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행복은 성적순일까
고입 원서를 쓰는 계절이 왔다.
우리 지역은 비평준화 지역이다. 평준화시키지 않고, 아이들을 성적순으로 경쟁을 통해 고등학교를 입학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아이들은 모두 각자의 내신 점수를 받았다. 중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의 모든 성적이 담긴 성적표를. 우리 지역은 내신 점수를 통해 대략적인 자신의 위치를 알 수 있다.
"여보세요? 어머님 안녕하세요? 민규 성적 때문에 궁금하신 게 있으시다고요?"
"네 선생님. 민규 정도면 전교에서 몇 등 정도인가요?"
"등수는 말씀드릴 수 없고, 중간에서 아래 정도에 있습니다."
"..."
내신 점수 통지표가 어머님의 손에 들어가고 난 후, 그날 퇴근 시간 이후에도 많은 연락이 왔었다. 아마도 예상보다 낮아서 당황하셨나 보다. 부모님들과의 상담에서 느낀 점이 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아이가 중간 이상, 아니 상위권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상위권이 아니면 공부를 '못'한다고 생각한다. 더 잔인한 것은 나의 아이가 공부를 '안'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머님, 민규가 공부를 안 했는데 어떻게 평균 점수가 나오나요? 안 했으면 30점 정도 됐겠지요. 안 한 건 아닙니다."
부모님들의 마음은 다 하나같이 같은 마음이었다. '나의 아이가 공부를 잘해야 편안한 삶을 살 것'이라는 확신. 어쩌면 '나의 아이가 공부를 못하면 불행한 삶을 살 것 같다'는 불안감. 여기에 덧붙여, 자신의 아이가 상위권이 아니면, '공부를 못 하는 아이'라고, 아이의 미래는 이제 이미 도태된 아이로 여겨지는 말도 안 되는 오만함이 곁들여진다.
어머님, 상위권은 상위권의 삶을 사나요?
당신에게 묻고 싶었다.
"당신은 중위권의 삶을 살아서 불행한가요?"
얘들아, 네 미래는 너희가 고민해야 해.
엄마가 너의 미래마저 '대신' 걱정해 줄 때, 그 온갖 불안감을 너희에게 내던지실 때 강력하게 차단해야 해.
학교는 성적으로 줄을 세우는 곳이야.
상중하로 나누고,
어쩌면 최상, 상, 중상, 중, 중하, 하, 최하로
줄을 서게 하기도 하지.
선생님이 학교 밖을 나오니 알겠더라.
누구도 성적대로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최상위여도
불안감에 우울증 약을 달고 사는 친구도 있고,
하위권이었어도
엄청난 회복탄력성으로
세상의 온갖 재미난 것들을 누리고
이루며 살아가는 친구들도 있더라고.
세상은 그리 성적 줄 세우기처럼 간단하지 않았고,
성적보다 중요한 건
예측불가한 우주의 풍파에
강력하게 자신을 지켜낼 무기였어.
작은 성취에도 감사하는 겸손함.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회복탄력성.
그리고 어디에서도 자신의 존엄함을
존중할 줄 아는 자존감.
이런 무기들은 학교에서 줄 세우기 어렵지.
그러니 다음을 대비해.
비록 네가 성적 리그에서는 중하위여도
너의 무기는 무엇인지 발견해야 해.
그리고 그것을 열심히 갈고닦아.
그게 행복의 열쇠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