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떠난 뒤

뜬금없이 남겨보는 유서

by 사브리나 Sabrina

결혼한 언니 시부모님께서 연세가 많으시다. 최근 아프시고 그러면서 여러 가지 상황들을 겪게 되었다. 그래서 언니가 어느 날부터 우리도 준비해야 한다고. 너 생각도 미리 알려달라고 한다. 그래서 부모님에 대한 생각들 이런저런 생각을 이야기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너는 어떻게 하고 싶어? 하고 물어본다.


나? 내가 뭐? 처음에는 못 알아들었다.

나의 죽음을 물어본 것이다.

그때부터 나의 죽음 이후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음... 내가 죽게 되면 무덤은 만들지 말아 줘.

화장해서 내가 자주 가던 낙산해수욕장 그 바다에 뿌려줘. 서울에서 좀 멀지만 그래도 해줄 수 있지?

서울에서 속초로 가는 동안 나랑 있었던 일들도 생각해봐 주고. 물론 좋았던 일만 떠올려줘.

그리고 장례식은 치르지 말아 줘. 태어날 때 가족이 알았던 것처럼 이 세상 떠날 때도 가족 안에서 떠나도 될 것 같아. 내가 죽을 때 옆에 어떤 가족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누군가에게 부담이 되는 죽음이 되고 싶지는 않아.

설마 고독사는 아니겠지?


종신보험이 있어서 아마 그 돈으로 화장하고 집 청소 정리하고 하는 비용으로 충분할 것 같아.

옷이랑 가방은 명품은 없지만 언니 쓸 거 있으면 쓰고 중고 옷매입하는데 팔아줘.

통장은 내 핸드폰 열어보면 통장거래 있으니까 확인해서 가족들 나눠서 가져줘.


서언유당 책들은 모두 지방 가난한 보육원이나 초등학교에 기증해 줘. 그런 곳을 찾기 어렵지 않도록 내가 몇 군데 찾아둘게. 만약 전달 못하고 죽게 되면 알라딘에 팔 수 있는 것들 팔고 정리해도 됨.


SNS랑 유튜브 채널도 다 내려줘. 계정 탈퇴. 삭제. 그야말로 온라인 장례식만 하게 되겠네.

이상하지. 유튜브 시작은 내 흔적을 남기고 싶어서였는데 죽음을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가고 싶다.

아무것도 없이 왔던 것처럼.


나는 새 하늘에서 하나님 곁에서 하나님 나라에 잘 있을게.


새해가 되면 유서를 업데이트해서 늘 남겨두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다. 언젠가 써봐야지 했는데 이렇게 브런치에 담담하게 남기게 된다. 아주 실제적인 유서 를 말이다. 죽은 이후 남은 사람들이 결정해야 할 일들을 남기지 않도록 돕는 것이 마지막 예의인 거 같다.


당장 죽겠다는 건 아니니 안심하라.

하지만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오늘이 소중하다는 생각으로

오늘을 선물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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