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나의 심연

그냥 나

나의 심연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다

by 사샤

안녕하세요. 사샤입니다.


브런치 작가로 선정된 김에 “사샤, 이제부터는 제대로 네 글을 써봐라”는 세상의 계시(?)라고 믿고 부족한 글이지만 서랍장 밖으로 꺼내보려고 합니다.


‘그냥 나’는 지난해 10월에 초고를 쓴 글입니다. 왜 매거진의 이름을 ‘나의 심연’이라고 지었는지 먼저 설명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이 글부터 꺼내봅니다.


‘심연(深淵)’을 네이버 어학사전에 검색해 보니 ‘깊은 못, 좀처럼 빠져나오기 힘들지만 건너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것’ 등으로 풀이되네요. 제 심연은 윤동주 시인의 작품 ‘자화상’에 나오는 ‘우물’과도 비슷합니다.


제 심연을 보시며 독자 여러분의 심연도 한 번쯤 들여다보시길 강추드립니다.




나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 문구에 꽂힌 이후부터다. “만화를 그리면서 나는 항상 연습을 한다. 내 심연을 들여다보는 연습. 그 안에서 나는 무언가를 찾는다. 아무도 건들 수 없는 나만이 가지고 있는 그것. 그렇게 계속 나 자신을 담아보겠다고 다짐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만화로 그려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한 작가가 쓴 문장들이다.


KakaoTalk_20250331_163854145.jpg 난 작가님의 열렬한 팬이다 (출처: 'kim_ji1' 인스타그램 계정)


이야기로 나 자신을 담아보겠다는 마음이 내게도 있지만 아직은 머나먼 미래에 있는 크나큰 목표일 뿐이다. 현재의 나는 당장 심신 안정을 위해, 나 자신을 이해하려는 몸부림 정도로 내 심연을 찾아 나섰다.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을 구분하기 어렵다. 내가 재밌어서 하는 것과 억지로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로 산란해져만 가는 내 마음을 자각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쏟아내듯이 수첩에 써 내려간다. 아끼는 만년필을 손에 쥐고 거침없이 단어와 문장들을 쓴다. 잘 쓸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 펜촉은 계속해서 글을 만든다. 한 장, 두 장, 세 장. 수첩 페이지가 멈추지 않고 넘어간다. 큰 기대는 없다. 분초 단위로 나 자신을 기록하다 보면 내 심연의 정체를 조금씩 알게 되지 않을까 믿고 있다.


마침, 심리 상담을 받고 있다. 어쩌다 보니 연례행사처럼 상담 센터를 매년 찾는다. 회사 스트레스 때문이다. 정신적인 임계점에 다다랐다고 느낀 9월 초에 시작해 최근 여섯 번째 상담을 마쳤다. 상담사 선생님은 질문에 질문을 더해가며 양파 껍질을 까듯이 나 자신을 덮고 있는 베일들을 하나씩 벗겨냈다. 내가 누구인지, 그 답을 향해 어렴풋이 나아가는 중이다.


그리고 지난 10월 18일, 나는 만년필 노트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나도 항상 궁금했었다. 난 왜 사각지대를 취재하고 싶을까.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을까. 내가 만나고 싶은 소외된 사람들이란 학생, 노동자, 어린이, 청소년, 노인, 여성. 내 과거였거나 현재인, 미래가 될 사람들이었다. 취재와 보도는 순전히 내 이야기를 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걸까. 내가 사각지대에 있다고 생각해서, 소외됐다고 여겨서, 그래서 내 이야기를 널리 널리 설득력 있게 알리고 싶어서 사각지대를 뛰는 기자를 꿈꿨던 걸까.”


돌아보면 나는 언제나 답답했다. 말하지 못해 안달이 났었다. 모범생이라고 불렸던 나는 모범적인 학생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배웠다. 모범생이란 정체성은 타고 난 게 아니었다. 도대체 왜, 굳이 이 정도로 쉴 새 없이 공부하고 시험을 보고 평가를 받으며 1등을 목표로 달려야 하는지 누구든 붙잡고 묻고 싶었다. 그 이유도 모르고 지금처럼 살기는 싫다며, 내가 겪고 있는 이 불합리한 세상을 다 털어놓고 싶었던 것 같다.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줄, 믿을 만한 기자 한 명만 있었다면.


김밥천국에서 알밥은 못 시켜도 그보다 3천 원은 싼 모듬 김밥 한 접시로 배고픔을 달래며 각종 시험을 준비했다. 입시든 입사든. 불합격 소식이 머릿속을 꽉 채운 늦은 밤에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길. 거의 그때마다 창밖을 바라보며 ‘보이지도 않는 먼지가 돼버렸으면……’이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결국 어딘가에 합격해 내가 소속할 곳이 생겼을 때는 안도감부터 들었다. 더는 이렇게 살지 않아도 된다는, 드디어 떳떳하게 알밥을 내 돈 주고 사 먹을 수 있게 됐다는 사실 하나에 눈물이 났다. 성취의 기쁨은 그에 비해 티끌 같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참 맛있게 생긴 김밥천국 알밥 (출처: '20대 뭐 하지?' 페이스북 계정)


나는 세상에 소리치고 싶었다. 당연하게 취급되는 내 인생이, 그 나이에는 다 그렇게 해야 한다며 비슷한 길을 강요받는 수많은 ‘나’의 인생들이 과연 온당한 것이냐고.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다, 사는 게 원래 그렇다는 말들 속에서 귀청이 울릴 만큼 “아니”라고 말하려고 했다. 비록 나는 이렇게 살았어도 나와 똑같이 사는 사람은, 학생은, 노동자는, 아이는, 여성은 앞으로 없어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내게 마이크를 주지 않았다. 내 목소리는 내 안에서만 맴돌았다. 과거의 나는 당장 먼지가 돼 버려도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소외된 존재에 불과했다. 목이 터져라 말하려고 기자를 꿈꿨던 걸까. 소외됐던 나 자신을 기자라는 직업인으로 진화시킴으로써 어두컴컴한 사각지대에서 스스로를 탈출시키려고 했던 건 아닐까.


내 심연을 째려보다 여기까지 왔다. 기자가 되려고 했던 ‘진짜’ 이유를 마침내 깨닫게 됐다. 이제 더 깊은 심연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기자를 꿈꿨던 과거의 나, 기자를 하고 있는 현재의 나는 마음 한구석에 잠시 내려놓는다. 그리고 ‘그냥 나’는 누구인지 알아보려고 한다. 실제 나는 심리 상담을 하는 내내 기자라는 단어를 뱉지 않고는 한 마디도 말을 못 하는 수준이다. 내 삶에서 ‘기자’가 사라졌을 때 ‘나’도 덩달아 사라질까 봐 두렵다. 그러나 분명 기자는 내게 전부가 아닌 일부다. 일부에 불과한 그것을 뺀 나는 어떤 사람인지 간절히 알고 싶다. 그렇게 새로운 세상으로, 삶으로 나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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