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 선배 죄송합니다 고맙습니다 존경합니다
2편 보시기 전에 1편 내용 요약부터 보고 가시죠
노동절 전날에 휴일을 앞두고 부푼 마음으로 오후 근무 시간을 보내던 사샤. 후배 팀원이 내놓은 젠더 분야 아이템 발제안을 두고 선배들끼리 “얘기가 된다, 안 된다” 설왕설래가 벌어진 상황을 뒤늦게 알아챈다. 백 퍼센트 ‘얘기되는’ 아이템을 두고 무용한 싸움이 이어진다고 느끼며, 사샤는 과거 자신이 쓰고 싶은 기사를 쓰기 위해 윗사람들과 싸울 수밖에 없었던 날들을 떠올린다. 그러다 상부 승모근의 통증을 느끼며 언제나처럼 ‘우선 퇴근하자!’를 속으로 외치고는 회사를 떠나고 마는데……
노동절 전날의 ‘싸움’은 그새 잊혔다. 4월 30일 퇴근과 동시에 깃털처럼 두둥실 하늘로 떠오른 내 마음은 노동절을 맞은 다음 날까지 바닥에 내려오지 않았다.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남편과 헬스장에 갔고 얼굴이 시뻘게질 때까지 뛰었다. 운동 유튜버 언니가 하는 스트레칭을 따라 하며 잔뜩 서 있는 승모근도 쭉쭉 늘려줬다. 집에 돌아와 단백질과 채소를 곁들인 건강한 음식을 먹었다. 휴일 기분을 만끽하며 여유를 즐기다 아늑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동네 스포츠센터로 향했고 ‘이너 피스’와 함께 요가 수련을 했다. 그리고 5월 2일 오전 10시, 바로 지금, 회사에 도착한다. 기다렸다는 듯이 사건이 터진다. 2차 사건의 발발이다.
팀장인 A 선배가 회의를 소집한다. 여느 때처럼 발제할 아이템이 있는지 모두에게 묻는다. 잠깐의 침묵이 회의실을 훑고 간 찰나.
“그……”
그제 A 선배와 얘기가 되니, 안 되니 하며 토론을 벌였던 B 선배가 낮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아, (내 기준) 이해 안 되는 토론이 펼쳐졌던 그제, 4월 30일의 상황은 다음과 같이 마무리된 바 있다. B 선배가 후배 팀원의 아이템 발제안을 토대로 추가 취재를 해 기사를 써보기로 매듭이 지어졌다. 그들의 대화를 가만 듣다 보니 팀장인 A 선배는 B 선배와 달리 ‘웬만하면 기사로 한 번 써보자’는 입장이었다. (역시 섣불리 오해하고 판단하면 안 된다) 후배들과 나만 들어가 있는 SNS 대화방에서 나는 “답답”이란 두 글자를 전송했더랬지만 놀랍게도 그날의 결론은 ‘좀 더 알아봐서 기사를 쓰도록 노력해 보자’가 된 것이다. 이 결론이 못마땅하다는 표정이 B 선배 얼굴에 스쳐 지나가는 순간을 난 놓치지 않았지만, 어차피 회사 생활이라는 게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없는 것임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그래서 두고 보자는 생각으로 우선 사무실을 나왔던 것이었다.
그리고 5월 2일 오전 10시 10분. B 선배는 또 “얘기가 안 된다”라고 말하고 있다. 해당 대선 후보의 말이 특정 집단을 상대로 한 악의적인 발언인 것은 맞으나, 그 내용이 ‘대체로 사실’이기에 기사화하기에는 애매하다고 주장한다. 이 대선 후보의 말과 관련한 사전 지식을 뽐내며 B 선배 특유의 똑똑한 척이 은은하게 느껴진다. (선배께는 죄송하지만 그의 지식을 실시간으로 팩트체크해보고 싶은 심정이다) ‘얘기 안 되는’ 토론이 눈앞에 반복 재생되는 모습을 목도하며 아예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리겠다고 결심한다. 관심도 없는 스마트폰 화면 쪽으로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는 의자도 뒤로 확 젖혀 앉는다. (이미 젖혀져 있는 의자지만 이 사실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쿵쾅쿵쾅’ 뛰는 심장을 외면한 채 A와 B, 그제는 잠시 자리를 비워 토론에 참여하지 못했던 C 선배까지 합세해 2차 사건의 규모와 기세는 우상향 그래프를 그린다. 언제 끝날지 모를 지난한 싸움이 계속되며 견디지 못하고 회의실을 박차고 나온다. 화장실 용무가 급하기도 했으므로 겸사겸사 심호흡 세 번을 크게 한다. 되돌아가 어떤 언행을 취할지 고민한다. 자리를 오래 비우기까지 하면 무례해 보일 것 같아 다시 회의실 문을 연다. C 선배가 말한다.
“내가 아는 사람이 한 명 있는데, 지금 한번 전화를 해볼게.”
토론 중인 주제에 대해 잘 아는 현장 관계자가 지인이니 바로 전화 취재를 해보겠다는 C 선배. 희망의 불모지와 같은 이 공간에 흡사 한줄기 빛을 내는 저널리스트의 등장이다. (C 선배 이야기는 곧 한 편의 글로 소개할 계획이다) 그렇다. 실은 숫자와 글자만 잔뜩 적힌 문서들만 보고 “얘기가 안 된다” 섣불리 판단하고 있을 뿐 여태껏 ‘진짜’ 취재는 시작도 안 한 상태. ‘그니까 취재나 좀 해보고 말해’라는 말이 턱 밑까지 차오른 와중에 C 선배가 제대로 ‘사이다’를 날린 것이다. “여보세요”와 함께 회의실을 나간 C 선배가 “내가 통화를 해보니까”라고 말하며 이 불모지로 들어선다. 문이 일으킨 바람으로 C 선배의 하얀 앞머리가 살짝 휘날린다. (그는 우리 팀 6명 중 가장 윗선배다) 아, 멋있다.
긍정의 도돌이표가 던져진다. C 선배의 취재 결과 ‘얘기가 된다’는 쪽으로 무게추가 기운다. 팀장인 A 선배도 동조하며 (동조할 수밖에 없는 취재 결과가 나왔다) B 선배에게 추가 취재와 기사 작성을 재차 부탁한다. 이번에도 불만스러운 얼굴이 발견되지만, 나는 오른쪽 입꼬리를 슬며시 올리며 다른 곳을 바라본다. 본인이 궁금한 것들을 아이템을 발제한 후배 팀원에게 알아보라고 지시하는 B 선배. ‘왜 저 선배는 취재를 안 할까’ 생각하며 나 역시 불만을 품는다. 벌써 오전 11시가 지나간다. 드디어 사건 종결이다.
5월 7일 오전 11시 30분. 기사가 나갔다. 과연 ‘얘기되는’ 아이템이었다. 취재를 더 해보니 역시나 문제 삼았던 대선 후보의 말은 ‘대체로 거짓’으로 판명 났다. 젠더 분야에 뿌리내릴 수도 있었던 오류를 B 선배와 후배 팀원의 기사가 바로잡았다. 아이템 발제안의 기사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이 아이템을 최대한 다뤄보자고 여기며 꼼꼼하게 취재한 끝에, 좋은 기사가 보도됐다. B 선배도 진심으로 고생 많으셨다. 20여 년 기자 생활로 취재 전문가와 다름없는 B 선배가 동료들의 의견을 수용해 수준 높은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진절머리가 나기도 하는 이 회사를 여전히 다니는 이유를 이날 확인했다. 이제 ‘도끼눈’은 그만 뜨고 나야말로 좋은 기삿거리를 찾기 위해 매의 눈을 떠야 한다. 선배들은 그만 미워하고 말이다.
드디어 <‘얘기되는’ 아이템> 시리즈를 마무리했네요. 반갑습니다. 사샤입니다.
어려웠습니다. 물론 얘기가 된다, 안 된다라는 언론 판에서의 표현은 이미 알려져 있지만 이를 둘러싼 현직 기자들의 치열한 토론과 싸움의 과정을 적은 글이 있었나 싶습니다. 현실을 잘 드러낼 수 있도록 노골적으로, 솔직하게 쓰려다 보니 선배들을 너무나 미워하고 무시하는 ㅎㅎ; 후배로 저 자신이 그려졌네요. 물론 일정 부분 사실이기도 합니다만...... ㅎㅎ;
하지만 선배들이 그저 밉기만 하고 못마땅했다면 전 벌써 이직해버렸을 겁니다. 퇴사를 한번 해보기도 했고요. 아무튼 B 선배께는, 선배는 까맣게 모르시겠지만 죄송하다는 말씀을 몰래 드립니다 허허...... 사실 B 선배는 멋진 기사를 참 많이 써오신 분입니다 허허허 (존경합니다 정말요)
<‘얘기되는’ 아이템> 시리즈가 기자들의 ‘업’ 이야기, 저의 ‘업’ 이야기를 잘 보여준 글이었는지 걱정이 됩니다만 뭐, 이미 여러분께 공개를 해버렸으니 다음 글로 만회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글은 제 계획보다 조금 늦어진 월요일 아침에 공개됩니다. 이 글을 만난 직업인이자 직장인인 독자님들, 오늘도 독자님들 업에 파이팅 하는 날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즐겁게 파이팅 해보겠습니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