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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치 Aug 26. 2021

08.23.21

일기를 쓴다는 것

뉴욕에 도착한지 삼일이 지났다. 한국에 있을 때와 달리 연락 오는 사람도 없고, 최소한으로 했던 가족구성원으로서의 역할도 없다. 지난 3일간 식료품을 사면서 그리고 공항으로 마중 나온 친구와 한 대화가 전부이다. 고립이 되서 몰입하는 게 확실히 쉬워진 것을 느낀다. 몰입 말고 할 것이 없는게 더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시차가 적응이 안되서 하루 단위로 시간이 흐르지 않는 와중에 '오늘 내가 한 번이라도 웃었나' 생각해본다. 


그렇다고 딱히 불행하다거나 우울하진 않다. 


큰 사건 사고 없이 고립으로 부터 오는 우울감은 서먹한 이웃처럼 다가온다. 나중에 그의 생활소음이 견딜 수 없다고 느껴지리라. 


연구가 좋은 이유는 생각할 수록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일이 주는 긍정적인 감정은 만족감에 가깝다. 질문이 더 복잡한 질문으로 전개되는 과정은 고요한 희열을 준다. 최소한의 생명연장의 당위성을 주던 연구마저 잘 안풀리자 2019년 가을부터 2020년 봄까지 나는 천천히 침잠했다. 


2020년 5월 우울증 판정을 받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사는 거 어차피 적당히 죽고 싶거나, 적극적으로 죽고 싶은 거 아닌가? 나는 주위를 살피지 않으며 자전거를 탔다. 필라테스를 하면서 몸으로 하는 바보짓의 평안함을 배웠고, 8월에 만난 고양이를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고, 모르는 사람과 매칭이 되는 어플을 통해 내 안의 여러 자아들을 활성화 시키는 경험을 했다. 오래된 인연들로부터 새삼스러운 애정을 확인했고, 그 고마움을 인지하기도 전에 나는 자전거를 타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미국으로 오기 직전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나의 '침잠'을 걱정하며, 나에게 돈을 가장 많이 쓰는 곳은 어딘지 (영양제>책>커피), 쓸데 없는 소비 (안 읽을 책)를 하기는 하는 건지 물었다. 연구로만 점철될 일상을 보낼 게 뻔한 나를 점검하는 질문들이었다. 친구는 힐난조로 나를 고효율 인간이라고 했고, 야시시한 드레스를 사서 아무한테나 난봉꾼처럼 굴어볼 것을 권했다. 새 드레스를 사지도 난봉꾼처럼 굴지도 않았지만, 친구의 메시지에 따라, 나를 보살피는 최소한의 용도로 일기를 쓰기로 했다. 


나는 한글로 글을 잘 쓰지 않는 데, 한글은 영어보다 내밀한 감정이 쉽게 새어나가기 때문이다. 6월 말에 아무에게도 보여줄 일이 없는 글을 (이것이 일기의 정의인가?) 한글로 썼다. 감정을 드러내는 건 나에게만 투명하게 보이는 수영복을 입는 기분이었는데,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았다. 2차성징이 다시 온 마냥 나는 그것을 자꾸만 들여다보았다. 


한 때 발자국이 없는 사람이 되기를 꿈꾼 적이 있었고 그런 생각을 하니 발 뒤꿈치를 들고 걷는 마음으로 살았다. 필라테스를 하니 직립 보행 하는 방법부터 다시 배웠다. 아직도 나는 정자세로 잘 걷지 못하는 데, 최소한 내가 걸을 때 어디에 힘을 과하게 실는지, 어떤 부분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지 알게 되었다. 그것은 땅과 발이 마주하는 접점에 마음을 기울이는 일이었다. 어쩌면 연습이라는 건 능력을 키우기 보다, 서투름에 내성을 키우는 일이 아닐까, 그걸 배우려고 돈을 내고 땀을 흘렸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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