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에서 나흘 내내 누워만 있었던 이유

태국에서 장염에 걸렸다

by 금파랑

꼬 사무이에서의 여유로운 며칠을 보내고, 우리는 태국을 떠나기 전 환승도 할 겸, 관광도 할 겸 방콕으로 향했다. 방콕은 우리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대도시의 무지막지한 인파를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호텔까지 그랩(Grab)을 타고 이동하기로 했는데 그랩 정류장은 말 그대로 시장통이 따로 없었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수많은 다른 국적의 관광객들이 온갖 언어로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국제공항임에도 불구하고 따로 정류장이 설치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도로 한복판을 지나가는 수많은 차들 사이에서 차의 소음과 매연, 그리고 방콕의 더위를 그대로 마셔가며 기다려야 했다. 게다가 방콕 주말의 교통체증은 정말이지 무시무시하다. 그랩 택시 한 대를 부르는데 기본 대기가 40분이었다. 우리는 거의 한 시간 정도를 기다렸는데,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최악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글로벌 허브 공항 중 하나인 방콕 수완나품 공항에서의 그랩 택시 잡기 경험은, 심지어 인도 벵갈루루 캄파고다 공항에서의 우버 잡기보다 훨씬 형편없었다. 방콕에서는 캐리어를 들고 환승하는 것이 귀찮더라도 무조건 대중교통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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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한 호텔은 짜오프라야 강변에 있는 로얄 오키드 쉐라톤 리버사이드 호텔. 예전 방콕에 왔을 때 짜오프라야 강 주변에 머무르지 못했던 아쉬움이 남아서 이곳을 선택했다. 호텔 너머로 비치는 강가의 풍경, 그리고 휘황찬란한 아이콘 시암 몰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선택지였다. 우리는 짐을 대충 풀어 두고는, 다음 일정으로 미리 예약해 두었던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호텔로 돌아와 잠을 청하려는데 엄청난 오한이 느껴졌다. 가만히 누워 있기 힘들 정도로, 윗니와 아랫니가 덜덜 떨리며 아래위로 부딪히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사실 저녁을 먹으러 갈 때 아주 얇은 민소매 원피스를 입었는데, 아무래도 그것이 화근이었나 하고 생각했다. 챙겨 온 비상감기약 한 알을 먹고 다시 누웠다.


그렇지만 마치 나의 오판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본격적으로 열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오죽했으면 열과 두통이 너무나도 심해 중간중간 숨이 찰 정도였다. 결국 나는 이른 새벽에 남편을 깨웠다. 남편은 호텔 리셉션 카운터로 달려가 도움을 청했고, 호텔 측과 제휴가 되어 있는 사립 병원에서 의사를 불러 주었다. 도저히 병원에 갈 수 있는 컨디션이 아니었다.


왕진을 온 의사는 COVID 및 독감 테스트를 해 보곤 둘 다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단순 몸살감기인가요라고 물어보았는데 그것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그의 말로는 아직까지 제대로 증상이 100% 발현된 것이 아닌 것 같다며, 우선은 감기약을 줄 테니 혹시라도 증상이 심해지면 병원으로 직접 방문하라고 했다. 사실 다음 날 오후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탈 예정이었지만, 일단 일정을 하루 미루기로 했다.


친절한 인상과 나긋한 목소리를 가진 태국 의사의 판단은 정확했다. 감기와 비슷한 증상이 나타난 지 대략 12시간 만에 본격적으로 설사와 복통이 시작되었다. 화장실을 거의 15분, 20분 내 한 번 꼴로 가야 했을 정도였다. 온몸의 수분뿐만 아니라 장기까지 모조리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남편이 배달시켜 준 야채 죽은 거의 먹지도 못했다. 그날 밤도 결국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리느라 거의 제대로 자질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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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황에서 비행기를 타기란 무리였다. 그렇지만 언제까지고 연고 없는 타국에서 무작정 머무를 수만도 없는 일.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치료 방법을 찾아야 했다. 다음 날 아침 남편에게 IV, 즉 정맥주사를 맞아야 할 것 같다고 얘기했고 우리는 호텔에서 15분 내외에 떨어져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어제 왕진을 온 의사가 근무하는 사립 병원이었다.


도착한 병원은 뽀얀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건물 내부와 먼지 한 톨 없는 각종 최첨단 시설 및 병원 장비 등이 눈에 띄는 곳이었다. 아파서 정신이 반쯤 나간 것 같은 상황에서도 참으로 고급스럽기 그지없는 곳이라고 느꼈다. 병원비가 많이 나올 것이라는 걱정이 잠깐 스쳐 갔지만 망설일 겨를이 없었다. 이 병원에서 의사 왕진 비용, 진찰 비용, 각종 약값을 포함해 거의 130만 원 정도를 지불했다. (물론 나중에 전액 보험 처리되었다.) 물론 이 정도의 금액을 지불한 만큼, 아픈 와중에도 참으로 황송한 대접을 받았다.


어쨌든 이곳에서 제대로 된 혈액 검사와 CT 스캔을 통해서 Colitis, 즉 급성 세균성 장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정맥주사 및 진통제 등 수액을 두세 개 정도, 몇 시간에 걸쳐서 맞았던 것 같다. 비행은 무리라는 말에 남편은 2차로 우리의 비행 계획을 미뤘다. 호텔 체류도 이틀 더 연장하기로 했다.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어 거의 전해질 음료로만 버텼다. 나흘 동안 체중의 거의 2~3kg 정도가 빠질 정도로 고생했다. 덕분에 십 년 만에 다시 돌아온 방콕에서, 꼭 한 번 다시 방문하고 싶었던 아이콘 시암 몰을 눈앞에 두고 4일 내내 창문 너머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간신히 비행기를 탈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어 공항으로 가는 길에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https://www.bnhhospital.com/


한국에 돌아와서는 부모님과 집밥의 도움으로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다. 태국에서 받았던 진단서와 진료 차트를 들고 내과를 한 번 더 찾았다. 의사는 진료 차트를 보더니 아주 크게 고생하셨네요, 라며 혈액 검사에서 백혈구 내 염증 수치가 90% 가까이 기록될 만큼 상태가 심각했다고 말해 주었다.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길거리 음식은 거의 먹지 않았고, 리조트 안에서만 머무르며 수상쩍은 것은 먹지 않았다. 의사는 냉동 다짐육 같은 것이 원인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이야기했다. 리조트에서 먹었던 것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그 후 일어난 이상한 우연 중 하나는 바로 우리가 귀국한 지 정확히 일주일 후에 막내 이모 부부 역시 장염에 걸려 크게 고생했다는 것이다. 그들 역시 일주일 만에 거의 5kg이 빠질 정도로 아팠다.


흔히 우리는 장염이 여름철에 유행하는 질환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겨울에 더 기승을 부린다고 한다. 이렇게 작년 겨울에 일어났던 연이은 '장염 해프닝'은 우리 가족 및 친척들에게 급성 장염의 무서움에 대해 다시금 일깨워주는 사건이었다. 나 역시 오랜 기간 잊고 지냈던 건강의 중요성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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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여행을 다닐 때는 반드시 여행자 보험을 들어 둘 것! 또한 여행지에서 갑자기 몸이 아프면 지체 없이 믿을 만한 병원으로 달려갈 것, 그리고 가장 신속하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치료받을 것. 아,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당시 발생하는 각종 서류와 영수증 등을 잘 챙겨 둘 것.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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