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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비나 Dec 16. 2023

"선생님, 저는 바보일까요?"

난독증과 ADHD가 만날 때

"선생님, 저는 바보일까요?"

우리 반 영현이가 물었다. 영현이는 중학교 3년 동안 자신이 얼마나 공부에 소질이 없는지 확인하는 시간을 보냈다고 털어놓았다. 아무리 많은 시간을 투자해도 온갖 사교육을 받아도 성적이 하위권에 머물렀다. 아이들은 이제 모두 어떤 고등학교를 가야 할까 고민하는 시기, 영현이는 자신이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서 버틸 수 있는지 치열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왜 그렇게 생각해?"

"저는 아무리 공부해도 시험 성적이 안 나와요."

영현이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벌써 3번째 보이는 눈물이다.

수많은 아이들을 지도했지만 공부가 안 돼서 우는 하위권 친구는 처음이었다. 대부분 하위권에 머무는 아이들은 본인들이 공부에 흥미도, 의지도 없는 것을 알고 있어서 성적에 큰 기대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영현이만큼 공부했다면 적어도 평균의 성적은 나와야 했다. 영현이의 답답함을 알 것 같았다.


영현이가 이렇게 상담 때마다 학업 문제로 울기 시작했을 때, 두 가지를 의심했다. 우울증, 그리고 ADHD. 영현이와의 상담 후, 수업 시간 영현이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다. 영현이는 대부분의 수업에 연신 끄덕이거나 모든 필기를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집중력이 나쁘진 않은데? ADHD가 아닌가?'


아이들에게 분사구문에 대해 열심히 설명을 한 후, 문제를 풀어보게 했다. 아이들의 실력이 천차만별로 다양하기 때문에 개별 지도를 위해 교실을 돌아다니며 아이들의 문제 푸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봤다. 영현이가 문제를 푸는 모습을 보고 나는 큰 충격에 빠졌다. 영현이의 글씨를 도저히 알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대충 흘려서 쓰는 글씨 쓰기 습관이 잘못된 아이와는 달랐다. 글씨가 하나하나 크기가 달랐으며, 줄맞춤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영현아, 다른 교과서도 좀 가져와볼래?"

국어 교과서 속 영현이의 글은 중학교 수준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세모 정도의 글씨체와 문장이었다. 영현이는 모든 수행평가에서 아주 낮은 점수를 받았다. 문장을 쓰는 능력이 현저히 또래보다 떨어지는 것이었다.


'이건 ADHD만 있는 게 아닐 수도 있겠는데?'

서둘러 전문 상담선생님께 여쭤보았다.

"이 아이, 쓰기 장애 거나 난독증이네요. 검사받고 치료받으면 좋겠어요."


출처: 아주대학교병원 아주스토리 홈페이지

http://www.mo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3355

난독증 아동의 40%는 ADHD를 동반한다고 한다. 영현이는 어째서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나서야 본인의 문제를 알게 됐을까? 우리나라는 교육청에서 난독증을 선별하여 적극적으로 초등학교 때부터 치료하는 시스템이 없다. (있다 해도 지역별 편차가 매우 크다.)


2019년, 미국의 중학교에서 실습을 한 적이 있었다. 두 여학생이 작은 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있었다. Dyslexia, 난독증 수업이었다. 교사는 지역 교육청에서 매주 이 아이들을 위해 학교 정규 수업 시간에 방문을 한다. 다른 학생들은 영어 글쓰기나 국어 수업을 받을 때, 이 두 학생은 난독증 치료 수업을 받는 것이다. 난독증 읽기 어렵게 태어난 아이들인 경우가 많기에 조기에 발견하여 치료받는다면 또래만큼 읽기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ADHD도, 난독증, 쓰기 장애도 학교에서 선별하는 시스템이 없다. 그렇게 놓친 아이들은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어 "난 왜 이렇게 바보일까" "나는 왜 아무리 공부해도 머릿속에 들어오는 것이 없을까" 문제를 발견하지 못한 채 자신을 탓하게 되는 것이다. 영현이처럼 말이다.


나 역시 영현이의 어려움을 몰랐다. 그 아이가 나를 붙잡고 자책의 눈물을 흘리기 전까지 말이다.

"영현이가 나와서 칠판에 답을 적어볼까요?"

영현이는 보드마카를 잡고 어렵게 글씨를 써 내려갔다.


단순히, 글씨를 못 쓰는 친구라 생각했다.

단순히,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라고 생각했다.

공부에 의지가 없고 관심이 없는 아이라고 여겼다.

그렇다 하여 아이를 지적하고 문제 삼을 이유도 없었다.

여느 문제아들처럼 수업을 방해하고 교사에게 반항하는 아이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영현아, 너에게 ADHD나 난독증이 있을 수 있어. 그건 검사를 받아봐야 알 수 있어. ADHD와 난독증은 꼭 공부를 잘하기 위해 치료받는 것이 아니야. 주의 집중력과 글을 읽어내는 능력은 평생에 걸쳐 너의 삶의 질에 영향을 주는 능력이야. 이 시기가 늦은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


나 역시 교사 경력 10년 동안 학습 장애에 대해 특별한 선별 방법이나 특징에 대해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어떤 검사를 받아야 하며, 어떤 기관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나의 아이가 ADHD가 아니었다면, 그래서 내가 ADHD에 대해 공부하지 않았다면 아마 영현이의 문제조차 '단순히 공부를 그냥 못하는 아이겠지' 생각했을 것이다.


여전히 학교엔 학습 장애와 ADHD를 선별하여 도움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은 없다.

초저출생 사회를 앞두고 있는 우리나라.

어쩌면 소수자가 될 아이들을 위해 과연 시스템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을 기대할 수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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