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쓸모 3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림책을 읽으며 자라지 못했습니다. 또 그림책은 유아들이 보는 책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독서치료학회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책이 바로 그림책이었습니다. 어린이부터 성인 아니 노인까지 전세대 모든 연령이 볼 수 있는 책이 그림책이었습니다. 그림책은 우선 짧습니다. 그래서 그림책을 그자리에서 같이 읽을 수 있습니다. 상담자 내담자로 앉아있는 관계 뿐만 아니라 누구나 서로 상호작용하기 위한 중간 다리 역할 같이 통로역할을 훌륭히 해내는 것이 바로 그림책입니다. 또한 그림책에는 빈 공간이 많습니다. 글자들이 한면을 다 채우지 않습니다. 그림이 모든 면을 채우지 않습니다. 시 처럼 비어있는 공간들이 있고 소설이나 산문에서 발견하는 행간 사이를 그림책에서도 동일하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공간은 비어있지만 비어있기 때문에 채울 수 있는 공간입니다. 함께 이야기 나누고 생각을 확장시키고,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공간 때문입니다.
저를 처음 흔들어 놓았던 책은 바로 [검피아저씨의 뱃놀이]였습니다.
처음에는 표지를 보고 너무 답답하고 싫었습니다. 좁은 배 위에 다닥다닥 모여 앉은 모습이 불편했습니다. 책 내용도 물에 결국 빠질것을 알면서 검피아저씨는 왜 모두 배에 태웠을까 하며 투덜거리면서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림책을 읽어주시던 교수님께서 검피아저씨가 나한테는 어떻게 말할것 같으냐 하시는데 머리를 망치로 맞는것 같았습니다. 아마 검피아저씨는 저한테 끝에 앉아서 속으로 동료들을 판단하지 않는다면… 했을거 같았습니다. 아… 내가 그런 모습으로 보였었지.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구나… 이전 회사일과 겹쳐지면서 불편했습니다. 그때 사회적으로도 세월호 사건이 생겨서 배가 뒤집히고 모두 물에 빠지는 장면은 너무 보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며칠, 몇 주 동안 옆에만 두고 있다가 어느날 다시 펼쳐 보았는데 큰 물조리개를 가지고 혼자 큰 집앞에 있던 아저씨 모습. 모두 물에 빠진 뒤 아무일 없다는 듯이 함께 모여 차를 마시는 모습이 눈에 그리고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빠져도 괜찮아. 빠지면 어때?.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하고 알려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혼자 완벽한 것 보다 완벽하지 않고 실패가 있어도 여럿이 함께가 더 좋아. 라고 보여주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이 책을 저의 그림책이라 부르며 지금까지도 그림책 수업때 제일 먼저 다루는 책이 되었습니다.
또 한권의 책이 있다면 [딸은 좋다] 였습니다.
우리 집은 언니랑 나랑 딸만 둘입니다. 가정적이었던 아빠는 휴일에 필름 카메라를 들고 여행다니면서 우리 사진을 잘 찍어주셨습니다. 그렇게 좋던 아버지가어느사이 연세가 드시고 퇴직도 하시고 그러시면서 예전에 내가 생각하던 아버지가 아니셨습니다. 7년 자취생활을 하다가 부모님께서 서울로 오시면서 합치고 나서 부모님도 달라지시고 저도 달라져서 서로가 낯설고 불편함이 이어져 갔습니다. 뭔가 계속 삐걱거리고 있었는데 골이 깊어 지고 있어서 속상해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 이 그림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책에 나오는 자개화장대를 보는 순간 어린 시절 엄마 화장대가 생각나고 화장대 위에 있던 가족사진도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림들이 모두 아빠의 시선처럼 느껴졌습니다. 맞다. 우리 아빠 그랬었는데... 그렇게 딸은 좋다하며 나를 키우셨는데...그런 아빠를 내가 너무 이해해 드리지 못했구나. 그래서 그 다음주 마침 휴일이어서 남이섬으로 같이 어색한 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남이섬으로 가는 전용 버스를 타고 나란히 앉아 엄마 어린시절 이야기도 듣고 그런 엄마 이야기를 아빠가 듣고 자연스럽게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게 되었습니다. 그날은 아빠 엄마가 하고 싶고 가고 싶어하시는 대로 다 맞춰드렸습니다. 참 신기하게 그날 이후 아버지랑도 어머니랑도 편해지고 이야기도 많이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림책이 나를 직접 움직이게 한건 처음이었습니다.
그림책이 이렇게 마음을 열고 나누고 들여다 보는 도구로, 또 그 덕분에 삶에 영향을 주기도 하는 너무 좋은 쓸모가 있는 도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독서라는 것이 개인적인 필요를 채우며 나에게 방향이 향해있었는데 이제 타인을 향해 방향이 바뀌고 있었습니다. 그 타인에는 아직 ‘아이들’에 한정적이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저에게 아이들이 있었기에 독서에 대해 더 몰입하게 되었습니다. 그 쓸모를 잘 설명할 수 있어야 책을 함께 읽는 아이들에게 독서가 어떻게 의미있고 가치있는지를 설득하고, 그 부모님들도 납득이 되어야 독서에 돈을 지불할 수 있을테니까요.
그때 독서로 진로교육을 하는 세미나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진로교육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독서와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고민없이 대구까지 내려가서 세미나에 참여했는데 그곳에서 김승 티엠디 교육그룹 컨설턴트님의 강의를 듣게 됩니다. 진로에 대한 로드맵을 알려주셨는데 우선 유초등단계에서 자기발견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건강하게, 강하게, 기본에 충실하게 말이죠. 그리고 중등단계에 가면 세계발견이 있는 때라고 합니다. 이때 영성과 사상교육, 삶의 태도와 자세를 가르치고 가치관과 신념이 생겨나는 때라고 합니다. 다음으로 고등단계에서 직업선택이 이루어지는데 다양한 분야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하고 돈되는 직업, 줄서는 직업이 아니라 의미있는 직업을 선택해서 다음 대학 진학의 길이 결정되고 그대로 준비해서 소명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내야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때 소명이라는 것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어떤 사람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것을 목표 삼아야 한다는 거죠. 학습과 진학에 맞춘 진로가 아니라 진로를 먼저 설정하고 학습과 진학을 준비하고 이루어가야 제대로 된 동기부여와 함께 진정한 진로를 밟아갈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렇게 정리된 설명을 들은 것만으로도 인사이트가 있었지만 특별히 자기발견과 세계발견 단계에서 다시 말해 자기가 잘하고 하고싶은 것 잘하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필수가 독서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경험할 수 없고 간접 경험을 독서를 통해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답을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이죠. 너무나 동의가 되었습니다. 어떤책을 읽어야할까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는 이미 현장에서의 경험치가 쌓여있었기에 그 바탕으로 저만의 독서교육 커리큘럼을 만들어야겠다 생각하고 정리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독서 커리큘럼은 인문고전을 바탕으로 하는 독서로드맵으로 앞서 경험한 발달적 차원(심리, 정서, 인지, 몸 발달)과 진로교육의 차원이 만나지면서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초등에서부터 전세대에 걸쳐 그림책 읽기는 바탕이 되고 함께 할 수 있는 독서형태가 됩니다. 그 바탕 위에 유초등 저학년에서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는 옛날 이야기와 세계 명작동화들을 주로 읽습니다. 이 이야기들은 대부분 이야기 구성 3요소 즉 배경, 인물, 사건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체화하고, 책이 재미있는 것이라는 것, 독서가 밥먹고 자고 하는 것과 같이 일상적인 것으로 자리잡도록 하는 것이 유초등 저학년 1,2 학년때 까지의 목표가 됩니다.
다음으로 초등 중학년 3,4학년에서는 이제 비판적 읽기 - 옳고 그름을 따져 읽는 읽기가 가능해지면서 세계 명작들을 읽기 시작합니다. 세계 명작들은 우리가 잘 아는 하이디, 정글 이야기,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피터팬, 꿀벌 마야의 모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시튼 동물기, 플랜더스의 개, 오즈의 마법사 등이 있습니다. 이런 고전을 읽히는 이유는 이미 검증된 책이라는 점도 있지만 생각할 거리들이 많이 있습니다. 질문을 하고 이야기 나누고 토론할 수 있는 책이라는 의미입니다. 책을 통해 생각하고 고민하고 생각을 확장하고 그것을 글로 표현하는 과정이 온전한 독서를 이루게 합니다.
이제 초등 고학년 5,6학년이 되면 책은 더 재미있어집니다. 왜냐하면 학교에서 한국사를 배우게 될 때이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역사개념도 생기고 그것과 관련된 책들을 함께 읽을때 시너지가 있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한국 고전문학을 접하게 되고 세계 명작들도 좀 더 수준을 높여갈 수 있습니다. 홍길동전, 춘향전, 유충렬전 이런 책들은 모두 조선시대와 연결해서 읽을 수 있습니다.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 돈키호테 등은 중세시대와 연결할 수 있고, 레미제라블은 프랑스혁명, 올리버트위스트는 산업혁명 등 세계사와도 만나지면서 책을 훨씬 풍성하게 읽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중학교 고등학교에 가면 한국 근현대 단편과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신곡, 죄와 벌 등 이제는 정말 읽을 수 있는 책이 넘쳐나게 됩니다. 서울대 선정 인문고전책들이나 SAT 도서들을 따라 읽을 수 있게 되는 거죠. 이런 책들은 하루 아침에 읽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그런 단계들을 차곡차곡 읽어낸 아이들이기에 가능한 것이죠.
이렇게 나에게 필요했던 독서는 타인을 향한 쓸모있는 것이 되었고, 또 쓸모있는 것이 되게 하려고 하는 독서가가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머물던 독서가 확장되고 깊어지고 여러 가지가 생기면서 줄기는 더 굵고 튼튼해지면서 더 풍성한 나무가 된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서 저에게도 독서의 즐거움을 누리는 시간이 오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