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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비나 Sep 19. 2024

캐나다의 ADHD 엄마들은 어떨까

캐나다 보름달 아래 모인 캐나다의 ADHD 엄마들

캐나다에 오기 전에는 상상도 못 할 일들을 마주하고 있다.

옆집 찰리의 ADHD를 알게 된 일부터 찰리의 아이의 ADHD 그리고 세모의 ADHD를 서로 오픈하고 둘도 없는 단짝 동네 친구가 생긴 일. 둘째의 미술 수업에 갔다 우연히 만난 ADHD 아이를 키우는 성인 ADHD 엄마까지.


'뭐지? 나에게 ADHD인들을
끌어당기는 자석이 있는 걸까?'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ADHD 코치님을 알게 됐다. 항상 다정한 얼굴로 ADHD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을 위해 용기를 주는 말들을 올려주시는 분. 라라에게 용기 내 DM을 보냈다. 캐나다의 ADHD 엄마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학교는 어떤 도움을 주는지 너무 궁금한 것들이 많으니 나를 좀 만나줄 수 있겠냐고.


"우리가 보름달이 뜨는 날, 엄마들이 같이 모일 건데 너도 올래?"


장소를 보니 내가 있는 곳과 너무 가까워서 바로 가겠다고 했다. 5번 타워 앞으로 오라고 해서 대체 이 해변가에서 5번 타워가 어디인 것이가 한참을 바닷가를 따라 걸어갔다. 한참을 걷는데 바닷바람이 내 피부를 스치는 순간, 웃음이 피식 나왔다.


'내 인생에 이 캐나다에 와서 지내는 것도 놀랄 일인데, ADHD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을 만난다고 해변의 모래를 푹푹 밟으면서 걷고 있다니.' 세모가 가져온 인생의 변화들이 이제는 예측할 수 없어서 참 재밌다고 생각이 들었다.



"Hi! Is this ADHD mom's circle?"


둥그렇게 둘러앉아 촛불을 하나씩 켜고 앉은 우리들. 모두의 얼굴을 하나하나 둘러보았다. 캐나다에 온 지 한 달밖에 안 된 한국인 엄마. 세모가 아니었다면 절대 만나지 못했을 이방인들. 그들의 이름도 직업도 모르고 그곳에 앉아있었지만 서로 나눈 조용한 미소에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져 왔다.


'당신도 참 수고가 많았겠어요. 아이의 진단과 치료, 그리고 일상의 도전들을 견디며 그래도 잘 살아보고 싶어서 여기에 모였군요.'


하얀색 조약돌을 돌려가며, 자기소개를 했다. 나처럼 교사면서 ADHD 아이를 키우는 엄마부터 모국의 전쟁을 피해 이민온 이민 자면서 ADHD 아이를 키우는 엄마, 늦게 진단받은 대학생 딸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엄마까지. 그리고 저 멀리 한국이란 나라에서 건너온 또 다른 ADHD 엄마인 나.


캐나다에 있으면서 아이에 대한 혐오가 없는 나라, 모든 아이가 존중받는 곳, 다양성이 수용받는 나라기 때문에 이곳의 ADHD 엄마들은 편안한 삶을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경험해보지 못한 삶은 역시 함부로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 역시 자신만의 치열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조건적인 사랑을 받고 자란 한 엄마는 자신의 그 부정적인 스토리를 모두 끊어내기로 다짐했다고 격렬하게 우리에게 선언했다. 자신의 과거로 인해 ADHD 아이를 키우는 것이 더 우울했다고 말하는 그녀. 한국 사회에서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니는 아이를 키운다는 게 얼마나 나를 우울의 늪으로 빠지게 했었는지, 그 시기가 떠올랐다.


그리고 한 엄마는 이런 공동체 덕분에 살아간다고 말했다. 너무 외로웠다고. 타인의 시선에 너무 힘들었다고. 신경전형인 아이(neurotypical kids)를 키우는 부모는 절대 이해하지 못하는 신경다양성 아이(neurodiverse kids)를 키우는 엄마는 언제나 외롭고 고립되어 있다고. 아이의 예측하지 못한 ADHD 증상이 만들어내는 행동과 말들로 인해, 아이와 세트로 따가운 시선을 견뎌내 온 나의 모습이 겹쳐져 보였다.


마지막으로, 한 엄마는 학교에서 여러 번 전화를 받고, 학교를 여러 번 옮겨야 했다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갑자기 웃기 시작하는 그녀. "지금은 아이가 학교에서 잘 지내요. 그리고 우리 아이가 이제 하키 레슨을 가게 되었어요. 놀라운 발전이에요!" 그녀의 울음에 나도 함께 울다 그녀의 웃음에 나도 함께 웃어버렸다.


누군가에겐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면 쭉 그 학교를 다니고 잘 졸업하는 일이, 스포츠 학원에 다니는 일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ADHD 아이를 키우는 우리들에겐 결코 당연할 수 없다.



이야기가 끝나고 보름달을 바라보며,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잊고 싶었던 부정적인 마음들을 적어 촛불에 태워버렸다. 감사한 일들을 적어 서로의 감사를 들어주었다. 그녀들이 달빛에 춤을 추겠다고 하는 순간, 나는 먼저 일어나야 했다. 처음 만난 옆 자리의 그녀가 다가왔다.


"Welcome to Canada."

나를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또 다른 엄마가 와서 안아주고, 또 다음 엄마가 와서 안아주었다. 낯선 이들에게서 받는 위로가 이렇게 따뜻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 세모와 보름달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다짐한 게 떠올랐다.
'세모 넌 잘 자랄 거야.
보름달에 기도했으니까. '

캐나다의 보름달을 삼키듯
숨을 들이쉬어봤다.
'보름달아, 잘하고 있지?
세모를 잘 부탁해.
나를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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