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초등학생의 신기한 하루
아이가 캐나다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가장 달라진 점이 있다. 바로, 등교와 하교를 내가 직접 드라이브해줘야 한다는 사실. 차로 10분 거리. 8:30부터 3:30까지 이곳은 초등학교가 1학년부터 8학년까지고, 9학년부터 12학년까지는 고등학교(high school)다. 그래서 우리나라로 치면, 초1부터 중2까지 함께 학교를 다니는 것이다.
아침마다 차들이 줄지어 학교에 들어가 주차를 하면, 아이들은 학교 앞에 반 별로 줄을 선다. 8시 20분, 종이 울리면 우르르 들어가는 시스템. 학교는 그전까지 절대 문을 개방하지 않는다.(부모도 외부인이기 때문에 학교에 들어갈 수 없다.) 아이들끼리 어른의 지도 없이 교실에 있으면 안 되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이건 미국에서 실습했을 때 보던 풍경과 같다. 학교는 늘 안전이 최우선.
세모에게 우리가 캐나다에 가야 한다고 했을 때, 세모는 강력히 거부했었다. 영어도 두렵고,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도 싫다고. 그런데 내가 이 말을 하는 순간, 갑자기 캐나다에 가고 싶어진 세모.
"세모야, 캐나다에 가면 학원 안 다녀도 돼."
캐나다에 와보니 정말 학원이 없었다. 물론, 사교육은 여전히 있지만 대부분 수영, 스케이트, 축구, 야구, 하키 등 스포츠가 주류였고 학습을 위한 사교육은 정말 러닝센터 하나 정도 작게 있을 뿐. 우리나라처럼 학교 앞에 상가마다 과목별로 줄지어있는 학원은 없다. 덕분에 세모는 학교가 끝나면 신나게 놀이터에서 학교 친구들과 놀고 방과 후의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한다.
한국에서 ADHD가 있는 세모를 위해 1학년 때 학원을 모두 안 보낸 적이 있었다. 휴직을 하고 아이의 가방을 받아 들고 놀이터에 가서 친구들과 실컷 놀게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놀이터에 친구가 없다. 다들 학원차를 타고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지는 그 나날들을 잊을 수 없다.
그런 이유로, 세모도 하나 둘 학원을 갔어야 했다.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복직을 하고 나서는 안전을 위해, 학원을 두 개씩 매일 가야 했다. 부담이 적은 피아노, 미술, 태권도로 시작을 했었다. 세모는 학교가 끝나면 놀 시간이 없이 피아노 학원으로 걸어가 피아노를 치다가 끝나면 또 바로 차를 타고 태권도를 갔다. 그 차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아이에게 계속 확인 전화를 하고, 아이는 조금이라도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시간을 놓치면 혼자 걸어가야 했기에 매일매일이 시간 관리의 전쟁이었다.
ADHD로 인한 문제 행동들이 사라졌다. 아니, 문제를 일으킬 환경이 사라졌다.
일단, 세모는 한국에서 늘 하교한 후, 어른도 없이 스스로 자신의 스케줄을 소화해야 했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자신의 스케줄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익히기 어려운 ADHD 아이에게 어쩌면 가혹했다. 2시 15분까지 태권도 차를 타야 하는 아이는 휴대폰은 운동장에 두고, 문구점에서 하염없이 뽑기도 했다가 과자도 사 먹다가 그러다 친구랑 놀고 차를 놓치기도 했다. 나는 일을 하면서 태권도 관장님의 전화를 받아야 했고, 받지 않는 세모의 전화가 불이 나도록 계속 전화를 해야 했다. 내가 수업을 해야 할 때 전화가 울리면 어쩔 수 없이 받지 못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캐나다에 오니 하교를 모두 부모님이 담당함으로써, 아이는 그런 시간을 지켜야 하는 초조함과 불안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학원이 뭐였지 싶을 정도로 아이들은 끝나고 학교 운동장 놀이터에서 나무를 타고 놀고, 땅을 파고 놀거나 공놀이를 한다.
가장 행복한 건, 아이들 모두 휴대폰이 없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부모나 어른이 아이를 데려가니 어디 있는지 알 필요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디지털 기기를 일찍 사주는 것에 대해 부모 모두 경각심을 갖고 있으니 휴대폰을 사주는 부모가 오히려 이상한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나만 안 사주는 건가?' 싶게 중학생까지도 힘들게 아이를 설득해야 하지만, 여긴 '나만 사주는 건가?' 싶게 모두 휴대폰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럼 아이들은 어떻게 만나서 놀까?
부모끼리 이메일로 'play date'를 신청한다. 부모님들끼리 이메일로 스케줄을 맞추고, 아이를 그 집에 내려주고 다시 데리러 오는 문화다. 세모의 경우에는 옆집 앞집에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있어, 옛날 아날로그 감성으로 노크를 하고 "~있어요? 같이 놀아도 돼요?" 하면 바로 놀이를 할 수가 있다. 아이들이 모두 학원을 가지 않으니 항상 집에 있어서 놀고 싶으면 놀 수 있는 문화다.
학원을 안 가면 어떻게 공부를 하냐고?
세모의 경우, 한국에서 하던 집 공부들을 모두 가져왔다. 수학 연산 문제집, 국어 문제집, 영어 책 등. 그 학습 루틴은 그대로 하고 있다. 가장 놀라운 건, 아이의 뇌가 늘 '편안'해서인지 '집중도'가 확실히 달라졌다. 캐나다에 오고 나선 이 집 공부를 더욱 잘 받아들이고 해내고 있다.
무엇보다 학원을 안 가고 친구랑 노는 덕분에 아이는 이 놀이가 공부가 됐다. 친구와 공 놀이를 하면서 규칙을 지키는 법, 친구의 기분을 이해하는 법, 자신이 하고 싶은 놀이가 있어도 일단은 친구의 놀이에 장단을 먼저 맞추는 법을 익혀간다. 사회성이 늘 아쉬운 ADHD 아이에게는 이런 기회들이 모두 공부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캐나다에 오니 내가 알던 정답이 정답이 아니라는 듯,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ADHD 아이뿐만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한국에 살면서, 무엇을 배워가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는 아이들을 위해 어떤 사회를 만들어주고 있을까. 이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우리나라 아이들은 늘 시간에 쫓기는 법, 도태되면 실패하는 것, 이기는 것만이 성공, 그리고 그 성공이 행복을 보장해 준다는 것을 배워간다는 것을. 그리고 난 이제 낯선 곳에 와서야 그것이 정답이 아니란 것을 알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