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독서가 - 독서의 필요 3

독서의 필요 3

by 사브리나 Sabrina

어른이 된 줄 알았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가 되려는 꿈으로 교육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꿈이 좌절되면서 국어선생님은 안되나 보구나.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나보다. 하고 정리하는 중에 입사제의를 받게 됩니다. 제3세계 어린이를 후원하는 단체였는데 그곳에 사람이 필요하다고 면접을 보라는 제안이었습니다. NGO(비정부간국제기구)단체에 대해 잘 몰랐지만 그곳이 단순한 후원이 아니라 교육을 통한 후원을 하는 곳이라는 설명에 선뜻 면접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 나라 후원단체가 여럿이 있습니다. 단체마다 후원하는 방법이 다양한데 제가 입사하게 된 곳은 현지 어린이들이 마을에 있는 교육센터에 등록이 되면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관리해주는 방식으로 후원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입사 후 후원받는 어린이들 관리하는 부서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매일 아이들의 사진을 보고 바이오(어린이정보지)를 만들고 하면서 아이들과 현지에 대한 정보를 다루며 후원자들과 연결하는 일을 했습니다. 기회가 되어 필리핀 현지 교육센터에 가보기도 하고 그렇게 후원을 받고 자란 대학생들을 만나보기도 했습니다.

이곳에서 일하면서 배운것은 교육이 사람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였습니다. 아이들에게 당장 우물을 파서 물을 먹을 수 있게 해주는 것도 필요하고, AIDS 약을 매일 먹을 수 있도록 지원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도움은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해주는 것. 교육이 답이 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독서하는 것이 좋고, 이야기를 좋아해서 국어를 좋아했고, 그 좋아하는 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좋아서 국어 선생님이 되겠다고 했던 저에게 교육에 대한 확실한 동기부여를 가지게 해준 곳이 바로 일하게 된 NGO단체였습니다.

이쯤에서 NGO다닌거랑 독서가로 삶이랑 무슨 상관이냐 하실 것 같습니다. 이제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제가 처음 이곳에 들어갔을 때는 규모도 작고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사실 이 단체는 한국전쟁때 한국에 있던 미군부대를 위문방문 하셨던 목사님을 통해 미국에서 시작된 단체입니다. 그래서 한국 전쟁 고아들을 후원하는 단체에서 전세계 많은 아이들을 후원하는 단체가 되었습니다. 후원을 받던 나라가 후원을 하는 나라로 이제 시작하고 있을 때 제가 입사를 하게 된거죠. 입사 후 한 연예인이 거액기부를 한 것이 매스컴을 타면서 단체 또한 유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해 후원등록이 갑자기 많아지고 아이들 바이오를 만드는 일부터 후원연결에 발송까지 정말 일이 많았습니다. 한국에 있는 NGO단체이지만 미국이 본부로 회사에 가까운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고 대표님도 한국분이시지만 미국에서 자라서 마인드가 완전 외국인 마인드. 그래서 야근이라는게 없던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제가 깨고 밤 늦게까지 일했습니다. 대표님이나 다른 분들 몰래 1주일 밤새 일한 적도 있습니다. 새벽에 회사를 나와 광화문 스타벅스에서 하는 아침예배를 드리고 다시 출근하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누가 하라고 해서 한 것이 아니라 우선 거기서 일하는 제가 좋았고, 일을 잘 해내고 싶었습니다. 독서와 마찬가지로 일을 잘 해서 인정받고 싶었던 것이죠. 처음 입사했을 때 후원 받을 아이들 정보지가 제 책상 위 바구니 하나 정도였는데 퇴사할 때 후원 받을 아이들 정보지가 사무실 벽 하나에 바구니들이 다 차 있었으니 그 규모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설명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달리다 보니 어느새 대리가 되고 팀장이 되어있었습니다. 사건은 여기서 생깁니다.

2년을 달려가며 일하다가 휴가를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그 사이 저에대한 평가가 이루어졌는데 중간 관리자가 되면 윗사람 아랫사람 모두에게 평가를 받게 되어있었습니다. 잘 쉬었으니 새롭게 해보겠다 새 마음 새 뜻을 품고 회사로 복귀하고 여행에서 챙겨온 선물까지 챙겨서 나눠줬습니다. 그런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한 것입니다. 내가 쉬고 와서 다들 힘들었나? 그 사이 일이 많았나? 팀원들을 살펴보고 물어봤지만 별 다른 말은 없었습니다. 얼마 후 인사과 과장님의 호출이 있었습니다.

평가 결과가 너무 이상하다고 하십니다. 윗사람들한테는 높은 점수인데 팀원들에게서는 최악의 점수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박미향 팀장과는 일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너무 충격적이었습니다. 어떤게 진짜냐고 물으시는데 할말이 없었습니다. 새마음 새뜻으로 다시 잘 해보겠다고 출근했는데 팀원들이 일하고 싶지 않은 팀장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팀원들에게 어떻게 했길래 이런 결과가 나왔냐고. 공개 사과하라는 거죠. 팀원들에게. 그런데 저는 정말 영문을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답답하고 억울함이 몰려왔습니다. 이전에 회사에서 MBTI 검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ENTJ 완전 독재자라고 그 스타일로 그동안 일한거냐 부터 온갖 비난이 저에게 쏟아졌습니다.

이때부터 회사가 지옥같았습니다. 부모님께는 바로 퇴사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아버지가 일단 잘 수습하고 퇴사해도 늦지 않다고 충고해주셔서 일단 이 시간을 견뎌보자 했습니다. 사람들이 다 무섭고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것도 싫어서 계단으로 오르내리며 출퇴근을 했습니다. 울면서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왜 사람들이 내가 싫다고 하지? 그동안 그럼 왜 아무 이야기도 안했지? 내가 눈치를 못챈건가? 생각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야근은 고사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회사는 종로였고 집은 인천이었는데 오가는 버스에서 눈물이 너무 나서 울지 않으려고 핸드폰으로 TV를 보려고 켰는데 그때 한참 지금은 너무 유명해지신 오은영박사님이 출여하셨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를 방영하고 있었습니다. 거기 등장하는 아이들 모습에서 저의 어린 시절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의 나를 조금씩 드려다 보게 되었습니다. 인사과장님이 표현한대로 ‘악인’이라고 하는 내가 정말 그런지, 내 성격, 성질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왜 그렇게 되었을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좀 사태를 수습하면서 독서가 필요했습니다. 관련 책들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회사가 종로3가여서 광화문 교보문고까지 걸어서 잘 갔었는데 터덜터덜 세상 잃은 모습으로 그곳을 방문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연히 인생책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이무석교수님의 [30년만의 휴식]이라는 책이었습니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휴’의 이야기가 정말 저의 이야기와 같았습니다.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나라서 그런게 아니라 그럴 수 있는 거구나. 위안이 되었습니다. 휴가 달라진것 처럼 나도 달라질 수 있겠구나. 그러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희망을 가지게 되고 방법들을 찾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처음으로 독서치료라는 것을 경험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독서치료는 직접적 상담으로도 이루어지지만 여러 상담 기법 중에서 자가치료가 가능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 나왔던 아이들의 이야기가, [30년만의 휴식]의 휴의 이야기가 저를 다시 살게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혹독한 봄을 보내고 겨울 퇴사 전까지 아침마다 광화문 스타벅스에서 기도하면서 그러면 이제 뭐하고 살아야하는지, 다시 길을 묻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보여주셨던 그림이 3층으로 된 책과 함께 하는 교육센터였습니다. 1층은 북카페, 2층은 수업도 하고 상담도 하는 방들, 3층은 내가 사는 곳. 막상 보여주시기는 했는데 책으로 수업을 할 수 있을까? 독서로 수업을 한다는 건 어떤걸까? 막연했습니다. 개인적인 행위인 독서가 내 인생에 어떤 쓸모가 될지 알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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