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브리나 Jul 12. 2016

지금, 잊고 싶은 과거가 있습니까?

미카미 엔, <니시우라 사진관의 비밀>


한 해에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쏟아지는 일본 작가들의 작품만해도 어마어마하고,

심지어 나오는 소설들의 느낌도 다 비슷비슷한 적이 많아서 어느 순간부터 일본 소설을, 

굳이 신간이 나왔다고해서 찾아 읽진 않게 되었다.

내가 그렇게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을 때에도 꾸준히 책은 나오고, 꾸준히 베스트에도 올랐지만

한번 그렇게 살짝 돌아선 마음은 쉽게 다시 되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던 내게 이번 책은 정말 우연히 눈에 띄었다.

사실 표지만 봐서는 절대 선택할만한 취향의 책이 아니었다.

그런데 뭔가 <비블리아 고서당의 사건 수첩>과 비슷한 뉘앙스를 주길래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같은 작가의 책이었다.

이러면 이야기가 조금은 달라지지.

<비블리아 고서당의 사건 수첩>은 정말 재밌게 읽었던 책이다.

그 작가가 쓴 신간이라면 보통 이상의 재미는 하겠다싶었다.





총 4건의 사진에 대한 이야기가 단편처럼 구성이 되어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이야기다.

백년 가까이 되는 시간동안 니시우라 사진관을 운영해 온 마유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마유는 그 사진관의 유품들을 정리하러 오게 된다.

여기서 신기한 사진 네 장을 발견하게 되며 이야기는 시작되는데, 분명 시대가 다른데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남자의 사진 네 장이다.

마치 예전에 <별에서 온 그대>에서 나온 김수현의 사진을 보는 이야기같아서 시간을 이동하는 뭐 그런 얘긴가 했지만, 그런 판타지적인 요소가 있는 이야기는 아니고 충분히 현실적인 이야기였다.

그 비밀을 밝혀내는 게 첫번째 이야기.


두번째는 마유가 그렇게 좋아하던 사진을 그만두게 된 사연에 대해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두번째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음이 좀 아팠다.

순간의 교만함과 실수가 돌이키기 힘든 아픔을 만들어 내는 것은,

비단 이 이야기에서 뿐이겠는가. 

이 부분을 읽으면서 지금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 많이 들었다.

나는 그들에게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나도 모르게 내 욕심으로 그들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을까.


세번째는 주변인물 겐지에 대한 이야기다.

이 역시 사진관과 연결되어 있었는데, 미스테리한 수수께끼라기 보다는

그냥 중간에 감동을 위해 넣은 부분같았다.

그야말로 나미야 잡화점 느낌.

(개인적으로 나미야 잡화점은 정말 최고로 재밌게 읽었지만, 그 이후에 비슷비슷하게 나온 소설들은 감동도 재미도 없이 너무 밋밋했다.)


네번째가 어떻게 보면 가장 쇼킹한 이야기다.

반전이 있고, 끔찍하기도 했다.

부모, 특히 엄마에 대한 왜곡된 사랑이 만들어 낸 무서운 결과라고 할까.

세상에 실제로 이런 일은 있지 않겠지만, 

여태 따뜻하게 풀려온 수수께끼들이었기에 마지막은 좀 충격이었다.





가치가 있든 없든 그 시절 자신의 모습은 끔찍하게 싫었다.
하지만 계속 푸념을 늘어놓을 수도 없었다.
자상한 사람 앞에서 계속해서 자기부정을 하면 상대는 한없이 위로해주겠지만,
그건 엎드려 절 받는 격이었다.
또 만날지도 모른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탁한 발소리를 남기는 인간들은 고양이가 사는 그 낡은 건물을 찾는 일이 많았다. 
흡사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 이어져 있는 듯. 달리 갈 곳이 없다는 듯. 





사람들에겐 누구나 잊고 싶은 과거의 모습이 있다.

특히 사진으로 남겨져서 쉽게 지울 수도 없는 과거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예전에 친정집에 갔다가 중학교 즈음해서 찍은 사진을 발견한 적이 있다.

평소에는 굳이 떠올리려고 해도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 시절인데,

그 사진들을 보니 거짓말처럼 생생하게 그 때의 사소한 기억까지 생각이 났다.

사진은 딱 한 장이었지만, 그 당시 지우고 싶은 수많은 기억이 머리 속에 밀려와서 조금은 괴로웠다.


마유에게도, 겐지에게도 그 사진은 지우고 싶은 과거의 아픈 기억이었다.

덮어두고 살고는 있지만,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기억.

덮어두고 살면 평생을 덮어둘 수 있는 과거도 많지만, 어떤 과거는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과거가 있다.

그들에게 그 과거는 그러했다.

잊고 싶었지만 그 사진들을 통해 그들은 다시 그 과거를 마주하게 되었고,

결국은 그 사진들 덕분에 그 과거를 정리할 수 있었다.


내가 가진 수많은 이 기억들 속에서, 나에게도 그렇게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는 과거가 있겠지.

뭘까. 그리고 어떻게 풀어봐야할까.

가볍게 하루만에 술술, 그것도 재밌게 읽은 책이었는데

막상 다 읽고나니 그런 생각이 맴돌아서 쉽게 덮어버리기가 어려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