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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비나 Dec 09. 2023

ADHD, 왜 담임선생님께 말하지 못할까

아이의 ADHD를 알게 되고 교사인 나는 학교가 두려워졌다.


세모가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던 순간이 기억난다. 다들 제 아이만 찾느라 까치발을 연신 드는 엄마, 아빠들 사이에 나는 오직 세모의 담임 선생님만 찾았다.


'어떤 분일까? 세모를 잘 이해해 주실 분일까? 선생님께서 좀 품어주시는 분이면 아이가 약을 안 먹어도 잘 지낼 수 있을 텐데.'


세모는 과잉행동-충동형 ADHD이다. 유치원에서는 상담 때마다 선생님께서 세모는 항상 잘 지낸다고 하셨다. 7살 치고는 좀 더 활발한 아이네?라고 생각하셨던 것이다. 마음으로는 알고 있었다. 세모가 키우기 어려운 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유치원 선생님만은 나에게 "세모는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라고 거짓말해 주시기를 바랐다. 그때는 아이의 ADHD를 수용하기에도 겁이 나 자꾸만 약물 치료 없이 '저절로' 크면 나아진다고 애써 회피했다. 지나고 나서 돌아보니 그 시기는 아이의 ADHD를 수용하는 통과의례를 지나는 과정 중 하나였다. 생각보다 오래 걸린 것 같지만 말이다.


부작용에 겁을 먹어서 약을 먹이지 못했던 1학년. 아이가 약을 먹지 않아도 학교 생활을 무난히 해낼 거라는 생각은 큰 오산이었다. ADHD 아이는 단체 생활에서는 계속 지적받고, 친구들과의 트러블에서 또래가 주는 즐거움도 못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 ADHD 치료는 오직 아이를 위한 거였다. 처음 아이의 ADHD에 대해 알게 됐을 때는 아이의 어려움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내가 힘드니까. 선생님이 힘드시니까. 병원을 가야겠구나 생각했다. 세모가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나서야 알았다. 아이는 그동안 알고 있어도 행동을 조절하지 못해서 자꾸만 실수하고, 선생님께 지적받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약물 치료를 시작하며 아이는 보통의 아이로, 아주 튀지는 않는 아이로 성장했다. 약효 덕분에 세모는 분명 변화가 있었는데, 어느 날 선생님께 또 전화가 왔다.


"어머님, 세모가 점심을 거의 안 먹어서요."


약에 적응하고 있던 세모는 메디키넷의 부작용, '식욕 부진'을 겪고 있었다. 선생님은 약을 먹고 있는지 알지 못하셨기에 아이가 왜 점심을 겨우 두 숟가락 먹고 마는지, 왜 갑자기 축 처져서는 예민하게 구는지 알지 못하셨다.


'말씀드릴까?'

'아니야. ADHD라고 말하면 아이를 문제 있는 아이로, 결함 있는 아이로 보시면 어떡해.'


'그래도 네가 교사니까 알잖아. 아이가 약을 먹고 있는데 학부모가 교사한테 말하지 않아서 문제가 생길 때 아이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답답함!'

'그렇지? 역시 말해야겠지?'


교사인 나도 얼굴도 뵌 적 없는 세모의 담임 선생님께 아이의 진단명을 말씀드리지 못했었다. 막연한 두려움이었다. ADHD라는 것이 가장 가까운 친정 부모님께도 말하기 어려운 것이니 말이다. 말씀드려서 괜히 선생님께 '선입견'이라는 안경을 씌워드리는 건 아닐까 염려했다.



하지만 결국 세모가 2학년이 되고, 담임 선생님께 눈물의 고백을 해야 했다. 세모가 약을 바꾸고 나서 다소 수다스러워지면서 말실수가 잦아졌기 때문이다. 담임 선생님께서 연락을 하셨다. 이젠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는 것 같았다. 조금만 더 뒷걸음치다간 세모도 나도 학교라는 곳이 너무 두려워져 버릴 그런 상황이었다.


"선생님, 세모는 ADHD 진단을 받았습니다."

"어머님, 이제야 세모의 모든 행동이 '이해'됩니다.“


눈물이 쏟아졌다. 이젠 다시 담을 수도 없는 말이었다. 오직 할 수 있는 건 선생님께서 아이와 나의 '협력자'가 되어주시길 간절히 바라는 일뿐이었다.


선생님께서는 그 후 나와 세모의 진정한 협력자가 되어주셨다. 세모가 보통의 아이들보다 잘 해내는 것이 얼마나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진심으로 이해해 주셨다. 작은 것 하나에도 칭찬해 주시고, 10번 이름 부를 것도 5번만 부르시는 것 같았다. 칭찬을 받고 오는 날엔 환한 웃음으로 나에게 학교에서 자신이 얼마나 뿌듯했는지 한껏 자랑해 주는 일도 많아졌다.


교사는 3월이 되면 꽃가루 알레르기부터 천식, 소아 당뇨까지 담임 학급의 건강 상태가 적힌 파일을 받는다. 언제나 비상 상황이 될 수도 있고, 아이의 질환을 알고 교육 활동에 대비하라는 의미다. 요즘처럼 정신 건강이 중요한 시기. 그 파일엔 아이들의 정신적 질환에 대한 내용은 본 적이 없다.


알레르기도 꽃가루, 땅콩, 복숭아 등 다양한 것처럼, ADHD도 다양한 양상을 띤다. 과잉행동부터 아주 조용한 주의 집중력 결핍형 아이들까지, 그 모습이 다양하다. 만약 교사가 학생들의 건강 상태 목록에서 과잉행동-충동형 ADHD, 주의 집중력 결핍형 ADHD, 공격성이 있는 아이, 우울증이 있는 아이에 대한 상태가 적힌 <정신 건강 요보호 학생> 파일을 받는다면 어떨까? 아이의 돌발 행동에 대비할 수 있지 않을까? 공격성이 있는 아이들에게는 위험한 물건을 주지 않는다던지, 조용한 ADHD 아이들은 자세한 지시 사항이 추가된 지시 사항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천식이 있는 학생에게 장거리 마라톤을 뛰게 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아이는 ADHD 진단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선생님께 왜 말하기 어려울까요?

이미 두려운 학교라는 곳에서 내 아이가 'ADHD'로

불리게 되는 것은 더 두렵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교사는 알고 나면

아이를 더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부모가 조금만 용기 낸다면,

조금 더 솔직하게 털어놓는다면

학교는 더 이상 두렵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교사라는 든든한 '협력자'가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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