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 행동 말고 과잉 언어에 대한 소고
세모는 방학과 주말에 휴약을 하고 있다. 휴약을 하고 나면, 아이의 ADHD 증상을 좀 더 또렷이 마주하게 된다. 정말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초5 정도가 되니 과잉행동은 많이 줄었다. 그런데 새 학기를 앞둔 요즘, 살짝 걱정이 되기 시작한 부분이 있다. 바로 '과잉 언어'다.
우리 집의 하루는 알람 소리가 아니라 아이의 목소리로 시작된다. 눈을 뜨자마자 시작된 이야기는 아침 식사 메뉴를 지나, 마인크래프트 이야기를 지나, 다시 어떤 학원을 가야 하나 쉼 없이 이어진다. 때로는 그 문장들이 너무 빠르고 방대해서, 마치 쏟아지는 소나기 아래 서 있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더울 땐 그렇게 시원하게 느껴지는 소나기도 옷이 흠뻑 젖으면 '언제 멈추나' 기다리게 되는 것처럼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뇌 속의 생각들이 정지 신호를 받지 못한 채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현상.
하지만 부모의 눈에 비친 그 끝없는 말들은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아이에게 침묵은 고요함이 아니라 ‘불안’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뇌 회로가 남들보다 빠르게 회전하는 아이에게 아무런 소리가 없는 진공 상태는 마치 안갯속을 혼자 걷는 것과 같은 막막함이 아닐까?
ADHD인인 나 역시 새로운 관계들을 만날 때 유독 더 말이 많아진다. 아이는 그 막막함을 견디지 못해 자신의 목소리로 주변을 채우고 있는 것 같았다. “나 여기 있어요”, “나를 좀 봐주세요”, “나 지금 이만큼 생각하고 있어요”라고 외치는 아이만의 서툰 방식이었던 셈이다.
물론 부모도 사람인지라, 쉼표 없는 대화에 지칠 때가 있다. 퇴근 후 지친 몸을 뉘었을 때 귓가에 쏟아지는 아이의 질문 공세는 가끔 가시처럼 따갑게 느껴지기도 한다. 귀가 따갑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게다가 ADHD인인 나는 검사 결과에서도 예민함이 평균보다 굉장히 높았다. “잠깐만 조용히 해줄래?”라는 말이 날카롭게 나간 날도 있다. 그럴 때면 나 역시 침묵을 견디지 못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괜히 미안해진다.
그 많은 말 중에 아이가 정말 하고 싶었던 핵심은 무엇이었을까.
부모로서 가장 가슴 아픈 지점은 아이의 이 과잉언어라는 ADHD 아이의 특징이 ‘사회성’이라는 벽에 부딪힐 때다. 상대의 표정을 살피기도 전에, 대화의 순서를 기다리기도 전에 튀어나가는 말들은 타인에게 종종 ‘자기중심적’이라거나 ‘무례하다’는 오해를 사곤 한다.
친구의 말을 끊고 자기 이야기를 쏟아내는 아이를 등 뒤에서 지켜볼 때, 모르는 이에게 말을 많이 하다 '말실수'를 할까 두근거리기도 했었다. 아이는 누구보다 친구를 좋아하고 잘 지내고 싶어 하지만, 그 간절함이 역설적으로 타인을 밀어내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니까.
아이의 말을 줄이게 하려고 하기보다, 아이 스스로 속도를 인식하게 돕는 것에 더 집중하고 있다.
“지금 네 생각이 너무 빨라서 엄마가 듣고 이해하기가 어렵네. 그래서 꼭 하나 중요한 내용이 뭔지 골라서 이야기해 줄래?"
“저분은 지금 서빙하시고 바쁘시니까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정도로만 표현해도 충분해. 상대방이 들을 준비가 되었는지 늘 살펴야 해.”
“지금 제일 먼저 말하고 싶은 건 뭐야?”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만 고른다면?”
“이 이야기는 지금 말해도 괜찮을까, 아니면 조금 있다가 해도 좋을까?"
말을 멈추게 하기보다 말의 ‘차례’와 ‘속도’를 알려주는 연습에 가깝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의 과잉 언어를
귀찮아하고 비난하기보다 침묵은 마치 타인과의 연결이 끊어지는 듯한 불안감이라고 이해해 보기로 했다.
아이는 오늘도 곁에서 쉴 새 없이 이야기한다. 그 소리는 여전히 시끄럽지만(?ㅎㅎ) 이제는 조금 다르게 들린다. 소음이 아니라, 나와 다른 이들과 연결되고 싶어 하는 아이의 소란스러운 열정이려니 생각해보기로 했다.
오늘도 그 소란스러운 진심을 가능한 한 오래, 가능한 한 차분히 들어줄 수 있는 인내심을 +1 레벨업 했다.
방학 모두 화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