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자가 말해드립니다.
그날이 기억난다.
나의 16살 겨울, 중학교 졸업식을 마치고 처음 소주를 마신 사건.
소라의 집에 남아있던 소라의 아버지께서 남겨놓은 소주를 소라의 방에서 몰래. 새우깡을 넓게 뜯어서 소주 한 모금 마시고 새우깡 먹고, 한 모금 마시고 새우깡 먹고 그 맛없는 알코올램프 냄새가 나는 알코올을 호로록 마셔보았다.
얼굴이 벌게져 집에 돌아갔을 때, 엄마에게 정말 잊을 수 없는 강렬한 기억을 선사했다. 내가 비행청소년이었냐고? 글쎄. 그 정의가 무엇인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당시 학교에서 전교 2등을 하던, 졸업식 때는 단상에 올라 표창장을 받던 학생이었다.
엄마는 나의 갑작스러운 음주 일탈로 내가 영원히 탈선의 길을 걷는다 생각하셨다고 한다. 갑자기 공부에 스트레스를 받아 공부를 영원히 놓아버릴 거라고. 사실 그 뒤로도 나는 몇 번의 음주 일탈을 감행했다.
엄마는 그 시절을 웃으면서 이야기하신다. 남편 앞에서 이야기할 때는 정말 그녀가 나의 편이 맞는 것인지 의심하게 된다. 10대에 음주 경험이 있다 해서 탈선의 길을 걸을 거라고 생각했던 엄마의 생각은 오산이었다. 30이 넘은 현재, 누구보다 절제된 삶을 살고 있다. (물론, 중독성이 강한 담배는 단 한 번도 입에 대본 적이 없다.) 꽤 모범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은 10대의 일탈을 아마 이해 못 할 것이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감히 법을 어기고 술을 마셔? 완전 제정신이 아니네."라고 말하겠지.
사춘기 아이들은 왜 술, 담배가 궁금할까?
경험자의 마음을 들려주겠다. 내 마음이 모든 10대의 마음을 대변할 수는 없지만, 평범한 사춘기를 보냈던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겐 그 사춘기라는 미친 시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첫째, 사춘기는 학교와 집, 학원만 오가는 지루한 일상에 강력한 도파민 분비를 찾아 헤매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무조건 호기심의 문제다. 왜 어른들은 저렇게 취하고 즐거워할까? 왜 취할 걸 알면서 마실까? TV 드라마에서 나오는 취한 성인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술을 마시면 취하네? 힘들어도 마시고 즐거워도 마시네? 게다가 우리 아빠도 마시네?' 일주일 한번 꼴로 술에 너끈하게 취해 들어오는 아빠를 보며, 정말 궁금했다. 그들은 왜 취하고 싶을까. 강력한 자극, 도파민의 원천이 저거구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아주 좋았다.
둘째, 사춘기는 뒷일을 생각하지 않는다. 이건 생물학적으로 다음 일을 계획하고 예측하고 행동을 조절하는 기능을 하는 전전두엽에 지진이 일어나는 시기이기에 아주 합당한 논리다. 술과 담배를 19세 미만은 구매조차 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시기엔 술과 담배에 중독되면 추후 나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15살부터 담배를 피우던 친구 몇을 알고 있다. '아니, 어떻게 그 어린 나이부터 담배를? 분명 불량 청소년에 인성도 쓰레기일 거야.'라고 생각한다면 그들의 담배 문 모습만 본 것이다. 매주 교회 봉사도 하고, 친구의 어려운 일에 한 달음에 달려와주는 친구들이다. 성인이 되고 나서 그들은 담배를 끊었다. 전두엽이 발달하고 나서야 '뒷일'을 생각할 줄 알았기 때문일까.
셋째, 술, 담배가 또래집단의 티켓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사춘기는 '나'라는 자아가 굉장히 불완전하다. 부모의 그늘에서 나와 자신의 것을 찾아가야 하는 시기다. 자신만의 자아를 찾아가야 하는데 부모로부터는 이제 떠나고 싶고 혼자서 항해하기엔 너무 외롭고 불안하다. 그래서 사춘기는 자꾸 또래집단 안에 소속되고 싶어 한다. 술과 담배로 맺어지는 우정이 있다고 하면 믿을 수 있을까.
<사춘기의 마음>
'나는 어떤 사람일까?' 자신을 잘 모른다.
'어? 수진이라는 친구는 예쁘고 친구도 많네. 나도 수진이처럼 되고 싶다.' 되고 싶은 새로운 자아들을 찾는 과정을 겪는다.
'수진이가 노는 저 그룹에 들어가고 싶은데?' 아직 반쪽짜리 자아는 또래집단이 필요하다.
그렇게 또래집단에 들어가 안정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수진이 묻는다.
"너도 담배 한 대 필래?"
담배는 피우면 안 되는 걸 알고 있다. 그런데 거절하면 이 안정된 소속감을 버려야 한다.
'에잇! 까짓것 한번 펴주자.' 한 번이 될 것 같았던 흡연은 다음이 되고, 또 다음이 된다. 나중에는 흡연이 아무렇지 않은 것이 되는 것이다.
사춘기야, 술도 담배도 하고 싶어?
술, 담배에 호기심이 일어나는 이유는 다양할 거야.
단지, 지겨운 일상에서 일탈이 필요해서?
엄마나 아빠에게 반항하는 마음에서?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무엇이 되었든 그 이유 안에
너 자신을 위한 이유는 단 하나도 없을 거야.
요즘같이 쉽게 술과 담배를 구할 수 있는 세상에선
어딜 가든 유혹이 널려있을 거야.
호르몬의 파티, 뇌 회로들의 전산 오류를 겪는
10대들에겐 그 유혹을 이기기 쉽지가 않지.
단 한순간의 일탈이 중독의 시작이 될 수도 있음을 모르기도 하고.
술도 담배도 온갖 금기된 유혹들을 이기기 힘들 땐, 기억해.
어떤 선택이 오직 '나'에게 좋은 것일까.
그 선택은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것을.
오롯이 '너'의 몫이라는 것을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