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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비나 Dec 30. 2023

캐나다 학교의 ADHD, 무엇이 다를까

우리나라 학교는 변화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 중학교 교사로 10년 간 근무하면서 "선생님, 우리 아이는 ADHD가 있어요."라는 말을 딱 두 번 들어보았다. 과잉행동의 최고봉이었던 중2 아이와 최근에 ADHD 검사를 권유해 진단을 받게 된 아이 딱 두 명이다. 진단율이 8~10%나 된다고 하는데 어떻게 나는 ADHD라고 말하는 아이를 단 두 명만 알고 있을까.


내 아이, 세모의 ADHD를 알게 된 건, 담임선생님의 검사 권유도 아니었다. 미디어 속 ADHD 이야기들을 보면서 여러 번의 의심과 추측을 거쳐 검사를 받았을 뿐. 약물 치료에 대한 결정도 홀로 인터넷 속 지식을 하나씩 모으고 모아 스스로 결론을 내려야 했다. 그 과정에서 난 철저히 혼자였고 고독했고 두려웠다. ADHD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몰랐으며, 왜 내 아이는 모두가 즐겁게 다니는 학교에서 열외 되고 약을 먹어야만 하는지 그 이유를 누구도 나에게 납득이 되게 설명해주지 않았다.


정서적 지지도, 경제적 지원도 없었다.


교사로서 우리 반 충동성의 끝을 달리는 아이에게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권했을 때도 부모님께서 받으실 수 있는 경제적 지원을 제대로 설명해드리지 못했다. 실제로 알아보니 소득조건이 걸려있기도 했다. 게다가 지역별로 또 바우처 제도도 다 달랐다.


검사비는 대략 50만 원.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예약은 대기가 최소 1년.



ADHD 아이들의 과잉행동과 충동성에 담임교사와 같은 학교 친구들이 함께 힘들어하는 모습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ADHD 아이를 맡는 교사는 아이의 돌발 행동, 갑자기 화를 낸다든지, 교실 밖으로 나가는 등의 갑작스러운 상황을 마주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교사는 돌발 상황에서도 학급 전체, 나머지 아이들도 책임져야 하는 부담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 (물론, ADHD 아이의 양상은 다 다양하다.)


이 아이들이 그렇다면 '특수교육대상자'일까? 서울대 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김붕년 교수는 ADHD 아이들은 지능과 상관이 없기 때문에 특수교육 대상자로 보기에도 어려움이 있다고 말한다.


게다가 우리나라 특수교육은 캐나다, 미국과 같은 국가와는 전혀 다른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우리나라는 자폐 스펙트럼, 경계성 지능, 신체장애 등 모두가 한 학급에 모여 교육을 받는다. 단 한 명의 특수교사와 함께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라는 의미의 '도움반'에 배정되는 시스템. 가끔 내 수업을 들으러 오는 도움반 학생을 보며, 말이 통합 교육이지 보통 학급에서 '열외'시키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캐나다는 ADHD, 경계성 지능, 자폐 스펙트럼, 그리고 영재 아이들까지 신경다양성의 아이들을 "개별화 교육계획(IEP: Individualized education plans)"을 통해 교육시킨다. 각자의 어려움을 '개별적'으로 도와주어 진정한 '통합' 교육을 추구하는 개념이다.


이 IEP 교육계획에서는 ADHD 아이를 위한 별도의 교육과정을 세우고 ADHD 아이의 '배움에 대한 권리'를 존중하고 있다.


그렇다면 캐나다 학교의 ADHD 아이는 어떤 개별적인 학습적 '배려'를 받고 있을까?


1. 교실에서 ADHD 학생을 산만하게 만드는 자극요소를 제거해야 한다.

2. ADHD 학생의 위치는 교실 중앙 보다 측면, 창문과 먼 곳이 좋다.

3. 책상 위는 해당 교과에 필요한 내용만 놓도록 지도한다.

4. 소음과 학습방해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

5. 수업에서 학생의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6. 짧지만 자주 학생과 교감하고 적절한 휴식을 준다.

7. 명확한 문장과 발음으로 수업한다.

8. 원활한 수업을 위해 교사의 배려가 필요하다.

9. 가능하다면 학생에게 선택권을 준다.

<출처: '프런티어 대학'이 제시하는 구체적 전략(Stacy Sullivan, 2015)>


이외에도 처리속도가 낮은 ADHD 아이들을 위해 시험 시간을 더 준다든지, 과제 시간에 피젯 토이(과잉행동을 해소하는 작은 장난감)를 갖고 놀게 허용한다든지 하는 배려가 있다고도 한다.


캐나다 정부는 ADHD 아이들을 위한 정책을 만들기도 했다.

첫째, Service Canada의 ADHD 학부모를 위한 양육기술과 부모교육 제공
둘째, ADHD 아이를 키우는 가족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한 '세금 환급제도'
셋째, 지역 상황에 맞는 교육행정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지역별 독립적 행정을 보장

캐나다의 ADHD에 대한 정책이나 학교에서의 배려가 어떻게 보면 특별할 것이 없는 것 같지만, 우리나라 학교는 ADHD 아이들을 위한 '정책', '지원', '교육과정' 자체가 없다는 것이 포인트다.


도움반에서 한 명의 교사가 특별하면서도 다양한 양상의 아이들을 케어하는 개념이 아닌, 한 교실에서 신경다양성 아이들이 '개별화된 배려'를 받을 수는 없을까? 진정한 통합이 이뤄질 수 있는 교실은 어쩌면 유토피아일까?


적어도 "선생님, 저희 아이는 ADHD가 있습니다." 당당히 말할 수 있고, "선생님, 그래서 저희 아이는 개별적인 교육적 배려가 필요해요." 요구할 수 있는 시스템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또한, 교사들도 편하게 아이와 부모에게 ADHD 검사를 권할 수 있는 시스템도 필요하지 않을까? 교사가 교실 속 신경다양성의 아이들의 다양한 양상을 알고 대응할 수 있도록 마땅한 도움을 제공해야 하지 않을까?


정책과 시스템이 없는 조직은 구성원들이 각자의 판단으로 고군분투해야 한다. 그러나 견고한 시스템이 존재한다면, 조직에서 기능하는 구성원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바로 알고 대응할 수 있다.


그렇다.

우리나라에도 정책과 시스템이 있다면, 부모와 교사는 아이들을 위한 결정을 더 쉽고 빠르게 내릴 수 있다.



우리나라 학교도 변화할 수 있을까?


ADHD 아이들이 당당히 검사와 진단을 받고, 적기에 ADHD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지기 위해선 일단 '정신건강의학과'에 대한 편견이 사라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ADHD는 결핍이 아닌 하나의 특성으로 인식하면서 이 특성에 맞는 교육과정과 개별화된 지원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시스템과 문화의 변화로 ADHD 아이들은 학교에서 분명 좀 더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다. 교사 역시 ADHD 아이를 맡아야 하는 부담감을 한결 내려놓을 수 있다.


그 시작은 우리의 인식 변화에 있다.


내가 만난 ADHD와 그리고 아이들.
ADHD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여있지만
모두가 다 다른 색을 띠고 있었다.

ADHD는 마치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진단명 같지만,
사실 가장 힘든 건 아이들 자신이었다.

누구나 평균치만큼 행복하고 싶고,
평균치만큼 자라고 싶어 했다.
이제 시작이다.
누구나 ADHD의 부모가 될 수 있고,
ADHD인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더 이상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고통받지 않게,
더 이상 교사도 학부모도
서로를 미워하지 않게
이제는 변화해야 한다.

우리도 분명 할 수 있다.



[참조문헌: 홀리스틱 교육의 ‘두 관점’으로 본 캐나다 ‘ADHD 교육과정’의 교훈(Lessons from ‘ADHD Curriculum’ in Canada from the ‘Two Perspectives’ of Holistic Education), 한국홀리스틱융합교육학회, 홍지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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