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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비나 Nov 04. 2023

사춘기에 ADHD를 알게 된다면

과잉행동-충동형 ADHD의 사춘기

"이선생님, 이 학생 힘들 거야."


2월이 되면 담임교사는 올해의 운을 다 걸고 싶은 날을 마주한다. 바로 매일 만나는 아이들을 결정하는 그날. 학급 명단을 뽑는 날이다.


'제발 무탈한 한 해가 되어라.' 빌며 가장 앞에 있는 두 번 접힌 A4 지를 턱 잡았다. 작년에 맡았던 아이들이 아니어서 이름을 보면 이미지가 떠올라야 하는데, 그저 다 낯선 이름이다.


"이선생님, 이 학생... 힘들어..."

별표를 쳐주신다.

조금은 긴장됐지만, ADHD도 키우는 엄마인데 까짓것. 힘든 학생쯤이야. 라고 호기롭게 생각하며 한 해를 시작했다.



별표를 달고 온 수민이는 3월 2일, 시업식에 오전 10시가 다 되어 교무실로 등교했다. 3월 2일에 지각하는 학생은 교직 경력에 처음이라 적잖이 당황했다. 교복은 엉망으로 입고 티셔츠 하나만 덩그러니 입고 온 아이. 제일 먼저 든 생각. '아, 올해 쉽지 않겠네.'


수민이는 참 밝은 아이였다. 학교도 꼬박꼬박 지각은 해도 늘 출석했다. 재작년에 우울증으로 학교를 계속 오지 않던 아이가 있었다. 학교를 등교한다는 것이 그 나이대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것을 깨달은 후, 등교를 하는 아이들은 그저 예쁘다.


그런데 수민이는 어딘지 모르게 몸집만 커진 나의 아이 세모를 상기시켰다. 학교에 즐겁게 오지만 수업 시간엔 손톱을 뜯고 다리를 떨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노래를 흥얼거리지 말라고 말해도 자신도 모르게 다시 흥얼거리고 있었다. 수업 시간에 조용하다 싶으면 잠을 자고 있었다. 모든 선생님은 그 아이가 공부와 학교를 포기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나 역시 그랬다.


수민이의 문제 행동은 다양하게 보였지만 일맥상통하는 것이 있었다. 모두 충동성에서 기인한다는 점. 끊지 못하는 담배도, 배고프면 그냥 일단 점심시간에 쉽게 교문을 나가 편의점에서 음식을 사서 오는 행동도, 안절부절 수업 시간에 가만히 있지 못하는 자세까지.


보통 이런 아이들을 우리는 '문제아'라고 불러왔다. 문제가 있는 아이라는 건, 해결할 과제가 있는 아이라는 뜻일 것이다. ADHD 아이를 키워오고, ADHD에 대한 다양한 책을 읽고 나니 '문제아'라고 부르면서 놓쳐온 제자들이 생각났다. '이 아이들은 대체 부모가 어떻게 키우길래 학교를 이렇게 다니게 놔두는 건가' 부모 탓을 해보기도 했다. 그런데 ADHD 아이를 키워보니 그 부모 탓이 얼마나 잔인한지 알았다. 나는 분명 형편없는 부모가 아닌데도 ADHD를 만나게 되었으니 말이다.


수민이에게도 ADHD가 있는 것이 아닐까.

성인 ADHD 커뮤니티에서 항상 듣는 말이 있다.

'ADHD를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나의 삶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어머님, 안녕하세요? 수민이 일로 전화드렸습니다. 수민이가 학교에서 불안도 높고, 수업 시간에 집중을 잘하지 못하네요. 위클래스 선생님을 몇 번 만나게도 했는데 아무래도 수민이는 정신과에 가보시는 걸 추천드리고 싶어요. 수민이 위해 가보세요 어머님. 아니면 다행이고, 가서 알게 되면 빨리 알게 되는 거니 아이에게도 좋을 거예요. 일단 수민이는 충동성이 가장 문제입니다. 흡연, 술, 돈을 빌리고 갚지 않는 등... 타인을 생각하지 못하고 갑자기 생각나는 일을 행동으로 옮겨서 문제가 되어요."


수민이와 어머님은 정신과에 무작정 찾아가 긴 대기 시간을 기다려 진료를 보게 되었다. 현재, 수민이는 ADHD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아이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선생님 아이도 ADHD야.'라고 말하고 싶었다. (세모를 위해 아직은 내 멋대로 밝히지 않고 있다.)


"선생님, 저를 10분 보더니 ADHD래요. 전형적인 ADHD 증상이라는데요?"

우리 반 수민이가 밝게 웃는다. 마치 자신이 힘든 이유가 '나 때문만은 아니라는, 치료 방법이 있다는' 희망을 봐서 그런 듯, 아이는 해맑게 웃었다.


'수민아, 선생님 아이도 ADHD야. 그런데 엄마들은 굳게 믿어. 내 아이가 지금은 조금 힘들어도 노력하면 이룰 수 있는 것들이 많다고 말이야.'



과잉행동-충동형 ADHD 아이들은 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에서 'Hyper-activity'가 가장 두드러지는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의 특징은 조기 발견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수민이는 중3이 되어서야 검사를 받게 됐을까?


우리 동네처럼 지방에 살아서 주변에 소아청소년정신과가 드물거나 좀 더 자유로운 분위기인 경우엔 조기 진단이 어려울 수 있다. 무엇보다 선생님들께서 '정신과'라는 단어를 부모님께 하기 어려운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이런 아이들은  그저 '동네 말썽꾸러기'를 담당하며 초등학교 시절을 보내게 된다. 학교에 한 명쯤은 그런 아이들이 있는 법이니까. 다들 그게 내 아이면 아니면 된다고 생각하니까.


세모가 만 6세에 ADHD 진단을 받은 건 행운이었다. 아이가 말썽꾸러기로 낙인찍힐 '뻔' 했던 순간에 약물 치료가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약을 매일 챙겨주는 일상이 버거울 때도 있지만, 아이는 영양제라고 생각하고 매일 잘 복용해주고 있다.


사춘기 아이들이 ADHD를 진단받아 치료를 잘 받는다는 건 아주 어릴 때 진단받아 치료를 받는 것과는 또 달랐다. 수민이는 불안약을 먼저 받아왔는데, 유독 행동이 이상한 날에 물어보면, "아 맞다. 약 안 먹었네요."라고 대답하곤 했다. 어머님도 일이 바쁘시니 중학생 아이의 등교 루틴을 챙겨주기가 어려운 시기다. 아이 스스로 잘 챙겨 먹어야 하루가 편한데 쉽지 않은 것이다.

"수민아, 그래도 먹다 안 먹다 하면 약이 너에게 잘 맞는지 느끼기 어렵기도 하대. 잊지 말고 챙겨 먹고 와~ 점점 편해질 거야"



김강우 작가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항상 기억에 남는다. 인생에서 각도를 1도만 틀어줘도 그 각도에 따라 선을 쭉 그어보면 시간이 지났을 때, 그 각도는 어마어마하다고.


수민이의 긴 인생에 점 하나 찍히는 그런 1년.

올해는 그 아이의 인생에 1도의 각도가 틀어진 한 해가 되었을까?


부디 몸 건강히, 마음 건강히
잘 자란 멋진 청년이 되어있기를.
그 각도가 어마어마하기를.
너의 성장이
어른들이 단언하는 모습과 분명 다르기를.
오늘도 너에게 강한 믿음을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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