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혼자 할 수 있다

나의 ‘우르드바 다누라아사나’ (활 자세)

by 사샤

‘구례옥잠’이란 게스트하우스에 와 있다. 강원 양양에 이어 퇴사 후 두 번째 나 홀로 여행이다. (퇴사 썰 궁금하신지? 최근 글들 참고.) 수요일 오전 9시,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전남 구례에 도착했다. ‘인생 한우내장탕’을 만난 것을 시작으로 소품숍과 카페를 겸한 귀여운 공간, 독립서점까지 알차게 돌고 2박을 예약한 이 숙소로 돌아왔다. (순서대로 원조목화식당, 텃밭 카페와 소품, 봉서리 서점. 셋 다 강추.) 숙소에서 빌려준 자전거에 올라 칼바람을 맞으며 수십 분을 달렸더니 노곤노곤하다. 다만 지금 이 순간 게스트하우스 내 방 책상에 앉아 나는 다시, 요가를 떠올린다.


여행 전날이었던 어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를 취재하며 친분을 쌓은 국회 보좌진 한 분과 확신의 맛집인 이자카야에 갔다. 그런데 이 비서관님, 알고 보니 요가 한지 5년 된 프로 요기니셨다! 사케 들이키다가 순간 어찌나 놀랍고 반갑던지. 대화는 순식간에 요가로 흘러갔다. 나는 발끝도 못 따라갈 수준으로 높은 아사나 숙련도는 물론, 요가의 가르침을 최초로 정립한 경전인 요가수트라를 필사하실 정도로 내공을 갖고 계셨다. 제주에 계신 요가계 명스승, 한주훈 선생님 요가원을 꼭 다녀와야 한다며 퇴사한 김에 당장 제주로 날아가라고(?) 강권(?)도 하셨다. 요가 수다를 누군가와 이렇게 열띠게 한 적이 있었던가.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와 ‘우르드바 다누라 아사나’(활 자세)에 대해 이야기했다. 당연히 그는 할 줄 알았다. 분명 어려운 자세라고 했다. 나도 이 아사나를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원래는. 혼자서 한 적도 있다. 선생님 도움 없이 활 자세를 성공한 게 얼마 전이다. 그러나 성공을 맛본 뒤로 다시 안 되고 있다. 선생님 손길이 조금만 스쳐도 자세가 완성되긴 하지만, 그뿐이다. 성공했던 그때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실패가 이어지고 있다.

바로 이거죠. 우르드바 다루나 아사나 (출처: 요가로그)

전 직장에서의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연차를 소진 중이던 지난달의 마지막 날. 오전 10시, 동네 요가원에서의 두 번째 수업이 시작됐다. S 선생님의 하타 요가 수업. 이날 전반적으로 아사나들이 잘 됐다. 스바르가드비자 아사나, 일명 극락조 자세를 얼추 성공했다. 공중에 띄운 다리를 일자로 펴진 못했지만 예전과 비교도 안 될 만큼 꽤 펴냈다. 선생님이 인증샷까지 남겨줬으니까. 엄청난 성취감이 온몸을 휘감았지만 활 자세는 실패했다. 유독 내가 완성하고 싶은 아사나이기에 ‘저 어떻게 하면 좋아요. 흑흑흑’ 하고 징징 대니 선생님은 정색하고 대답하셨다.


충분히 혼자 할 수 있어요.


‘팔을 매트 간격으로 벌리고 팔꿈치는 안쪽으로. 헤어 라인을 손목 방향으로 굴려서 머리 즉, 위쪽 방향으로 나아가야. 결국 방향의 문제. (여기에 별표.) 어디 안 풀려 있는 곳도 없고 힘도 있어서 꾸준히 요가원 나오면 충분히 할 수 있음.’


이날 선생님 말씀을 정리해 놓은 내 요가 일지의 일부다. 나는 요즘 ‘요가하는 나 = 그냥 나’란 수식에 꽂혀 있는데 역시 또 이 수식이 머릿속에서 발동했다. 요가를 통해 삶을 들여다본다. 나 사샤, 인생 항로에서 방향을 잡지 못했던 것뿐일까. 유연성도 있고 힘도 있는데, (사회가 추구하는) 성공 혹은 (내가 추구하는) 완성을 이뤄낼 수 있는데 왜 나 자신만 나를 모르고 스스로를 능력 부족, 함량 미달이라고만 생각했을까. 요가든 삶이든 두려움을 이기면, 용기를 낸다면 모두 후루룩, 하고 풀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닐까. <신인감독 김연경> 속 김연경의 말을 빌려 정리하면 이런 거겠지. “너 자신을 크게 생각해. 할 수 있어.”


그리고 4일 뒤. 거짓말 같이 활 자세를 완성했다. 혼자서. 수년이 지나도 못 해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던 활 자세를 내가 했다! 아무리 어렵고 못할 것 같은 것들도 언젠가는, 무조건,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느 때보다 절실히. 시간과 노력, 집중력이 쌓인 상태에서 용기까지 더해지니 크고 작은 성취가 하나씩 달성되고 있다, 라고 요가 일지에 썼었다. 대단해 박사샤, 라고도 썼고.

그러나 6일 뒤 요가 일지에 나는 ‘조급함’이라고 썼다. 침착하게 그리고 천천히, 아사나를 시도하고 그다음 아사나로 넘어가야 하는데 마음만 급하니 균형도 못 잡겠고. 힘도 달리는 것 같고. 이런 이유로 전사 자세가 잘 안 되더니 마찬가지로 활 자세도 안 됐다. 몸이 부우웅, 하고 천장 방향으로 떠야 하는데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었다. 완성 못한, 실패했던 과거로 회귀했다. 하아아, 이번에야말로 정말 어떻게 하면 좋을까.


조급해하지 말고 본래의 내가 될 수 있도록 차분히, 매 순간을 최선만 다해보자고 다짐했다. 그다음 주에는 ‘오늘은 오늘의 수련일 뿐. 다음 수련 때 또 하면 된다’고 되새겼다. 겁내지 말자고, 활 자세가 되든 안 되든 그저 요가를 즐기자고 나를 다독였다. 성공과 실패, 모두 과정에 불과하니 그저 알아차리기만 하자고 생각했다. 동작을 하며 아프면 아프다고 알아차리고, 힘들면 힘들다고 알아차리고, 결국 동작을 완성하지 못하면 완성 못한 상태를 알아차리고, 완성해내면 또 그때 드는 생각과 감정을 알아차리고…. 속상하더라도 이렇게 나의 활 자세를 받아들여보자고, 마음먹었다.


11월 18일에 내가 쓴 요가 일지 일부. ‘성공도 실패도 진심 그저 다 과정일 뿐인 건지’라고 썼다


이 글을 쓰며 구례 여행 첫날이 지나고 있다. 서두에 종일 재밌었던 일만 썼지만 짜증 나고 화나는 일도 있었다. 2박 3일 짐을 캐리어에 싸왔는데 버스 터미널, 숙소 어디에도 짐을 못 맡겨 결국 택시 타고 식당에 가 늦은 점심을 먹었다. (버스 터미널 물품 보관함은 현금이 없어, 체크카드도 안 챙겨 와 실패. 숙소는 사장님이 급한 일이 생겨 잠깐 연락이 닿지 않아 실패.) 자전거를 타는데 예상과 달리 차들이 계속해서 자전거 바로 옆을 위협하며 달려서 승모근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오랜만에 어깨 통증을 느끼고 있다. 그러면 오늘 여행은 실패한 걸까? 아니, 맛집 탐방 등에 만족했으니 성공한 여행인가? 그냥 다 여행이다. 여행의 과정인 것이다.


흔히 삶을 여행에 빗대듯이, 삶의 과정과 요가의 과정을 받아들이려고 한다. 알아차리려고 한다. 나의 활 자세에도 앞으로 수많은 과정이 기다리고 있겠지. 용감하게 그 과정들을 맞이할 거다. 나만 몰랐던 거지, 나는 언제나 그 과정들을 제대로 지나갈 깜냥이 되는 사람이었다. 그 깜냥을 더 키워나갈 사람이기도 하다. 처음 지내보는 타지에서 진짜 나의 모습, 그냥 나의 실체를 이렇게, 새삼스럽게 기억해 본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