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내 기준에서는 확실히 얘기가 된다
얘기가 된다, 무슨 말일까? 이하는 7년 차 현직 기자 사샤의 해석입니다.
말 그대로 이야기가 된다는 뜻. 기사로 쓸 만한 내용이다, 기사로 쓸 수 있을 만큼 주제가 선명하고 사실에 기반한 근거들이 충분히 수집됐다, 그동안 보도된 사례가 전무하거나 제대로 보도된 적 없는 중요한 문젯거리다 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라고 이해하고 있다).
그야말로 ‘피 터지게’ 싸웠던 시절이 있었다. 귀가 뜨끈뜨끈해질 때까지 스마트폰을 귀에 갖다 댄 채로 전화를 돌리고 발로 뛰며 사람들을 만나 취재를 했었다. 그 결과로 ‘이런 기사를 쓰겠다’고 아이템 발제안을 정리해 부장에게 내밀었다. 기자들 말로 이 아이템은 분명 “얘기가 된다”고 주장했고 여지없이 확신했다. 그러나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아이템은 ‘킬’(kill)이 되곤 했다. 어떻게든 쓰고 싶은 기사를 쓰기 위해 부장을 설득했던, 아니, 부장과 무지막지하게 싸웠던 불꽃같은 과거가 여느 기자들처럼 내게도 있었다.
노동절 전날. 휴일을 앞둔 직장인의 마음은 점심시간 이후부터 깃털처럼 떠다닌다. 예고도 없이 사건이 터진다. ‘얘기가 되는’ 아이템을 두고 (내 기준으로는) 말도 안 되는 토론이 붙은 상황을 뒤늦게 인지한다. 이어폰을 끼고 대선 후보들의 목소리를 단어 단위로 듣는 중이었다. (요즘 대선 후보들 발언의 사실 여부를 검증하는 팀에서 일한다) 눈치껏 살펴보니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후배 팀원이 아이템 발제안을 냈다. A 후보의 젠더 분야 발언이 사실과 다르다면서 통계 수치를 비롯한 근거들도 첨부했는데, 선배들끼리 “얘기가 된다, 안 된다” 설왕설래가 벌어진 것.
슬쩍 봐도 ‘얘기되는’ 아이템이다. 물론 제대로 취재해 보기 전까지 백 퍼센트 확신은 금물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렇게 논쟁까지 벌일 일은 아니다. ‘아저씨들이 젠더 분야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구나.’ (선배들, 아저씨라고 해서 죄송합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내가 쓰겠다고 가져온 기삿거리도 아니니 사태를 관망하고 있는데 어라, 이거 점입가경이다. 악의를 품은 이 대통령 후보 말이 결국은 맞다고 매듭 지을 분위기다. 못 참고 몇 마디 뱉는다. 이러저러한 이유들로 ‘후다닥’ 간단하게, 깔끔하게 쓸 수 있는 기삿거리 아니냐고 말한다. ‘좋은 말로 할 때 기사 쓰게 하라’는 내 의도만큼은 선배들에게 전달됐을 거로 확신한다.
그런데 뭔가 잘못됐다. 가슴이 벌렁거리고 있다. 차분한 음성으로 조곤조곤 설득해야 하는데 감정이 앞서고 있다. 감정 조절이 안 되며 선배들과 대화하겠다는 의지가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쓰지 말라고 하면 안 쓰지, 뭐. 막말로 내 기사도 아닌데.’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다. ‘내 기사’를 간절하게 쓰고 싶어 ‘박박’ 우겨서라도 부장이든 어떤 선배든 싸움터로 끌고 갔던 나는 보이지 않는다. 무모하긴 했어도 참 순수했던 열정이라는 친구가 오래도록 숨 고르기를 하고 있다. 쿵쾅 대는 심장을 부여잡고서.
누구와도 싸우고 싶지 않다. 스트레스받기 싫다. 극도의 긴장 상태에 몰려 승모근이 아파지길 원치 않는다. 첫 직장에서도, 심지어 11년 전 대학 신문사에서부터 기사를 마음대로 못 쓰게 하는 무수한 윗사람들과 싸우며 살았다. 그렇지만 나도 안다. 내가 취재해 온 것들을 기사의 형태로 세상에 공개하려는 이 과정이 실은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각기 다른 생각과 경험을 가진 동료들과 내가, 가장 옳은 결정으로 나아가기 위해 정성껏 설명하고 설득하고 서로를 이해해 가는 시간임을 누구보다 확실히 알고 있다.
이 과정, 이 시간은 피할 수 없다. 이 업을 가진 이상 그렇다. 어떤 사안에 대해 모두가 똑같이 바라보고 똑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똑같이 결정하지 않기 때문에, 절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힘들 수밖에 없는 작업이다. 이 작업을 거쳐야만 내가 발견한 ‘사실의 조각’들이 기사로 보도된다. 세상에 도움이 되는 작디작은 이 기사가 빛을 본다.
오히려 이 작업을 더 잘할 수 있도록 나름의 기술을 연마해야 한다. 대화의 기술이든 처세술이든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완벽한 발제안이든 그 무엇이든 말이다. 덜 힘들게, 더 좋은 기사를 보도하려면 나만의 칼을 날렵하게 잘 갈아야 하는데 쉽지 않다. 칼 가는 연장이 문제인지, 애초에 칼이 무뎠던 건지, 다른 칼로 교체할 때가 된 건지…… 그러다 ‘우선 퇴근하자!’를 속으로 외치고는, 단단히 꼬여버린 머릿속을 비워 집으로 터덜터덜 향했던 것이다. 그러기를 벌써 7년 째다.
(그나저나 후배 팀원의 아이템은 어떻게 됐을까? 또 다른 사건이 벌어지고 마는데…… 다음 편에서 계속)
2편 마무리 전이지만 갑자기 등장한 사샤입니다.
참고로 이 ‘싸움’(positive)의 과정으로 아이템 발제안이 더 좋게 바뀌는 경우도 많습니다. 부장(데스크)이나 선배들의 피드백 덕에 제가 생각지도 못했던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될 때도 있고요. 기사 주제를 더 ‘얘기 되게’ 수정하기도 합니다. 결정적인 오류가 발견돼 ‘다행히’ 아이템이 ‘킬’ 되기도 하죠. 그래서 이 싸움, 바로 아이템 ‘데스킹’의 과정은 언론사에서 아주 아주 중요하면서도 필수적인 절차랍니다.
언론사 종사자가 아니라면 알기 힘든 내용이고, 직업 생태계를 설명하는 글이다 보니 저도 많이 어렵네요. 최대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오해 없이 전달드릴 수 있도록 다음 편에서도 파이팅 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