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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비나 Mar 25. 2023

명품백보다 팝콘통이 좋았어요

너만이 줄 수 있는 행복

  둘째가 태어난 덕분에 육아 휴직을 하고 세모의 유치원 시절을 오붓하게 보낼 수 있었다. 교사라는 직업은 여름과 겨울 아주 더운 때, 아주 추울 때만 쉴 수 있어서 휴직 중 비수기 여행은 항상 꿈꾸던 일이었다. 그중에서도 세모와 함께 기다리지 않고 편하게 놀이공원에서 타고픈 놀이기구도 맘껏 타는 평일 놀이공원이 제일가고 싶었다.


  둘째를 친정 엄마께 부탁드리고 세모와 아침 일찍 8:30부터 출발하기로 했다. 우리의 목적지는 에버랜드. 설레는 마음으로 전 날 차에 기름도 가득 채우고, 미리 발렛 주차도 예약했다. 비몽사몽 한 세모를 깨워 친정 엄마가 차려주는 아침을 먹고 함께 출바알!


  자유부인으로 친구들을 만나러 갈 때의 설렘보다 더 컸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랑 데이트라니. 오래 걸어야 하니 가장 편한 운동화를 신고, 캡 모자를 푹 눌러쓰고, 청바지에 티셔츠, 그리고 쌀쌀할 때 입을 후드점퍼 한 벌을 챙겨 가볍게 나갔다. 아이를 낳기 전엔 풀메이크업에 옷장에 이것저것 입어보며 뭐가 예쁠까 고르느라 설렜었지. 신발도 편한 운동화보다 예쁜 옷에 어울리는 신발로.


  아이와 자유이용권을 끊고 들어가는데 에버랜드에서 나오는 아기자기한 노래와 알록달록한 포토존들 덕분에 내 마음은 한번 더 둥둥 구름같이 몽글몽글했다. 포토존에서 세모와의 사진을 찰칵 찍고 판다를 보러 가는 길, 판다도 보기 전에 팝콘이 판.. 다..


  세모는 팝콘을 캐릭터 팝콘통에 들어있는 걸로 사달라고 했고, ’ 그래 이것쯤이야!‘하며 흔쾌히 팝콘통 팝콘을 사줬다. 그리고 판다를 보고 여러 동물들을 보러 가는데 뭔가 피곤하다.


팝콘통을 내가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내가 메고 있었던 것일까...


물티슈, 세모의 모자, 세모의 외투, 세모의 물병을 넣은 백팩과 그리고 휴대폰 목걸이와 팝콘통을 메고 에버랜드의 곳곳을 누볐다.


‘와, 쒸. 무겁다.’


그런데 벚꽃이 날리는 에버랜드에서 놀이기구를 타면서 나를 보고 씩 함박웃음을 날려주는 세모를 보면 갑자기 발걸음이 가뿐해졌다. 거추장스럽고 딱딱한 팝콘통도 너무 자랑스러웠다. 나의 즐거움도 아니고 아이가 즐거운 것뿐인데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고?


아이가 없었다면, 나는 놀이공원에 아이의 손을 잡고 오는 기분을 알 수 없었겠지. 물론 팝콘통 따위는 메지도 않았을 것이고,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한 즐거움에 감동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날은 메이크업을 하지 않아도 내가 엄마라서 너무 예쁘고  자랑스럽게 느껴졌고, 명품백을 메지 않아도, 팝콘통을 메고 가도 누군가의 ‘엄마’라서 너무 행복했다. 덜컹거리는 팝콘통을 메고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닌 세모가 이끄는 곳으로 따라다니는 그 하루가 주는 행복을 아이를 낳아서 알게 됐다.


그 어느 때보다도 당당한 걸음이었고,

행복한 소풍이었다.


아이가 없었다면 누리지 못했을

동심이었다.


  



사진 출처- https://theqoo.net/square/46434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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