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장벽, 그 너머에는
한국어는 나의 모국어, 영어는 나의 외국어다.
두 개의 모국어를 갖고 있는 교포가 아닌, 외국인이기에 내 영어는 네이티브가 들었을 때 어딘가 어색하고 발음도 서툴 수밖에 없을 것이다.
"Your English is really good."
한국에서 온 지 한 달 되었다고 하면 세모의 학교 친구 엄마들이 내 영어를 칭찬한다. 영어 교사라서 그래도 말할 줄은 안다고 그들의 놀라움을 한번 진정시켜주곤 한다.
외국어를 한다는 것은 사실 아는 단어와 아는 문장을 그대로 내뱉는 것 그 이상이다. 발음이 문제냐고? 아니다. 바로 톤과 표정, 때와 장소, 말하는 상대까지 모두 고려해서 특정 상황에 맞는 문장을 알아들을 수 있는 발음과 자연스러운 톤으로 뱉어내야 하는 총체적으로 애를 써야 하는 과업이다.
나는 영어교육과를 전공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영어 언어학을 전공했다. 영어 언어학을 전공하면서 가장 흥미롭고 좋아했던 과목이 바로 "화용론" 수업이었다. 언어가 실제로 사용되는 맥락과 그에 따른 의미, 의도 등을 다루는 언어학의 한 분야이다. 한 마디로, 저 사람이 왜 저런 말을 하나? 왜 저 단어를 썼을까? 나는 이 상황에서 어떤 단어로 어떻게 내 의도를 전달해야 할까? 그런 것들을 연구하는 분야다.
만약 누군가 "It’s cold in here." 여기가 좀 춥네.라고 했을 때, 문자적 의미 (Literal meaning)는 단순히 방이 춥다는 사실을 전달하는 진술이지만, 화용적 의미 (Pragmatic meaning)는 단순히 추운 상태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간접적인 요청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난 추우니 창문을 닫아 줄래?" 또는 "난 추우니 히터를 켜 줄래?" 같은 의미를 암시하여 듣는 이로 하여금, "창문 닫아줄까?"가 나와야 대화가 자연스러운 것처럼 말이다.
이곳에 오니 이런 대화의 맥락을 빠르게 파악해야 하는 어려움과 모국어가 아닌 말로 적절한 상대에게 적절한 상황에 적절한 단어와 톤, 표정으로 말을 한다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다. 세모 친구의 엄마에게 무언가 부탁할 때에도 명령어보다는 "Can you ~"가 적절하고 "Can you ~?"보다 "I wonder if you could ~"가 더 정중해 보이는 것처럼, 매 순간 내가 '오해받지 않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말이라는 것이 그 사람을 다 보여주는 것은 아니구나. 부족한 언어 실력으로 인해 순식간에 나는 불친절한 사람, 똥 매너인 사람이 될 수 있으니 말이야. 나는 누구보다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인데 말이야.'
ADHD 아이인 세모는 또래와의 대화가 늘 어려웠다.
타인의 표정을 읽고 감정에 공감하며 타인의 상황에 대해 고려하며 말하는 기술, '화용 언어' 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이다.(그놈에 전두엽, 하는 일도 참 많다.)
ADHD 아이가 적절하지 않은 상황에서 적절하지 않은 표현으로 나를 당황시킬 때, 또는 다른 이들을 당황하게 만들 때, 나는 아이를 "버릇없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릇 갖다 놓고 양치하고 가방 메."라고 말했을 때,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는 아이에게 "답답하다"라고 생각했다. 시끄럽게 재잘재잘 떠들 때면 "눈치 없이 떠드는구나" 하며 불편해하기도 했다.
낯선 곳에서 외국어를 쓰며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며 느낀 점이 있다.
언어의 장벽, 그 너머에는 사람이 있다는 것.
아이의 부족한 말, 언어, 소통 그 너머에는 누구보다 잘 보이고 싶었던 작은 마음, 열심히 듣고 싶었던 마음, 늘 시끄럽게 재잘되는 말들 너머에는 나에 대한 사랑이 가득했다는 것을.
열심히, 잘 보이려 애썼던 나의 마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