흘려보낸 아이들, 실패감이 쌓이고 쌓여 무기력한 아이, 친구 관계마저 어려워져 자신만의 동굴에 갇힌 아이들, 부단히 애쓰며 학교에 적응하지만 약물 부작용으로 힘들어하는 아이들까지.


이런 편견 때문에 아이의 ADHD는 나만의 가장 어둡고 무거운 비밀이 되었다. 나에게 다가오는 관계들은 철저히 벽을 쳤다. 나와 가까워지지 않으면 그들이 나의 비밀도 못 볼테니까. 나 역시 사람들과 철저한 나만의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ADHD 아이를 키우지 않는 엄마'라는 가면을 쓰고 대해야 하니까. 이 가면을 쓰고 사람들을 대한다는 것이 얼마나 답답한지 아니까.


"지민아, 세모는 꽃가루 알러지가 있는 체질이야."

ADHD도 어딘가에 알러지가 있는 체질처럼 가볍게 툭 털어놓을 수 있는 날이 올까?


"지민아, 우리 세모가 ADHD래. 약 먹으면서 관리하며 살면 괜찮대."

단어 하나 바꿨을 뿐인데, 나의 삶에서 가장 무겁고 진실한 것을 내뱉지 못하는 이 고립감. ADHD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느낄 것이다.


나는 '그날'을 꿈꾸며 글을 쓴다.

"민지야, 우리 아이가 우울증이래."

"기영아, 내 딸이 ADHD래."

"서아야, 우리 남편이 공황 장애래."


이렇게 누군가의 열감기처럼 편하게 툭 내뱉을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나의 글들이 누군가의 짙은 편견을 옅게 해주길, ADHD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조금은 덜 외롭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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