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즐거움
제 1 부
제3장 독서의 즐거움
언제부터 독서가였는지 누가 물어본다면 저는 서른 살이 넘어서, 책으로 아이들과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하면서 부터라고 대답할것 같습니다. 일단 수업준비하면서 책을 무작위로 단시간에 무작위로 읽어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취미 책 읽기 처럼 적당히 읽기가 아닌 일로 읽는 독서가 되었습니다. 더 자세히 읽어내야하고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읽어내는 독서가 되었습니다. 내가 선택하고 읽어내는 책들이 아니라 기한이 정해져있고 읽어야만 하는 독서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래서 즐겁기 보다는 힘들었습니다. 도서 목록이 정해져 있는 것도 그렇고 거기 맞춰 질문들을 만들어 내고 외워야 하고, 이전에 하던 방식에서 벗어난 독서가 쉽지 않았습니다.
3개월이 지나고 1년이 지나고 3년이 되어가면서 책을 정독을 넘어 숙독하고 질문에 대한 여유도 생겨나면서 독서가 제법 몸에 붙게됩니다. 그러면서 독서가 흥미롭게 재밌어졌습니다.
첫째는 줄을 긋는 즐거움입니다. 책을 빌려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구입하더라도 저에게는 귀한 책이 되어서 소중히 다뤘었구요. 그런데 이제 책으로 일을 해야하니까 책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워낙 연필 쓰는 것을 좋아해서 연필로 줄치고 메모하면서 읽을 수 있어 독서를 하는 행위 자체가 소소한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영역 표시를 하듯이 줄을 치고 내 생각들을 적어가면서 읽어낸 책 한 권이 오롯이 내것이 되는 즐거움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책장에 줄쳐지고 메모가 채워진 나의 책들로 거듭난 책들이 한권씩 채워지는 것에 큰 보람과 기쁨이 있었습니다.
두번째 독서의 즐거움은 책길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책을 읽다보면 이야기 속에 나오는 책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그냥 지나쳐버렸는데 이제는 그 책들을 메모해 뒀다가 다음책으로 이어 읽어갑니다. 예를 들어 ‘작은 아씨들’에 자매들이 ‘천로역정’ 놀이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면 다음책은 천로역정을 읽어보는 겁니다. ‘생각의 시대’라는 책을 읽고 이 책의 모티브가 된 ‘생각의 탄생’이라는 책을 찾아 읽어보는 겁니다. 또 ‘로빈슨크로스’를 읽고 이 책을 모티브로 하는 ‘제비호와 아마존호’를 찾아 읽게 됩니다. 이러면서 자연스럽게 책길이 만들어집니다. 더불어 짝꿍책도 찾아지게 됩니다. ‘1984’, ‘멋진신세계’, ‘동물농장’, ‘기억전달자’, ‘화씨451’은 함께 읽으며 비교 대조하며 읽기 좋은 책들이죠. 그리고 ‘데미안’과 ‘수레바퀴아래서’는 작가 연결과 주제 연결도 가능한 짝꿍 책이 됩니다. 또 ‘2년가의 휴가’와 ‘파리대왕’은 상황은 같은데 극명하게 다른 주제를 다루는 것을 비교하며 읽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한 권의 책을 제대로 읽어내면 그 안에서 다음 읽을 책을 발견할 수 있고, 또 그 와 관련된 책들을 이어 읽으며 비교 대조하며 읽을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은 저에게 비판적인 사고가 가능하게 도와주고 좀 더 넓은 시야에서 책을 연결하고 통합하는 역량을 키워주었습니다.
세번째는 독서 덕분에 영역을 넘나드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이전에 책을 읽을 때는 깊이 읽지 않았기에 다른 책이나 다른 영역을 넘나들 수 있다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소설을 읽거나 할 때도 그냥 허구의 이야기로만 생각했지 현실의 배경들과 연결짖지 못했습니다. 단순한 책읽기를 한거죠. 그런데 제대로 독서를 하게 되면서 영역을 넘나드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올리버트위스터’를 읽고 산업혁명시대 아이들이 어떻게 지냈는지 찾아보게 되고 또 그와 함께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다른 책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래서 알게된 책이 ‘물의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산업혁명시대 왜 아이들이 노동을 하게 되었는지 산업혁명이라는 시대에 대한 역사적 이해를 하게 됩니다.
이런 과정에서 역사와 고전 책들을 연결하며 읽는 것이 이제 자연스러워졌습니다. 그 덕분에 한국사는 물론 세계사에 대해서도 큰 맥락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반대로 세계사를 정리하고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시대별로 읽을 수 있는 고전 작품들을 추려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대를 배울 때는 길가메시 이야기부터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오디세이아를 읽고 플루타르크 영웅전을 읽고 , 단테 신곡 등을 읽을 수 있습니다. 중세들어가면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 삼총사, 돈키호테 등이 있습니다. 또 근세 들어가면 두 도시 이야기, 레미제라블 등을 읽을 수 있고 프랑켄슈타인, 등을 읽을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근대로 넘어가면서 앞에서도 언급한 적 있는 1984, 동물농장, 멋진신세계 등이 있습니다.
여기서 다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고전 소설들은 역사와 그 시대 철학과 따로 두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철학사에도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어떤 철학사조가 유행했길래, 작가는 어떤 철학으로 이런 글을 썼을까 고민하게 된 것입니다. 책을 능독적이고 적극적으로 읽고자 했을 뿐인데 자연스럽게 역사와 철학사를 넘나들며 독서가 더 깊어지고 넓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역사와 철학만 관련 있을까요? 역사나 고전들 중에서는 그림으로 이야기를 풀어놓은 경우도 제법 있습니다. 단테 신곡은 특별한 그림작가가 언급되기도 합니다. 귀스타브 도레의 삽화가 그것이죠. 또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그림들도 있습니다. [플랜더스의 개]에 주인공 넬로가 그렇게 보고 싶어했던 성당 안에 있는 루덴스의 그림! 도대체 어떤 그림이었을까 찾아보게 됩니다. 프랑스 혁명 이야기할 때는 빠질 수 없는 그림이 있지요. 한 여인이 바스티유 감옥 앞에서 프랑스 국기가 된 깃발을 들고 있는 그림. 유럽이나 미국 박물관들을 방문하면 작품마다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들은 많은 부분 우리가 아는 역사와 고전 이야기와 만나있습니다. 그런 부분을 찾아보고 연결하고 하는 작업까지 포함된 활동이 저에게 이제는 독서가 된 것이죠.
다음 네번째 독서의 즐거움은 다른 생각을 들을 수 있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한 것 처럼 독서는 개인적인 것으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타인을 향하게 되고, 타인과 독서가 공유되면서 완전히 다른 독서를 경험하게 됩니다. 독서를 공유한다는 것을 설명해야겠지요. 책을 읽는 것은 먼저 작가의 생각을 듣는 것입니다. 그래서 작가와 독자의 대화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작가는 하나의 이야기를 하지만 그것을 읽어내는 독자는 독자 수만큼 다른 대화를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책을 읽고 내가 작가와 나눈 대화를 다른 사람에게 공유한다면 책을 한번 읽었다 해도 나는 또 두번 읽은 것이나 마찬가지가 됩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하며 책을 읽어냈구나. 나와 이런 점에서는 생각이 같고 저런 점에서는 생각이 다르구나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험은 독서모임에서 자주 일어납니다. 물론 SNS에 올라오는 책 서평들이나 책에대한 피드도 한몫을 합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생각에 와 닿는 것은 독서모임에서 주로 많이 있습니다. 생각을 묻고 듣고 하는 상호작용에서 알게되는 책에 대한 생각들은 혼자 읽는 독서와는 또 다른 차원의 독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각을 키우고 풍성하게 하는 경험은 독서의 또다른 즐거움이자 유익이라 하겠습니다. 이 부분은 뒤 장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다섯번째 독서의 즐거움은 나만의 창고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자시의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창고’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자신만의 잡동사니를 많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야 그 잡동사니를 이용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창고의 잡동사니를 많이 가질 수 있는 것이 바로 독서입니다. TV 프로그램 <알쓸신잡> 알아두면 쓸모있는 신기한 잡학사전처럼 책을 읽다보면 책길이 만들어지고 그 책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여러 관점을 이야기하고 나누다 보면 정말 알쓸신잡 같은 창고가 생겨나게 됩니다. 작정하고 만들지 않아도 어느새 책장의 책만큼, 독서모임을 한 횟수 만큼, 여러 분야. 특별히 나와 전혀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토론하고 이야기 나눈 만큼 창고에 잡동사니들이 쌓이게 됩니다. 이걸 교육분야에서는 배경지식, 혹은 스키마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하지만 저는 창고 잡동사니가 더 정확하고 재밌는 표현이라 생각이 됩니다. 이런 잡동사니가 많은 사람들은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쩌면 이런것이 진정한 재산이 되는 것이죠. 살아가면서 만나지는 많은 문제 앞에서 해결점을 찾아가는 역량은 이런 잡동사니에서 키워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현자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릴때 부터 쌓여가는 잡동사니들 - 물론 경험들도 들어가겠지만 우리는 독서를 이야기하고 있는 중이니까 독서에 의해 만들어진 - 이 진가를 보여주는 것은 바로 삶을 창조적으로 살아내게 해줄 때라 생각됩니다. 그것이 현자의 모습이 되겠지요. 정리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 뒤죽박죽 속에 차곡 차곡 쌓여있던 것들을 잘 꺼내 쓰게 되는 날이 오니까요.
마지막으로 말하는 독서의 즐거움은 종이책의 즐거움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책장에 쌓이는 책들을 보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어릴때 소장하지 못한 책들을 지금 한권씩 사 모으고 읽고 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코로나 시절에는 서점에 가지 못해서 너무 속상했습니다. 가까운 곳에 대형서점이 있는데 그곳은 제가 답답할 때 바다를 가듯이 바다 대신 가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 곳을 못가고 온라인으로 책을 살 때는 좀 답답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래도 책을 사는 건 기쁨이지만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종이책을 옷이나 가방 쇼핑하듯이 구입하고, 실물 책들을 소유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사는 원룸 벽 삼면이 책장으로 되어있고 책들이 겹겹이 꽂혀 있습니다. 많은 책을 보고 놀라시면 꼭 이렇게 대답하죠. “책으로 일하는 사람이라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 겸손한듯한 표현 속에 내심 뿌듯하고 자랑스러움이 있습니다. 전자책도 시도를 해보았지만 잘 읽혀지지 않고, 줄을 치고 메모를 하고 종이를 넘기고 모서리를 접고 하는 종이책 독서의 즐거움을 대신할 수 없었습니다. 운전할 때는 오디오북을 자주 이용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읽은 책들을 눈으로 보고 소장하는 뿌듯함과 즐거움을 주는 것은 종이책이라 하겠습니다.
이렇게 독서를 즐거움으로 삼는 사람이 이것으로 어떻게 돈을 벌고 사는 업으로 삼게 되었을까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것은 참 축복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본격적으로 그럼 직업으로서의 독서가의 삶을 이야기 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