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의 역학(蝶の力学)

살인분석반 시리즈 3부작의 화려한 피날레.

by 김한샘

[나비의 역학 -살인분석반-(蝶の力学 -殺人分析班-), 채널 WOWOW에서 2019년 방영, 국내에서는 티빙 및 웨이브에서 시청 가능.]


나비의 역학, 즉 나비효과란 사소한 것이 발단이 되어 사전에 예측 불가능했던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용어가 의미하는 것처럼, 이 작품에서는 아주 사소한 한 마디의 말이 수많은 사람을 말려들게 하고 한 남자가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 작품에서의 키사라기는 지난 두 편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작품 상으로도, 실제로도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그동안 그녀는 여러 면에서 많이 성장했다. 더 이상 귀엽거나 어리바리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한층 더 신뢰할 수 있고 책임감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녀의 변화는 짧게 자른 머리에서도 보이는 동시에, 전작들에 비해 다소 냉정하게 느껴지는 눈빛이나 말투에서도 체감할 수 있다.


그녀에게는 훨씬 더 많은 권한과 요청이 들어온다. 이제는 오로지 사건 해결 하나에만 집중할 수 없다. 지휘관으로써 중심을 잡고 전체를 통솔하는 것이 요구된다. 물론 지휘관으로써는 이제 첫걸음마를 뗀 그녀에게 모든 것이 순조롭지만은 않다.


게다가 늘 의지하던 파트너 형사 타카노는 이 사건을 마지막으로 공안 경찰로 전근하게 된다. 마치 자신의 아버지와도 같았던 그의 가르침과 울타리에서 벗어나야만 할 때이다. 더 이상 신입 형사가 아닌 어엿한 수사관, 그리고 이를 넘어 현장을 책임지는 지휘관의 한 사람으로서 '키사라기 토우코'는 힘든 홀로서기를 시작한다.


<나비의 역학>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지난 두 편과 차별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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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Mantanweb


1.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화려한 피날레

<돌의 고치>, <수정의 고동>은 각각 한 해의 텀을 두고 제작되었으나, <나비의 역학>은 조금 더 시간이 걸려서 3년 만에 방영되었다. 그렇게 오랜 기간 준비한 작품이라 그런지 여러 면에서 힘을 준 것이 보인다. 세트와 소품들을 포함한 작품 전반적인 분위기가 지난 두 편과는 매우 다르다.


특히 새로운 카메라 세팅이 인상적인데, 부드러운 빛 번짐 등으로 지난 시즌과는 다른 감성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제작진의 인터뷰에 따르면 기괴한 살인장면, 잠복수사 때의 사실감 등 시각적 아름다움을 이 작품의 매력으로 더하기 위해 한층 노력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지난 두 작품은 약간 모노톤의 색감을 보였다면, 이 작품은 더욱 미학적이고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낸다.


2. 다채롭고 입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캐릭터들

수사 1과 11계의 조연들에게 더 많은 비중을 넘겨준 점 역시 눈에 띈다. 예전에는 거의 모든 수사 시퀀스가 키사라기와 타카노 두 사람에게 할애되었으나 더 이상 그렇지 않다. 특히 지금까지 두 주인공의 것이나 다름없었던 잠복 수사 장면을 11계의 다른 동료들에게 넘겨준 것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또한 지난 두 편에서 미처 묘사하지 못했던 캐릭터들의 입체적인 모습들을 더욱 많이 보여준다. 특히 조연 중에서도 가장 비중이 높은 '비루카와'의 모습이 색다르면서도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비루카와는 수사 1과의 형사답게 키도 크고 신체적 조건도 나쁘지 않다. 컴퓨터를 잘 다루기도 해서 주로 그와 관련된 업무를 맡는다. 무뚝뚝한 타카노와는 다르게 키사라기의 마음을 잘 읽고 헤아려주는 섬세한 성격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현장에서는 울렁증이라도 있는지 늘 버벅거린다. 현장직보다는 내근직이 더 어울리는 듯한 스타일이랄까. 그러나 <나비의 역학>에서는 자신의 진가를 발휘해, 지휘관이 무너지자 함께 무너진 팀의 밸런스를 잘 잡아내는 중요한 역할로 그려진다.


그 외에도 다른 11계 사람들의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면모들을 새롭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새로운 시도들은 산만하게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쌓아온 캐릭터들에 대한 오랜 서사, 꼼꼼한 분석, 그리고 애정이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한 시도였으리라 생각한다.


3. 스토리에 살짝이 가미된 조미료, 미묘한 러브라인의 존재

이미 이 시리즈에 러브라인이 없다고 밝힌 바 있지만, 사실 처음 <나비의 역학>을 시청했을 때는 그러한 사전 정보가 없었으므로 갑작스럽게 가미된 로맨스의 존재란 꽤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였다. 특히 지난 작품까지만 해도 타카노의 모습은, 마치 돌아가신 키사라기의 아버지를 대신해 '금쪽이'를 육아하는 듯 그려졌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번 작품에서는 시작부터 지금까지와는 다른, 미묘한 연출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피날레이니 만큼, 마지막까지 시청자들의 호기심과 구미를 당길만한 요소가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이 새로운 시도는 마지막 화에서 전개되는 또 다른 하나의 스토리와 얽혀, 작중 내내 인물들에 대한 더욱 깊은 몰입을 가능하게 한다.





<나비의 역학>역시 예의 엽기적인 살인 수법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살해된 피해자의 시체는 목이 찢긴 채, 그 상처에 네 송이의 꽃들이 꽂혀있는 채로 발견된다. 붉은 피와 대조되는 푸른 색깔의 그 꽃들은 다른 무엇도 아닌 살해당한 시체 위에 놓여 있다는 아이러니한 상황과 함께, 더욱이 살인 사건의 현장의 분위기를 음흉하게 자아낸다.


물론 피해자는 한 명에 그치지 않는다. 수사 1과의 사람들은 피해자의 주변을 중심으로 탐문 수사를 시작하며 범인을 추리해 나가지만, 대체 왜 피해자의 목을 찢고 그 자리에 꽃을 놓아두었나?라는 의문에 계속해서 발목이 잡히며 수사는 난항을 겪는다.


그리고 항상 에이스로써 추리를 주도해 왔던 타카노는 곧 전근을 앞둔 상태이기에, 작중 다소 산만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지 않아도 앞으로 그를 대신해서 믿음직한 지휘관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있던 키사라기에게, 그런 타카노의 독단적인 태도는 한층 더 불안감을 자아낸다. 이러한 압박감들에 시달려 가며 키사라기는 마침내 수사 지휘관으로써의 힘겨운 홀로서기를 시작한다.


이하는 스포일러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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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Mantanweb



이 사건의 진범은 우치다라는 사람이었는데, 참으로 의외의 인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작품 단 한 번도 용의 선상에 오르지 않은, 거의 없는 듯한 비중으로 묘사되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첫 피해자는 부동산 업자였는데, 그는 사채업 및 불법 약물 거래까지 알선하는 그야말로 악질 중의 악질이었다.


우치다의 형 역시 불법 약물에 연루되어 피해를 입은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형의 죽음에 대한 뒷조사를 하던 우치다는 그 부동산 업자의 배우자, 마유미의 가족과 얽히게 된다. 당시의 그는 한 치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 나중에 자신을 범죄자로 만들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이 작품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한 가지 요인은 바로 '동시사망추정'이라는 개념이다. 이것은 2인 이상이 동일한 위난으로 사망했을 때, 사망 시기를 알 수 없으므로 동시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는 법률이다. 이 규정은 사망자 상호 간에 상속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며, 그 후속 상속인들이 재산을 상속하게 되는 것이다. 사망한 첫 번째 피해자는 막대한 유산을 남겼다. 따라서 사망시점의 선후를 입증하는 것이 유산의 행방의 결정타였다.


마유미는 남편이 사망하는 현장을 목격한 탓에 죄 없이 말려들어 중태에 빠졌다. 얄궂은 운명은 우치다로 하여금, 마유미의 여동생인 자신의 여자친구의 요청으로 그녀를 구하게 한다. 동시사망추정에 대해서 알고 있었고, 이대로 그녀가 사망하면 막대한 유산이 연인의 가족에게는 한 푼도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또 하필이면 응급구조사의 경력이 있었던 그는 마유미에게 연명치료를 한다.


이윽고 그는 두 건의 연쇄 살인을 자행하며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고 만다. 마유미의 남편과 그녀를 살해한 사람은 바로 세 번째 피해자였다. 우치다는 일종의 공범이었던 세 번째 피해자를 죽이고, 마지막 피해자를 범인으로 만들며 완전범죄를 계획했던 것이다.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사건의 전말, 그것은 바로 자신의 언니를 구해달라는, 연인의 한 마디의 말이 불러온 나비효과 그 자체였다.


또한 마지막 화에서는 타카노가 신변의 위기를 겪으며 내용이 긴박하게 전개된다. 범죄를 저지르는 주체가 되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던 법의학자가, 알고 보니 해부에 혈안이 된 사이코패스라는 반전은 꽤나 흥미로웠다. 이 법의학자는 작품 내내 키사라기와 미묘하게 대립하는 관계를 형성하는데, 첫 화부터 마치 연적과도 같은 긴장감을 선사하며 시청자를 헷갈리게 만드는 그녀의 존재감은 실로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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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Mantanweb



<살인분석반> 시리즈 3부작의 마지막, <나비의 역학>은 모든 면에서 완벽한 작품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2015년부터 시작된 이 시리즈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기에는 충분하다. 우리가 흔히 짧게 줄여 '디카'로 부르는 디지털카메라는 어느새 조금은 낡은 물건이 되어버렸다. 그 디지털카메라를 늘 휴대하며 사건의 실마리를 쫓던 타카노가, 이제는 스마트폰 카메라로 빠르고 노련하게 사건 현장을 기록한다. 그 모습은 시간의 흐름을 보여줌과 동시에, 조금은 과장하여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애정 있게 이 시리즈를 봐온 만큼 만감이 교차하는 기분이 들었다. 선뜻 이 작품의 11계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건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왜, 항상 트릴로지의 마지막은 늘 시원섭섭하지 않은가. 한 회가 늘어나 총 여섯 개의 에피소드로 마무리되는 것은 나와 같은 이들의 마음을 달래주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더불어 작중 최고의 인기를 자랑했던 캐릭터인 타카노의 이야기는 스핀오프 시리즈인 <사신의 천칭 -공안분석반->에서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다. <살인분석반> 시리즈보다 한층 더 어둡고 심오한 이야기를 다루었는데, 이 작품 역시 매우 수작이다. 또한 <돌의 고치>와 <수정의 고동>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보여주었던 범인 '톨레미'를 주인공으로 한 또 다른 스핀오프 <악의 파동>역시 준수한 평가를 받았다. 아무래도 나처럼 이 작품의 탄탄한 세계관에 깊이 빠져들었던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이 작품은 내게 개인적으로도 일종의 나비효과를 불러일으켰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이야기의 힘, 캐릭터의 힘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했기 때문이다. 나처럼 진지한 수사물, 미스터리, 그리고 추리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이야기에 매료될 수 있다면, 공감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을 담아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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