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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비나 May 15. 2024

화려하지 않은 데이지의 고백

데이지가 기억하는 시간

"엄마, 산책 갈래."

갑작스럽게 찾아온 여름의 온도에 반팔에 청바지를 가볍게 챙겨 입고 딸과 함께 산책을 나섰다. 휴일이면 소파에 누워 지겨울 정도로 게으름을 피워보고 싶지만, 5살 아이의 엄마에겐 허락되지 않는 사치다. 핑크색 원피스를 입고 보라색 구두를 신고 나서는 막내. 그녀에겐 산책에도 화려한 반짝이 '구두'가 필요하구나.


산책길을 거닐며, 어느새 따뜻해진 공기, 뜨거워진 햇살에 괜스레 기분이 노곤해졌다.

'또 왔구나.

비도 오지 않고 반팔과 긴팔을 고민하는 그 계절.'

계절은 같은데 아이는 한 뼘 자라 있고, 아이는 나를 엄마로서 또 한 뼘 자라게 해 줬다.


산책 길에 저 멀리 데이지꽃밭이 보인다.

"네모야, 저기 꽃 너무 예쁘다.

가서 사진 찍자. 뛰어가볼까?"

"싫어. 나는 걸어갈 거야."


데이지 꽃을 빨리 딸과 함께 사진으로 담고 싶은 엄마의 애타는 마음도 모르고, 아이는 세월아 네월아 걸어갔다.

"엄마, 나 여기서 찍을래."

"여기? 여긴 꽃도 없는데..."


찍고 나니 보였다.

"꽃봉오리와 초록 풀들."

'이제야 보이네... 맞아... 너희들이 꽃이 되기 전, 이런 시간을, 이런 바람과 빛을 견뎌냈지.'

네모 덕분에 보였던 꽃봉오리들

'꽃도 사람의 시선을 끌기 위해선, 꽃이 되어야 하나보다. 그 절정의 순간, 그 찰나의 '성공',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꽃이 되어 알록달록 자신의 색을 비로소 보여줘야 하는구나.'


이런저런 사색을 하던 중,

재잘재잘 떠들며 걸어가는 네모가 보였다.

내 눈에 더없이 완벽하고 사랑스러운 딸.

어느 하나 이룬 것 없고, 인정받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바라보면 행복한 나의 '꽃봉오리'.


사실 그런 게 아닐까.

꽃은 우리들의 시선 따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

알 수 없는 운명으로 땅에 뿌리를 내려 조용히, 묵묵히 꽃을 피워내기까지 살아낸 시간들을 꽃들은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 꽃들에겐 모든 순간이 중요하지 않았을까.

그 수많은 찰나의 순간에 우리는 비로소 꽃이 되고 나서야 시선을 주었을 뿐.



나 역시 내가 꽃이 되어 뭔가를 보여줄 수 있는 그 성공의 순간에 집착하고 있진 않았을까? 다른 이들은 누군가의 성공만을 바라보니까 말이다.


사실 중요한 건,

나 자신이 꽃이 되기까지 지나온 떡잎과 꽃봉오리의 수많은 시간들을 내가 기억해 주는 것이 아닐까. 책 한 권이 나오기 위해, 아이들이 잠든 밤 씻지 못한 채 글을 써 내려간 시간들, 글감이 없을 때 열심히 읽어간 책들, 구독자 100명이 되고 기뻐하던 순간들. 그 순간에 들인 나의 노력과 시간. 적어도 나는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데이지의 꽃말은 겸손한 아름다움

아름다움은 화려함이라는 단어와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데이지의 아름다움은 어쩐지 결이 다른 느낌이었는데,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묵묵히, 친숙하게, 타인의 별 다른 까탈스러운 손길 없이도 피어주는 꽃. 벚꽃명소처럼 수많은 인파들이 찾아주지 않아도 자신의 시간을 기억하며 피는 꽃.


그 꽃말은 분명, 겸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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