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사비나 Dec 23. 2023

교사, 학부모 그리고 ADHD 아이, 각자의 입장

모두가 괴로운 학교 현장

ADHD라는 단어는 내 인생과 평생 상관없는 일일 거라 생각했다. 모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정신 산만한 아이들을 그냥 다 그렇게 부르나보네 하고 가볍게 생각했던 이름이다.


내가 낳아 놓은 예쁜 아기가 나를 미치게 만들고, 유치원에서 그리고 학교에서도 선생님을 지치게 만들기 시작했다. 아이를 쥐 잡듯 혼내고 뒤 돌아 자책하던 수많은 날들을 보내고 나서야 발견한 ADHD. 누구도 나에게 검사를 권하지 않았다. 나 스스로 누구의 도움도 없이 오롯이 내 의지로 내 아이를 위해 정신건강의학과를 갔다.


세모의 ADHD를 알기 전, 나는 단 한 명의 ADHD 학생을 맡은 적이 있었다. 그 아이가 만드는 온갖 문제에 담임 교사인 나는 1년 동안 30명의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는 데 사력을 다했다. 하영이는 과잉행동-충동형 ADHD였다. 정신없이 움직이고 쉴새없이 말하는 중학생이었다. 어느 날엔 물건을 던져서 학폭 처리를 해야했고, 언어적 충동성으로 친구들에게 욕을 해서 싸움을 중재해야 했다.


하영이 부모님께 계속 전화를 해야 했다. 어머님 말씀에 ADHD라는 걸 알게 됐다. “선생님, 하영이가 약을 먹고 있는데 가끔 안 먹으려고 해서요...” 교실에서 우리 모두를 괴롭히던 것이 하영이의 ADHD였구나...


나에게 ADHD는 하영이같은 친구들이었다.

교실의 모든 문제를 만드는 그런 괴로운 것이었다.

나의 아기가 ADHD를 갖고 태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신경 회로가 달라서라든지, 약을 먹는 것이 엄청난 부작용들을 견디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든지, 본인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든지... 이런 면들은 내가 ADHD 아이의 부모가 되어서야 알았다.


무엇보다 하영이의 부모님을 다시 찾아가 내가 던진 모진 말들을 다시 되돌려받고 싶었다. 얼마나 교사의 말들에 아팠을까. 약을 먹이기까지, 아이의 몹쓸 진단명을 인정하기까지 얼마나 힘드셨냐고. 조금의 이해도 위로도 드리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가장 미안했던 것은,

하영이 본인이 가장 괴로웠을 것이라는 것을 모른 채

단 한 번도 충분히 애쓰고 있다고 격려해주지 못한 것이다. 



교사와 부모, 그리고 아이는 왜 서로가 힘들어졌을까.

그 모든 원인이 ADHD인지 모른 채.


교사는 답답하다.

ADHD가 교실의 질서를 휘저어놓는 것이.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데 모든 다짐과 계획을 망쳐놓는 아이에게 예민해진다.

부모에게 말을 해야 하는데...

ADHD라는 단어를 꺼낼 수가 없다. 마치 해리포터의 볼드모트처럼 우리 모두 알지만 그 이름만은 말하면 안 되는 분위기에 교사는 애써 둘러 말해본다.

검사를 받고 약물 치료를 받고 나면 아이는 나아질텐데, 다음 해에도 이 아이는 모든 교사의 애물 단지가 될텐데. 부모는 받아들일 기미가 안 보인다. 부모의 신뢰마저 잃고 나면 그 아이를 미워하는 교사로 생각할까 두렵다. 이미 교사의 권위는 바닥이기에, 모든 말과 행동을 검열하며 사는 교사는 부모에게 정신건강의학과에 가보란 말을 하지 못한다.

그저 답답하다.



부모는 속상하다.

자꾸 전화하는 교사가 왜 부모에게 하소연을 하는 것인지. 부모가 집에서 아무리 가르쳐도 ADHD는 아이의 의지로 되지 않기에,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두 통제할 수 없어 답답하다. 아무리 집에서 혼쭐을 내도 아이는 또 선생님께 혼나고 온다. 정신건강의학과에 데려가자니 어떻게 가야 하는지, 검사비는 50만원인데 받을 가치가 있는 것인지, 정신과 기록이 남는 것마저도 두렵다. 선생님은 계속 전화하시는데 올해만 버티면 되지 않을까? 선생님이 너무 예민한 사람인 것이 아닐까? 아이가 크면 나아지지 않을까?

선생님의 권유든지 자신의 용기든지 아이와 함께 간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아이의 ADHD를 알게 됐다 해도 부모는 속상하다. 문제를 알게 됐지만 그 해결 과정이 “평생”이란다. 정신과 약을 매일 평생 먹어야 할 수도 있단다. 그리고 그 결정을 아이의 의견은 묻지 못한 채 다 ”내“가 하란다. 약을 먹여봤는데 아이의 반짝임과 통통 튀는 모습, 먹는 즐거움, 잠자리의 편안함마저 앗아가다니. 이게 맞는 건가... 의심은 매일 계속 된다.

부모는 그저 속상하다.


교사는 이 길고 지난한 과정까진 알지 못할 것이다.

나 역시 직접 겪고 나서야 알았으니 말이다.

ADHD는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었단 것을.



무엇보다 이 대치 상태에서 가장 괴로운 사람은 바로 우리 아이들이다.


ADHD 아이는 괴롭다.

왜 자꾸만 들썩이고 싶을까. 나는 왜 혼나면 안 되는 이유를 모두 알면서도 그 행동을 하고 있을까. 내 몸은 내 생각은 왜 내 맘대로 되지 않을까. 오늘도 나는 이름을 불리고 집에 가서 부모님께 혼이 난다. 죄송하다는 말은 또 열심히 해본다. 하지만 다음 날도 잘 할 거란 자신이 점점 없어진다. 자신이 무엇을 갖고 태어났는지 어른들이 말해주지 않으면 알 수가 없는 아이들.

공부를 하고 싶은데 내 앞에 10대가 넘는 텔레비전이 켜 있는 느낌이다. 저것도 보고 싶고, 아 이것도 보고싶다. 열심히 앞에 켜져있는 텔레비전을 보다 하루 할 일을 다 하지 못 했다. 나는 대체 왜 이럴까. 난 뭘 해도 안 될 아이구나 단정짓는다.

자신의 문제가 ADHD란 걸 알게 되어 약을 먹기

시작하니 또 다른 어려움을 견뎌내야 한단다. 급식 시간에 잘 먹던 맛있는 메뉴가 나와도 먹기가 싫다. 밤엔 잠도 잘 안 와서 미치겠다. 엄마는 빨리 자라고 잔소리를 하신다. 나도 자고 싶다... 약효가 떨어지는 시간엔 미친듯 울고 싶다. 기분이 최악이다. 낮 시간의 성취와 저녁 시간의 괴로움.

약이 ADHD를 없애주는 게 아니기에.... ADHD를 미친듯이 눌러두었다가 저녁에 만나야 하는 아이들은 그저 괴롭다.


모두가 ADHD를 두고 힘겨운 씨름을 하고 있다.

학교 현장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시스템.


교사는 부모에게 검사를 바로 권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부모는 아이의 ADHD, 그리고 키우는 과정에 대한 심리적, 경제적 지원이 필요하다.

아이에게도 자신의 다양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학교 문화, 보조적으로 학습과 생활을 지원받을 수 있는 또 다른 시스템이 필요하다.



하루 아침에 될 일이 없다.
우리가 계속 우리의 이야기를 해야 하는 이유다.
무엇보다 이 모든 시작은
각자의 입장을 이해하는 데서,
각자의 목소리를 깊이 들어주는 데서
출발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전 08화 "선생님, 저는 바보일까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