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차와 위계질서
뉴욕에 도착한 지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지만 아직 시차적응을 못했다. 청소년기부터 한국과 미국을 오간 이력과 무관하게 시차적응은 늘 어렵다. 타고나길 규칙적인 생체리듬 덕에 하루의 시작과 끝을 관성에 떠밀려 살아왔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루틴과 다르게 이 과정에 내 자유의지란 없다.
나는 지금 한국의 시차도 뉴욕의 시차도 아닌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뉴욕 시간으로 오후 5시쯤 잠들어서 오후 11시에 기상한다. 자정부터 오후 4시까지 활동하기 때문에 낮시간의 대부분에 깨어있긴 하다. 줌 화면속 인물들의 배경 속 하늘이 내 창 너머의 하늘과 비슷한 조도인 것은 매우 낯선 느낌이었다.
지난 1년 3개월동안 한국에서 뉴욕의 시간으로 일을 했다. 한국시간으로 오후 10시에 뉴욕 사람들이 출근을 했으므로, 나의 정신이 가장 흐릿할 때 반대로 가장 머리가 맑은 상태의 그들과 회의를 하고 협업을 했다. 가장 힘든 일은 회의 시간을 조정하는 일이었다. 뉴욕 시간을 기준으로 오전 9시에서 11시에 회의를 잡아달라고 '양해'를 구해야했다. 나는 오후 10시부터 새벽 1시까지 미팅을 하면서 그들의 '배려'에 감사해야했다. 그것은 뉴욕시간 기준으로 퇴근 시간 이후인 한국의 아침시간에 회의를 잡는 것보다 덜 미안한 일이었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근무시간에 단일한 시공간의 전제가 모호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수업과 업무 모두 뉴욕 시간에 맞춰 진행되었다. 세상은 이런 상황에서 누구의 시간대를 기준으로 정하는 지에 대한 질문에 대응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 질문은 선택권이 좁거나 없는 사람들의 것이었다. 나는 시간과 공간 중에 선택을 해야했다. 미국에서 한창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혐오범죄가 수면에 떠오를 무렵, 사람들이 나에게 알아서 사회적 거리를 둔다는 나만 웃을 수 있는 농담을 하곤 했다. 당시 뉴욕에서 나는 어디든 자전거를 타고 다녔었는데, 자전거의 크기가 주는 거리감과 속도가 최소한의 안정감을 보장해주었다. 방을 나서서 다시 돌아오기까지 매 순간 나를 의식했다. 방 밖에서도 '나'를 생각하지 않고 생활하고 싶었다. 그래서 시차와 맞바꿨다. 인어공주가 목소리와 다리를 둘 다 가질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일주일 중 가장 고역은 화요일이었다. 오후 9시부터 새벽 1시까지 학부생들을 강의하고 오전 4시부터 6시까지 대학원 강의를 들었다. 토론과 비평 위주의 어느 정도 긴장감을 요구하는 세미나를 듣고 난 후, 120명의 학부생들을 이끌고 가는 온라인 강의를 하고 난 후에는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원래도 수면의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런 생활을 1년 넘게 보내고 난 후, 3시간 연속 깨지 않고 잠드는 일은 길을 걷다 돈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시간 약속에 대한 양해를 구할 일이 없는 경우, 굳이 내 상황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았다. 내가 13시간의 시차가 있는 곳에서 수업을 듣고, 회의에 참석하는 지 모르는 이들도 있었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안 이들은 놀라며 내가 내색을 전혀 안해서 몰랐다고 했다. 내색은 나와 같은 온라인 공간에 있는 이들에게 미안한 마음만 들게 했을 것이다. 누구도 시간의 기준을 정하는 데 (혹은 정하지 않은 것에 대해) 가담한 적이 없었기에 미안한 마음은 방향성을 잃고 금방 흩어졌다.
뉴욕행 비행기티켓을 끊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수업이 온라인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오프라인으로 진행되는 수업이 있었지만, 내가 신청한 수업과 강의하는 과목은 모두 온라인이었다. 첫 온라인 미팅을 할 때까지도 나는 생각했다. 어차피 또 다 온라인인데, 굳이 비싼 방세를 내면서 뉴욕에 오는 게 의미가 있는 일이었나. 학기가 시작되고,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시간에 대한 주인감각을 찾았다. 잠들기 직전까지 긴장의 끈을 붙잡지 않아도 되고, 두개의 시계를 다르게 설정해 놓지 않아도 되고, 비교적 맑은 정신 상태로 일을 수행할 수 있다. 무엇보다 특정시간대에 미팅을 잡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월급의 반을 방세로 내고 내 시간의 주인이 되었다.
한국에서 뉴욕시간으로 일 할 당시에 작은 사무공간을 마련했다. 새벽에 강의를 하거나 수업을 들을 때 가족들의 수면을 방해할 수 없었다. 뉴욕의 시간에 맞춰 오후 10시쯤 '출근'을 하러 사무실로 가면, 쓰레기를 수거하는 분과 마주쳤다. 그 분은 내 또래이거나 나보다 어려보였다. 저 분은 언제 기상을 하고 친구들을 만날까, 저 분에게 '불금'이란 언제일까. 언젠가 밤을 새고 버스 첫 차를 탄 적이 있다. 평생 고정된 시간에 일한 경험이 없는 나는 버스 요금표를 보며, 조조할인을 실제로 받는 이들이 있나 가끔씩 생각했다. 아직 해가 뜨기 전에 올라탄 버스는 아침 8시와 오후 6시의 버스만큼이나 붐볐고, 구성원들이 달랐다. 내가 모르는 시차는 어디에나 있었다.