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야?"로 시작되는 통화
"야, 어디야?"
한국 귀국 후 휴대폰이 다시 생긴 세모는 친구에게 전화가 오곤 한다.
휴대폰 넘어 들려오는 명랑한 초딩 아들내미의 목소리.
"어, 나 집."
"나올래?"
"알았어."
아들내미들의 무뚝뚝한 대화가 세 글자씩 말하기로 한 것처럼 뚝 딱 뚝 딱 주고받더니 휴대폰 가방을 들고 만나러 나가는 세모.
ADHD가 있는 세모의 문자, 통화 패턴을 살펴보면 과잉 언어와 충동성이 드러날 때가 있다. 스케줄이 있는데도 갑자기 그 친구가 생각나서 놀고 싶어지면 '지금 당장' 전화를 해봐야 한다. 심심할 때면 바로 문자를 보내야 한다.
친구가 바빠 전화를 받지 않으면 마음은 더 급해지는 아이. 세 번, 네 번을 전화한다. 결국 콜백(Call back)이 오지 않으면 아이는 '거절'받았다는 상실감을 느낀다. 사실 이는 ADHD 아이들이 흔히 겪는 '거절 민감성(Rejection Sensitivity)'과 관련이 있다. 뇌의 감정 조절 중추가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다 보니, 상대의 단순한 '부재'를 나에 대한 '거절'이나 '비난'으로 확대 해석하는 것이라고.
문자도 다르지 않다. 의미 없는 이모티콘을 도배하듯 보내는 아이, 거기에 또 이모티콘 도배로 답을 하는 친구. 문자를 주고받는 초등 아이들을 보면 메시지는 없고 오직 내가 주고받았다는 행위만 남아있는 것 같다.
요즘 아이들의 스마트폰 소통을 보며, 꼰대처럼 '라떼는~' 시절을 떠올린다.
"누가 자장면 집에 전화할래?"
"사비나 네가 해봐."
"아, 나 그런 것 못 해..."
자장면 하나 주문하는 것마저 떨렸던 어린 마음이 기억난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 집에 전화하면 누가 받을지 몰라 덜덜 떨며 친구집에 전화하던 시절. 부모님이 받지 말길, 제발 친구가 받길 통화음이 울리는 내내 기도했던 나. (저만 그랬나요?ㅎㅎ)
"여보세요?"
"여보세요. 누구신가요?"
"안녕하세요? 저는 소라 친구 사비나인데요. 혹시 소라와 통화할 수 있을까요?"
교과서에서도 배웠던 통화예절을 몇 번씩이나 연습한 끝에 친구 집 번호를 눌러야 했다.
게다가 아침 일찍, 또는 저녁 시간에는 전화해서는 안 된다는 매너가 있었다.
새벽에도 폰을 붙잡고 인스타 DM으로 대화를 하는 10대 아이들을 보면, 이렇게 계속 연결되어 있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생각해보곤 한다. 혼자여본 적이 없는 아이들. 늘 ON으로 연결되어 있는 일상을 사는 아이들은 갑자기 혼자가 되었을 때 무척이나 외롭진 않을까?
소통의 속도는 빨라졌지만, 기다림의 근육은 약해진 시대.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언제나 연결될 수 있는 '최신형 폰'이 아니라, 연결되지 않은 시간 동안에도 스스로 마음을 돌볼 수 있는 '정서적 자생력'일지도 모르겠다.
ADHD 아이를 키우며 휴대전화를 줄 때 부모는 특별히 더 전화 예절을 가르쳐야 한다.
과잉 언어와 충동성으로 결국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기, 궁금해도 다시 전화하지 않기
- 친구가 전화를 받지 않거나 문자에 답장을 하지 않는 건, '거절'이 아니라 통화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 문자라는 것은 모두 기록이 된다는 것을 알고, 필요한 말만 보내기
- 자신의 사진이나 동영상은 절대 보내지 않기
- 상대방이 답장을 보낼 때까지 기다려 주기. 의미 없는 이모티콘 도배는 상대방에게 즐거움이 아닌 '피로감'을 줄 수 있음을 알려주기.
- 상대방이 전화를 받으면, 자기소개부터 하고 통화 가능한 상황인지 물어보기!
- 통화가 끝났다면 상대방이 전화를 끊을 준비가 되었는지 충분히 기다렸다가 말이 없으면 끊기
이런 예절을 가르쳐주지 않고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위치 추적 용도'로 아이에게 전화기를 준다면 통화, 문자로 인해 관계 속에서 실수할 수도 있다. 충동성이 강한 아이라면 더욱.
요즘 아이들에게 휴대전화는 단순한 연락 수단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 도구 같다. 그 연결 고리 속에서 난 아이가 미움받지 않길 바란다. 쉽게 연결된 만큼 쉽게 '손절'이란 단어로 끊어지기 쉬운 관계들 속에서 아이가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근데 오늘도 이모티콘이 가득한 세모의 문자를 받았다.
"숙제 안 해도 돼?"
"해야지."
"와우 대박 @@#$%^&%#$$!!"
사실 좀 귀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