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인턴을 꿈꾸고 있는 모든 분들께-(1)

코로나 기간 때 LA 인턴을 다녀왔습니다. 제 경험담을 공유합니다.

by 김한샘

우선 어떤 연유로 해서든 'LA 인턴'이라는 주제로 이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이들께 고마움을 전하는 바입니다. 인생에서 아주 중요하고도 큰 여러 가지 의사결정 중 LA 인턴이라는 것이 포함되어, 그것에 대한 기대감 반 혹은 약간의 두려움 반으로 이 글을 읽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저 역시 똑같은 고민과 망설임, 그리고 희망으로 정보를 찾아 인터넷을 헤맸기에 쉬이 그 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트레이니(Trainee) 비자로 2019년 9월부터 시작하여 중간에 1회 연장(총 6개월)을 했고, 2021년 3월에 귀국했습니다. 1년 반을 꽉 채워서 다녀왔죠.


거두절미하고 결론부터 알려드리자면,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으로써의 LA 인턴은 성공적이었습니다. LA에서 IT 계열에 종사하고 있던 지금의 남편을 만나,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와 영주권을 취득 후 잘 살고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이러한 경우는 굉장히 흔하지 않은 사례라는 것 역시 말하고 싶습니다. LA에서의 1년 반은, 물론 아름답고 즐거운 기억들도 많았지만 그만큼 괴로웠고 고통스러웠던 순간들도 있었으니까요. 이 글이 어떤 식으로든 여러분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 J-1 비자를 알선해 주는 회사 및 스폰서가 든든하고 내실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약 5년 전만 해도 J-1 비자 발급 및 미국 회사와의 연결을 담당해 주는 회사가 꽤 있었습니다. 요즘 사정은 잘 모르겠군요. 한국에서 여러분의 J-1 비자 업무를 담당해 주고, 인터뷰 등 사소한 준비를 도와주는 이러한 회사들은 대부분 미국 내 "스폰서" 회사와 협력하여 일합니다. 이 두 회사 모든 곳이 어느 정도 오랜 기간 동안 이 J-1 비자 업무를 해와서 어떠한 돌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대처할 능력이 있고, 현지 사정에 밝아야 하고, 무엇보다도 막상 미국에 떨어지게 된다면 그 이후로 혈혈단신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여러분의 사정을 가장 최우선으로 이해해 주려는 회사여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제 경우에는 그런 곳들이 아니었습니다. 한국 회사 및 미국 현지 스폰서 회사 둘 다 말입니다. 저는 혼자서 LA 인턴을 떠난 것이 아니라, 열 명이 조금 넘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미국으로 입국했습니다. 다들 약 5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기억하시죠? LA 입국 4개월 남짓 지났을 때 전 세계에 창궐했던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우리 모두는 다음과 같은 충격적인 통보를 들어야 했습니다. 그 통보는 물론, 회사 해고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가라는 것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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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고용된 회사로부터 해고되었다. 한국으로 당장 돌아가라. 지금부터 이 기간 이후로 미국에 남아있는 것은 전적으로 당신의 의지이며, 그 이상 미국에서 머무르는 기간 동안 어떠한 일이 발생하더라도 우리는 책임지지 않겠다.


실제로 함께 입국했던 사람들 중 대부분은 인턴 계약을 종료한 후,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불행 중 다행인지 저를 포함한 소수의 사람들은 계속 머무를 수 있었지만 말입니다. 열두어 명 중 네 명 정도가 남아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만약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해, 회사에 경영난이 생긴다면 회사에서는 J-1 비자 소지자와 같은 미국 내 입지가 애매한 사람부터 가장 먼저 해고합니다.


대학생 때 미국의 어느 시골로 교환학생을 다녀온 터라, 미국에서 신분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벼슬이자 권력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명심하세요, 미국에서 자신의 신분이 확실하지 않다는 것은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할 겁니다. 이것은 비단 J-1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학생비자인 F-1은 물론이고 정식 취업비자인 H-1도 동일합니다.


당시 수많은 인턴 분들이 그러하듯, LA의 한 가정집의 방을 하나 빌려 하숙생과 비슷한 조건에서 지냈습니다. 그 집에 함께 머무르는 다른 인턴 친구들이 2명 있었습니다. 그 친구들에게 상술한 소식들을 공유했더니, 자신들이 다니는 회사 및 스폰서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위험한 상황에 처한 자신들의 안부를 걱정해 주었다고 말이죠. 회사와 스폰서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실감하게 되는 경험이었습니다. 비용이 적게 들거나, 작은 규모의 회사와 인턴 계약을 진행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회사 홈페이지라도 꼭 한번 체크하시길 권합니다. 그것은 J-1 회사뿐만 아니라 앞으로 일하게 될 미국 회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2. 트랜스퍼는 큰돈과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동반합니다.

저는 중간에 한 번의 이직, 즉 트랜스퍼를 진행했습니다. 이 역시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귀중한 돈과 시간, 그리고 정신적 스트레스가 드는 일입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영어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굉장히 힘들고 외로운 싸움이 될 것입니다. LA에서 처음 일했던 회사는 말 그대로 가족 회사나 다름없는, 총 직원 수 약 5명의 매우 영세한 규모의 회사였습니다. 따라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터지고 약 반년이 지나자 회사의 경제적 사정은 매우 위태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다른 인턴 한 명과 함께 일을 시작했는데, 그들은 곧 인턴 2명은 유지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다른 친구는 한참 전에 이미 해고당한 후 한국으로 돌아갔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저 역시 일종의 감봉을 당했습니다. 월급이 거의 절반 정도로 줄었죠. 한동안 우리나라 돈으로 한 달에 100만 원 남짓 벌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LA 같은 천문학적인 물가를 자랑하는 그 도시에서 한 달에 100만 원 남짓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합니다. 하숙집 방의 월세만 해도 거의 80만 원 정도를 지불했었으니까요. 이러저러한 불만이 쌓여있던 터라, 이대로 있다간 죽도 밥도 안 된다는 심정으로 트랜스퍼를 진행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우선 스폰서 회사에 장문의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요지는 코로나 상황 때문에 월급이 깎였는데, 이 정도로는 여기서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회사 역시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 남아있기 힘드니 다른 회사로 옮겨달라, 는 것이었습니다. 아, 참고로 트랜스퍼할 회사는 찾아두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이직 요청 전 이미 다른 회사의 인사 담당자에 이력서를 보내 면접을 보아 합격했고, 트랜스퍼가 진행되면 바로 새 회사로 입사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확정된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미국 스폰서 회사에게 당신들이 해야 할 불필요한 수고는 덜었다, 이미 새 회사를 찾아두었으니 소속만 옮겨달라,라는 내용의 이메일이었죠. 그러나 그들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황당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아서 몇 달 전에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했는데, 왜 아직까지 미국에 남아 있느냐. 그런 상황에 처한 것은 전적으로 네 탓이다. 우리는 여기서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으니, 경제적으로 곤란하다면 한국으로 돌아가라.


너무나도 화가 나고 억울한 나머지, 그런 짓은 하지 않아야 했지만 저 역시 장문의 이메일을 써서 그들에게 반박했습니다. 지금까지 너희들이 우리를 위해 해 준 것은 대체 무엇이냐, 우리나라 돈으로 약 700 만원에서 800 만원에 해당하는 돈을 이미 받아놓고, 심지어 중간에 한국으로 돌아간 사람들에게 환불도 해 주지 않고, 미국에 있는 우리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돈을 받은 스폰서의 책무가 아니냐며 말입니다. 심지어 당신들에게 다른 회사를 찾아달라는 것도 아니고, 이미 모든 준비를 나 스스로의 힘으로 끝냈고 단지 트랜스퍼 승인이라는 그 한 가지만 해주면 되는데 무엇이 그렇게 어렵냐며 항의했습니다. 전화도 여러 차례 걸어보았는데 받지 않았습니다.


일부러 이메일에 한국 회사 담당자를 참조하여 모든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했습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이 스폰서와 협력했던 한국 회사로부터 연락이 오더군요. 그 회사는 LA에 조그마한 현지 사무실이 있었습니다. 그 담당자는 밥을 사며 위로하는 척을 했습니다. 왜 스폰서와 싸웠냐며, 이런 일도 참 흔치 않은데 자신을 통해 이야기를 하지 그랬냐며 말입니다. 물론 트랜스퍼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J-1 인턴이 자신의 회사에 약 250만 원 정도의 금액을 지불해야 하는 걸 알고 있었기에,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받을 돈이 있으니 그랬던 것 같기도 합니다. 기회비용이라 생각하고 깔끔하게, 미련 없이 트랜스퍼 비용을 지불했습니다. 평소 조금이라도 저축을 해두지 않았더라면 당시 상황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다행히 트랜스퍼는 별 탈 없이 완료되었습니다. 이직한 회사에서 조금은 만족스러운 일 년을 보낼 수 있었고요. 그렇지만 오 년이 넘게 지난 지금에 와서도 그 이야기를 꺼낼 때면 아직도 화가 나곤 합니다. 무책임한 그들의 태도에 대해서 말이죠. 미국이라는 나라는, 최근 그 나라에 대해서 들려오는 여러 소식들을 접해서 잘 아시겠지만 '미국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냉정하기 짝이 없습니다. 피도 눈물도 없다는 표현은 이럴 때 적당할지도 모르겠군요.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그것이 가장 좋은 수단입니다. 그러나 미국인이 아닌, 비자 홀더(Visa Holder)들에게는 최악의 경우 그 마지막 수단마저도 통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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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미국에서 일하게 될 회사에 대해 큰 기대는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회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회사들은 모두 천차만별의 기업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것 역시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는 것을 전제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에 대한 큰 기대는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무엇을 상상하고 오신들 그 이하, 아니 최악의 경우를 경험할 것입니다.


LA의 한인 기업 문화는, 나쁘게 말해서 상당히 뒤떨어져 있습니다. 비단 회사뿐만 아니라 한인 사회 전체를 통틀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가지의 요소들이 한국, 게다가 서울에 비하면 몇십 년대 이전, 70-80년대에 그대로 머물러 있습니다. 지금은 한국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다양한 악습과 폐단이 남아있습니다. 직간접으로 경험한 것만 해도 사례가 다양합니다. 상사와 부하 간 폭언, 직장 내 괴롭힘, 그리고 업무시간 이외에도 이어지는 상사의 연락 및 지적질(!)은 당연하다고 보시면 될 겁니다.


이것은 물론 J-1으로 미국에 오는 어린 한국 청년들의 입장에서 비롯된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꼭 기억하세요, 절대 여러분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어차피 머물러봤자 최대한 일 년 반 남짓, 그전에 그만두고 떠나는 사람들도 수두룩하죠. 그들이 귀중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가며 인턴을 진심으로 대해주고 제대로 일을 가르쳐줄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인턴에게 맡겨지는 업무의 그 양과 범위도 한계가 명확합니다.


특히나 제 경우에는 매우 좋지 않은, 바로 윗 사수를 만나 직장생활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은 회사 전체에서 인턴에게 히스테리를 부리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코로나 사태 후 제가 일했던 업계는 이상하리만치 바빠져서 그 업무량이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거의 몇 달 내내 야근을 밥 먹듯이 했던 것 같습니다. 변명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당시 회사 부장으로부터 이 정도면 정직원으로 입사해도 되겠다는 칭찬을 받았고, 다른 나라에 있는 우리 회사의 지사로 갈 생각이 있냐며 직접 추천까지 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거의 확정된 상황이었는데 피치 못할 사정으로 거절할 수밖에 없었지만 말입니다.


즉, 제게 주어진 업무는 최선을 다해 처리했고, 어느 정도의 능력은 인정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식으로 이유 모를 사수의 괴롭힘을 당할 정도로 형편없는 인턴은 아니었다는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 년 내내 그 사수와 싸우기도 굉장히 많이 싸웠고요. 인턴 종료 후 들어온 다음 인턴이 종종 그 사람의 폭언과 가스라이팅이 너무 힘들다며 한국에 있는 제게 연락을 취해올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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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그 회사는 상술한 딱 하나의 요소를 제외하면 다른 환경들은 크게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 년을 어떻게든 버틸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그전에 잠시 있었던 영세했던 규모의 회사는 이곳이 과연 회사인지 아니면 창고인지 모를 정도로 열악한 환경을 자랑했습니다. 제공되는 점심식사도 현지 한인 식당에서 온 케이터링이었는데, 차라리 한국의 밥차가 나을 정도로 형편없었습니다. 그나마 제공되었던 그 케이터링도 코로나 이후 회사 사정이 좋아지지 않자 끊어버렸습니다. 그리곤 어느 날 라면 한 박스와 가스버너 등을 사 오더군요. 그리고 하는 말이 앞으로 당분간은 라면이라도 끓여 먹자,라는 것이었습니다.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는데, 다른 친구의 퇴사 후 유일한 여자였고 말단 인턴이었던 저에게 앞으로 설거지를 좀 도와줘야겠다고 하더군요.


인턴의 업무가 아니라며 완강히 거부했고 다행히 그들은 그 이상 강제할 수 없었습니다만, 그 사건은 한창 트랜스퍼를 진행 중이었던 제게 이곳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다시금 강력하게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업무 특성상 굳이 사무실에 많은 것을 투자할 이유가 없는 회사였기에 그러려니 했지만 사무실 곳곳은 더럽고 낡기 그지없었고요. 심지어 사장의 가족 중 한 명이었던 어느 직원은 키우던 개를 요즘 자신의 집에 둘 수 없다는 이유로 한동안 사무실에 개를 두고 퇴근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사무실 문을 열면 밤새 혼자 무서웠던 개가 곳곳에 싸 놓은 흔적과 그 냄새가 저를 맞이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끔찍하네요. 어떻게 그곳에서 버틸 생각을 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쓰다 보니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아 글이 굉장히 길어졌습니다. 아직 못다 한 말, 아니 넋두리라고 해야 할까요. 그것이 더 남아있어 다음 글에 이어서 쓰겠습니다. 너무 부정적인 것만 다룬 것 같아, 긍정적인 면모도 조금 담아서 쓰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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