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에서 찾은 진리
하루 만에 돌아온 사샤입니다.
첫 글을 올리고 나서 소중한 라이킷을 몇 분께 받고 보니 또 글을 올리고 싶어 근질근질하네요. 초장부터 에바 쎄바(?)하지 말자고 생각했건만...... 은은하게 오래오래 타오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하하.
‘나의 심연’ 시리즈의 출발을 했으니, 가장 최근의 나의 심연도 보여드리면 어떨까 싶어서요.
실은 제가 한 달에 에세이 한 편씩 쓰는 글쓰기 모임을 하고 있는데요. 글벗님들께 먼저 보여드리고 브런치에도 올려봅니다. 만년필로 휘적휘적 아무 글이나 막 쓰는 블랙 노트에 쓴 것 말고는 가장 최근 글이에요.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향하는 비행기 안. 자정이 지나 이륙한 비행기는 객실 불이 거의 꺼진 상태다. 목 베개를 끼고 담요를 덮고 잠을 청하는 승객들 사이에서 눈부신 스마트폰 화면을 조용히 들여다본다. 13년 전 방영된 KBS 다큐멘터리 ‘다르마’ 4부작을 보고 있다. 4시간 가까이 되는 분량의 영상을 미간을 찌푸린 채로, 미동도 없이 쳐다보고 있다.
귀국한 뒤에야 검색해 보니 ‘다르마’는 ‘진리’를 뜻하는 종교 용어라고 한다.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승려와 사제들은 각자 다른 종교에 귀의했음에도 입을 모아 하나의 다르마를 말한다. 사필귀정. 새옹지마. 다시 말해 모든 일은 순리대로 흘러갈 거라는 것. 우리는 모두 한 곳에서 왔고, 서로 연결돼 있으며, 원래 왔던 곳으로 우리 모두 되돌아갈 거라는 것. 세상만사가 우연인 줄 알았으나 실은 필연 즉, 반드시 그렇게 될 일이었다는 것.
순리에 따라 무사히 로스앤젤레스에 착륙한 비행기에서 내려, 또 다른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페루의 수도 리마로 향하는 비행기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마추픽추로 가는 여정이다. 초등학생 때 우연히(어쩌면 필연적으로) 만화책으로 알게 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서도 마추픽추에 꽂혔었다. 20년가량 품어온 어린이의 꿈을 실현하러 가는 길. 어른이 된 마음은 여전히 빠르게 변하는 것들로 꽉 차 있는 한국에 매여 있다.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말고 일기장에 급하게 적어 내려간다.
‘모든 것은 변한다. 변하는 것은 내가 아니다. 괴로움은 집착에서 온다. 변하는 것, 내가 아닌 것에 집착할 필요 없다. 생각과 감정이란 있다가도 없는 것. 이런 생각과 감정이 내면에 오간다는 사실 자체를 알아차리면 그뿐이다. 알아차리는 그때 과거와 미래를 떠돌던 내가 현재로 돌아온다.’
자녀가 범죄로 살해돼서, 참을 수 없는 통증 때문에, 어린 시절 부모의 가정폭력으로 괴로움에 사로잡힌 동서양의 사람들은 ‘알아차림’을 치열하게 연습한다. 스스로를 괴롭게 하는 생각과 감정의 움직임을 알아차려 어떻게든 지금 이 순간, 내가 서 있는 이곳에 존재하려고 한다. 어두컴컴한 비행기 안에서 영상으로 만난 그들로 인해 나 역시 알아차린다. 바람 잘 날 없는 직장 생활, 불안정한 진로, 한계치가 정해진 듯한 용기와 끈기…… 머릿속을 끊임없이 헤집어 놓는 생각과 감정은 “내가 아니다”라고 간절히 되뇐다.
꼬박 하루는 족히 넘어선 비행을 견딘 대가로 퉁퉁 부은 발이 드디어, 비행기 바깥의 땅에, 페루 땅에 닿는 그 시간, 분, 초. 나는 과거와 미래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나 현재로 돌아온다. 이제부터는 철저히 ‘꿈의 시간’이다. 내게 변하는 것이란, 생각과 감정이란 오직,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는 두어 가지가 전부다. 벅차다, 신기하다, 물론 힘들다, 그런데 황홀할 만큼 행복하다 따위의 것들이다.
아득한 높이의 해안 절벽 아래로 펼쳐진 태평양 바다, 그 파도에 몸을 맡겨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사막 한가운데 있다는 오아시스 마을로 갔다. 사륜구동차를 타고 사막 꼭대기까지 올라가 번지 점프 같은 모래 썰매를 탔다. 멀미약을 잔뜩 먹고 경비행기에 탔다. 창밖 너머로 고대 잉카인들이 땅바닥에 그려 놓은 우주인 그림을 발견했다. 신비롭게도 무지갯빛을 띠는 산 정상에도 올랐다. 백두산 2개 높이의 고산 지대에서 얼굴은 누렇게 뜨고 숨도 잘 쉬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추픽추를 만났다.
언젠가 반드시 이렇게 될 일이었을까. 생각한 대로 이뤄진다고 믿고 살아온 결과였을까. 마추픽추가 그 옛날 마음에 들어온 이후 지금껏, 나로선 헤아리기 힘든 어떤 순리대로 흘러온 것뿐인 걸까. 작은 라마가 자수로 새겨진 베이지 색 챙 모자를 쓰고 마추픽추에 살고 있는 라마들과 사진을 찍는 오늘은, 굳이 집착하고 괴로워하지 않았어도 결국에는 찾아왔을 오늘이었을까. 그저 수많은 ‘오늘’들을 묵묵히 살아왔다면 말이다. 아니면 앞으로라도 수행하듯이 오늘을 살라고 세상이 가르쳐주고 있는 걸까.
늦은 밤에도 불이 환하게 켜진 작은 방 안. 한국에 돌아가서는 본격적으로 종교에 심취할 것처럼 분위기를 풍겼지만, 순식간에 속세로 복귀했다. 다시 속세의 시간이다. 생각과 감정, 변하는 것들에 집착해 괴로움은 깊어진다. 이 글을 쓰며 문득 알아차린다. 내가 페루에 있었음을. 꿈꾸는 기분으로 현재를 살았음을. 그 현재가 오늘도 선물처럼 찾아왔음을. 다르마는 이미 내 안에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