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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비나 Oct 04. 2024

캐나다에서 장애인들과 이웃이 되어가요

바라보는 법을 배워가는 중입니다

"Hello!"

캐나다에 도착한 지 2주가 되었던 때였다. 옆집엔 기가 막힌 우연으로 ADHD 아이를 키우는 ADHD인 아빠를 알게 되어 친구가 되었을 때쯤. 우리는 또 다른 편의 옆집 이웃이 누군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집 앞에서 놀던 우리에게 다가오는 옆집의 할아버지였다. 우리 가족을 소개하기 위해, 아이들을 불렀다. 


"Hi, I'm Sabina. Nice to meet you. What's your name?"

빅 스마일을 날리며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무엇인가 꺼내기 시작했다. 휴대폰이었다. 휴대폰을 나에게 말없이 보여주는 옆집 이웃. 그곳에는 "I am Harry. Nice to meet you."라고 적혀있었다. 해리 할아버지는 청각장애인이다. 한국에서 나는 청각장애인과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다. 만날 기회가 왜 없었을까? 먼 이국 땅에 와보니 왼쪽 집엔 ADHD인 가족이 살고 오른쪽엔 청각장애인 해리 할아버지가 살고 있다. 


"Hi, Harry."

그는 내 입모양을 읽을 줄 알았다. 가끔 수화로도 표현해 주었다. 그리고 그는 또 한 번 휴대전화를 보여주었다.

"Your kids' names?"

나의 아이들의 이름을 묻는 해리. 세모와 네모의 이름을 적어서 보여주었다. 그리고 또 휴대폰을 보여주었다. 

"Welcome!"

작은 휴대폰에 담긴 크고 깊은 환영의 인사였다. 



주말에 우리는 지역 체육 시설에 가서 온 가족이 운동을 한다. 어떨 때는 수영을 하거나 세모가 축구를 하는 날엔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기도 한다. 그곳에서 조용히 농구장을 바라보는 다운증후군 학생을 보았다. 농구하는 모습을 보던 아이는 헬스장에 조용히 들어와 열심히 운동을 한다. 이곳에 와 운동하는 것이 굉장히 익숙해 보였다.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우린 다운증후군 친구들 한국에서 정말 거리에서 잘 못 본 것 같아. 그렇지 않아?" 다음 날, 다른 다운증후군 친구가 수영장에서 세모 옆에서 수영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한국에서는 제자로도, 이웃으로도 만나본 적 없었던 다운증후군 친구들을 캐나다에 와서 자주 보게 되었다. 


오늘은 아침엔 기어코 수영을 꼭 해보겠다는 의지로 아침 자유수영에 참여했다. 한 캐나다 여자분이 수영장 Lane에 수영을 하고 있었다. 옆에 레인을 쓰고 싶어, 그 여자분께 양해를 구했다. "Excuse me. Can I use this lane?" "Okay." 그런데 그녀의 시선이 어딘가 어색했다. 나의 눈을 보지 않는 그녀의 눈. 그녀는 시각장애인이었다. 시각장애인을 수영장에서 만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여보, 시각장애인도 수영장에서 수영할 수 있구나. 우리나라에서는 왜 보기 어려울까?" 나의 편견에 살짝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둘째의 미술 수업을 데려다주며 한 엄마와 스몰톡을 나누었다. 함께 아이들의 첫 수업을 지켜보았다. 엄마의 아이가 갑자기 교실을 빙글빙글 돌며 착석이 잘 되지 않는 상황이 있었다. "우리 아이는 자폐스펙트럼 아이여서 수업 시간에 좀 돌아다니고 그럴 수 있어. 아마 좀 기다려야 할 거야." 

첫 만남에 나는 둘째가 함께 수업 듣는 친구가 자폐스펙트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엄마의 설명에 아이의 행동이 이해되면서 조금 당황했던 마음이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한국에도 물론 장애인들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캐나다에서는 내가 오고 가는 모든 일상 속에서 그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다른 점이다. 나는 요즘 이곳 캐나다에서 장애인들과 '이웃'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무엇보다 가장 놀라운 점은, 세모와 네모가 다운증후군 형, 오빠를 보아도 청각장애인 해리 할아버지와 엄지를 날리며 How are you? Good! 짧은 안부를 나눌 때에도, 자폐스펙트럼 친구가 교실을 빙빙 돌고 있을 때에도 특별하게 시선을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끔은 누군가의 시선이 무척이나 따가울 때가 있다. ADHD 아이를 키우며 아이의 과잉행동이 조절이 되지 않을 때, 그 불편함에 던진 누군가의 무심한 시선에 하루종일 마음이 아팠던 적이 있었다. 때론 무관심이 배려일 때가 있으니. 어느새 나도 모르게 던진 시선들이 떠올랐다. 


세모와 네모처럼 나도 어릴 때부터 그들과 자연스럽게 이웃이 된다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오늘도 해리가 차를 빼고 나가며 창문을 내린다. 조용히 빅 스마일과 엄지 척을 날리는 그의 안부가 무척 반갑다. 

"Hi. How are you?"

조용히 엄지를 날리며 빅 스마일을 보낸다. 

그렇게 난 이웃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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