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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비나 Nov 11. 2023

"엄마, 5분만! 이것만 하고!"

ADHD, 우선순위를 왜 모를까

"세모야, 학교 가야 해. 이제 멈추고 나와."

"엄마, 5분만! 나 이거 끝내고 갈게."


ADHD 아이의 생활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가끔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것 같다.


세모는 지각은 하지 않을 만큼 아슬아슬하게 준비해서 나간다. 일어나는 건 쉬워도 세수, 옷 입기, 밥 먹기, 양치하기, 등교하기만 하면 되는데 그 사이사이에 자꾸 다른 일이 추가된다. 전형적인 ADHD 증상들이 몰아치는 시간이다.


일어나면 일단 바로 세수하러 들어가지 않는다. 동생에게 한번 시비를 걸어보는 세모. 그러다 나의 잔소리에 세수를 하고 나와 옷을 주섬주섬 입는다. 옷을 입고 나오면 눈에 보이는 장난감 하나를 쥔다. 그 장난감 하나에 시간이 어떻게 얼마나 흘러가는지 인지하지 못한 채, 놀이에 빠진다.


 "와서 밥 먹어."

"아, 엄마 이거 딱 한 번만 하고!"

겨우 식사 자리에 앉는 세모. 앞에 앉아있는 동생에게 또 시비를 걸기 시작한다. 보다 못한 내가 숟가락을 손에 쥐어줘야 한 술 뜨기 시작한다.



ADHD 아이들의 등교가 어려운 이유는 간단하다.

"ADHD 때문이다."


ADHD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비ADHD인들에 비해 도파민 분비가 잘 되지 않는다. 도파민이란 쾌락과 행복감과 관련된 신경 전달 물질이다. '쾌락 호르몬' 또는 '보상 호르몬'이라고 부른다. 어떤 일을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을 학습하게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상을 받는다면? 도파민이 분비된다. 그럼으로써, 공부를 하면 기분 좋은 보상이 따라오는구나!라는 것을 학습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ADHD인들은 이 도파민 분비가 잘 되지 않기에 공부, 운동처럼 지루하지만 꾸준히 해내야 보상을 얻을 수 있는 활동에는 별로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 대신, 게임, 놀이와 같이 눈에 보이는 '즉각적인 보상'을 추구하는 자극 추구 양상을 보여준다.


ADHD 아이들이 자꾸 등교와 같이 '해야 할 일'보다 눈에 보이는 '하고 싶은 일'을 우선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바로 "우선순위"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ADHD 아이들의 경우, 숙제는 해야 할 일, 축구는 하고 싶은 일이라고 했을 때, 숙제를 완료했을 때 오는 보상과 쾌락감을 잘 느끼기가 어렵다. 일단 완료하기까지 계속 산만해지고 집중을 유지하기 어렵다.

또한, 다 했을 때 성취감, 학습에 대한 재미, 그리고 교사들로부터 받는 긍정적인 피드백은 지루한 학습을 꾸준히 해내 완료함으로써 느끼게 된다. ADHD 아이들은 이런 경험 자체가 적다. ‘숙제는 보상과 쾌락을 준다’는 이 도파민 분비에 대한 경험치가 적다 보면 계속 그 일을 미루기 쉬워지지 않을까?


당장 쾌락을 줄 수 있는 '하고 싶은 일', 축구를 하러 나가고 말지!


반면, 비ADHD인들은 '해야 할 일'을 완료했을 때 오는 보상과 쾌락을 느껴 본 경험이 많다. 도파민 분비가 ADHD보다는 잘 되기 때문에 보상 인지가 더 확실하다. 숙제와 축구의 우선순위를 구분하기가 더 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등교 준비 시간이 길어지는 이유가 뭘까?

ADHD 아이들에게는 '옷 입고 등교 준비하기'와 당장 눈에 보이는 '팽이 돌리기'나 똑같이 중요한 일이다. 어쩌면 팽이를 돌리는 놀이 시간이 아이에겐 더 우선순위에서 상위를 차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1. 딴 길로 새는 것

2. 재밌는 것에 과몰입하는 것

3. 우선순위 구분이 어려운 것


ADHD 아이들에게 전형적으로 보이는 이 세 가지 특징은 어쩌면 일맥상통하는 것이 아닐까.



그저 모두 너희의 뇌가 하는 일.


신경 다양성(Neuro-diversity).

모든 사람의 뇌는 다르게 태어난다. 태어날 때부터 결정되는 성별, 인종, 키, 지능, 기질과 같이 뇌도 그렇다. '다양성'의 가치를 얼마나 높이 사는지가 그 나라의 그 문화권의 성숙도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다양성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존중'받는다는 걸 의미한다. ADHD가 나의 삶에 들어오는 순간, 난 10%의 소수자 클럽에 가입했다. 자폐, 틱, ADHD, 선택적 함구증 등. 모두 뇌가 하는 일이다. 그렇게 조금은 다르게 태어났을 뿐이다.


다양성은 다양한 방식의 '배려'가 필요하다. 적절한 배려를 위해선, 이 아이들의 뇌가 어째서 이런 행동을 하게 만드는지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ADHD 아이들의 등교가 늦어지는 이유, 우선순위를 모르는 이유가 뇌 때문이라면?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적절한 방법으로 도와줘야 한다.


1. 딴 길로 새지 않도록 등교 루틴의 순서를 적은 쪽지를 화장실 거울, 침대, 현관 등에 붙여둔다.

2. 재밌는 것에 과몰입하지 않도록, 타이머를 이용해 시간을 의식하게 한다.

3. 우선순위를 구분하게 하기 위해, 항상 '해야 할 일'을 먼저 하고 체크하는 습관을 가르쳐야 한다.


반복만이 살길.

비ADHD아이가 10번에 익힐 습관, ADHD아이에게는 100번의 기회를 준다. 이것이 다양성의 가치가 아닐까. 똑같은 방식을 강요하면서 '넌 왜 쟤처럼 못하는 거야?' 질책하는 우리는 이 다양성의 가치를 잊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지.



자폐, 틱, ADHD, 선택적 함구증 등의
신경다양성을 가진 사람들을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들을 사회에서 어떻게
긍정적으로 기능하게 할 것인지.
그 시스템을 만드는 일,
인식을 개선하는 일을
성숙한 사회라면 멈추지 말아야 한다.

언제든 신경다양성인 사람들은
당신의 가족이 될 수 있고,
또 모든 사회구성원의 행복추구권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중엄한 권리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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